조정래 감독 "'소리꾼' 이봉근의 소리, 이유리·김동완의 순수" [★FULL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20.07.02 16:09 / 조회 : 2758
  • 글자크기조절
image
'소리꾼' 조정래 감독/사진제공=리틀빅픽쳐스


조정래 감독은 늘 어려운 길을 걸어왔다. 박근혜 정부 시절 위안부 영화 '귀향'을 일반투자자들의 도움으로 만들어 관객에 선보였다. 그 뒤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와 '에움길'로 위안부 이야기들을 계속 세상에 전했다.

위안부 이야기 3편을 선보인 다음, 그가 새롭게 만든 영화는 놀랍게도 판소리영화였다. 조정래 감독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새로울 일이 아니지만, 앞선 영화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이채로운 일이다. 조정래 감독은 대학교 때부터 판소리에 미쳐 살았다. 스스로도 판소리 북 치는 고수다.

그가 연출한 '소리꾼'은 판소리에 대한 사랑 고백이자, 판소리가 이만큼 정겹다는 걸 세상에 알리는 꿈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다. '소리꾼'은 영화가 판소리 세계로 들어가 그 속에서 놀다가 그 여운을 즐기며 빠져나오도록 설계됐다. '소리꾼'은 오롯이 소리에 집중하도록 만들어진 영화다.

'소리꾼'은 조선 영조 시절, 납치된 아내를 찾아 눈먼 딸을 데리고 조선 팔도를 떠도는 소리꾼의 이야기다. 마치 심청가의 기원에 대한 우화 같다. 투박하고 촌스럽지만, 정겹다. 왜 판소리를, 노래가 아닌 소리라고 하는지, 그 감정에 공명시킨다. 조정래 감독의 이야기를 들었다.

-왜 '소리꾼'을 했나.

▶대학교 때 '서편제'를 보고 너무 감동적이었다. 감동보다는 충격이 더 컸던 것 같다. 어떻게 우리 소리를 이렇게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대학교 2학년 때 '서편제' 2편이 만들어지면 이런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시놉시스를 쓰기도 했다. 그 영향으로 판소리에 엄청 빠졌다. 그전까지는 판소리에 대해 전혀 몰랐다가 완전히 판소리에 푹 빠졌다. 군대 다녀온 뒤 시나리오 수업 때 단편으로 '회심곡'이란 시나리오를 썼다. 지금 '소리꾼' 이야기의 원형이다. 당시 교수님이 보시고 무슨 1억원짜리 단편 시나리오를 썼냐고 하셨는데 A+를 주셨다.

그러니 '소리꾼'은 '서편제'에 영향을 받은 서편제키드가 회심곡이란 이야기를 썼고 그 이야기가 성장해서 만들어진 셈이다. '회심곡'도 부부 이야기였는데 '소리꾼'에 있는 에피소드들이 다 거기에서 출발했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

-'서편제'에서 어떤 충격을 받았나.

▶소리 자체가 큰 충격이었다. 경북 청송의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마을에는 농악단이 있었고, 장례식에서 소리를 듣곤 했다. 나중에 대구로 유학을 가고 서울에서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국악은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서편제'를 보고 180도 변했다. 새로운 음악 세계가 열린 느낌이었다. 흔히 우리 가락을 한이나 흥으로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게 해답이 아니라 그걸 찾아가는 과정을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소리꾼'은 소리가 주인공인 서사에 고민이 컸다. 배우들에게도 음악을 계속 들려주면서 이런 식으로 만들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귀향' 이후 걸어온 행보가 있기에 '소리꾼'으로 변화가 낯설기도 한데.

▶'귀향'은 사명 같은 영화였다면 '소리꾼'은 소명 같은 영화다. 아내와 '귀향'이 첫째 자식, '소리꾼'이 둘째 자식이란 이야기를 하곤 한다. 아내도 '귀향'에 자수로 참여한 것처럼 '소리꾼'에도 자수, 삯바느질로 참여했다. 저를 예전부터 아는 분들은 오히려 '귀향'이 낯설고 '소리꾼'이 익숙하다. 사실 '귀향'에서 나오는 음악 전체가 국악이었다. 한국 관객들은 '귀향'의 국악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데 해외 상영을 하다 보면 재미교포, 재일교포 분들은 제일 먼저 국악이어서 반갑다고들 하시더라.

-이봉근은 명창이긴 하지만 영화 주연으로 하는 것은 모험이었는데. 결과적으론 성공적이었지만. 주위의 반대가 컸다던데.

▶이봉근은 2003년부터 알았는데 워낙 명창으로 유명한 친구였다. 사실 모험적인 캐스팅이 맞다. 주위에선 연기 잘하는 배우로 하고 소리는 후시녹음으로 하면 되지 않겠냐고들 했는데, 그 말들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론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소리 그 자체이기에 이봉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걱정과 만류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어떻게 하면 소리로 소사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이봉근이라면 그 감성을 녹일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대신 이봉근에겐 너의 소리를 버리고 연기를 택하라고 했다. 내가 너의 소리에 대해 이야기하진 않겠지만 영화 속 소리는 소리가 아니라 연기라고 했다. 소리 선생님들이 요즘 판소리는 소리가 아니라 노래라고들 하신다. 그러면서 소리가 왜 노래가 아니라 소리라고 하는 줄 아냐면서, 소리는 사운드라고 하시곤 한다. 샛소리, 바람소리, 귀곡성, 이 모든 소리들이 다 판소리에선 소리로 표현한다. 그걸 우리 영화에서 이봉근이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걸 이봉근이 마지막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해냈다. 100% 동시 녹음을 했고, 하이라이트 장면은 여러 번 촬영을 갔는데, 그때마다 현장에 있는 배우 스태프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이게 소리구나, 싶었다. 이봉근도 자기도 처음으로 이런 소리를 해봤다고 하더라.

-'소리꾼'에서 어린 청이를 맡은 김하연은 매우 좋은 연기를 한 배우인데.

▶오디션을 많이 봤는데 소리하는 영재들이 많이 왔다. 정말 좋은 분들이 많이 왔긴 했지만 아쉬웠다. 1차, 2차, 3차 오디션을 진행했는데 거의 마지막에 김하연이 왔다.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김하연이 들어오는데 거짓말처럼 청이가 보이더라. 연기력에 감탄한 게 아니라 그 자체였다. 수줍음이 엄청 많은데 카메라가 돌면 청이로 돌변한다. 진심으로 좋은 배우다.

-소리꾼의 아내 역을 맡은 이유리와 몰락양반 역을 맡은 김동완도 좋은 연기들로 영화에 중심을 잘 잡았는데.

▶이유리는 원래 팬이었다. TV드라마 악역으로 유명해지기 전부터 원래 팬이었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이유리를 추천했는데 악역 이미지가 강하다며 반대가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이유리가 시나리오를 보고 출연한다고 했을 때, 정말 모두가 함께 만들어간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란 걸 느꼈다.

김동완은 이 영화 출연에 대한 의지가 어마어마했다. 첫 미팅 때부터 엄청나게 적극적이었다. 알고보니 '귀향'을 좋게 봤다고 하더라. 그리고 이 시나리오를 보더니 '귀향' 연출한 사람이 맞구나라고 했다더라. 배역도 이건 나다,라고 했다고 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정말 김동완은 역할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이유리도 그렇고 김동완도 그렇고 엄청 순수하다.

image
'소리꾼' 조정래 감독/사진제공=리틀빅픽쳐스


-'소리꾼'은 원신원컷으로 시작해서 롱테이크로 끝나는데. 그렇게 소리로 관객을 끌고 들어가서 소리에 대한 여운을 느끼게 하면서 막을 내리는데.

▶엔딩의 롱테이크는 '서편제'의 오마주다. 첫 장면의 원신원컷은 실제로 소리판을 열고 그대로 찍었다. 원신원컷이라 잘 맞아떨어지지 않을 것을 각오하고 찍었는데 첫 번째에 오케이가 났다. 박철민이 막걸리를 마시는 첫 장면은 애드리브인데 그대로 진행했다. 그래서 살짝 엇박자가 났는데 그게 영화 속과 딱 맞았다. 대사에 박철민이 장단을 못 맞춘다고 썼는데 실제로 그렇게 촬영이 됐다. 이게 영화의 힘인 것 같다.

-영화 편집과 판소리 장단이 호흡이 맞아떨어지는데.

▶편집감독님과 음악감독님 덕이다. 저도 고수 출신이긴 하지만 두 분의 공이 컸다. 편집 과정이 이 영화가 어떤 영화라는 걸 만들어가는 공정이었다. 배우들에게도 이 과정을 공유해서 이해하고 그런 과정 자체를 즐거워했다. 인당수 장면은 콘티에 맞춰서 음악이 완성됐다.

-판소리 중 왜 심청가를 택했나.

▶판소리 5마당 중 심청가와 춘향가는 좀 특별한 것 같다. 적벽가는 삼국지에서 기원하고 수궁가와 흥부가는 이야기의 뿌리가 오래됐다. 춘향가는 작가의 의도가 명확한데, 심청가는 효와 관련이 있다고는 하지만 전 그런 해석에 동의를 못했다. 서편제에서도 심청가를 다뤘는데 인신공양이 어떻게 효인가 싶기도 했고. 뭔가 심청가는 인간의 근원적인 것들이 코드화 돼 있다고 생각했다. 겉은 효라고 포장이 됐지만 상징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도 심청의 희생이 아니라 심청의 선택이라고 넣었다. 쓰고 나서 이런 것이구나라고 깨달았다기보다는 영화를 만들면서 이런 것이구나라고 깨달았다. 인간사는 고통인데 그걸 이겨내는 방법은 사랑 밖에 없구나라고 느꼈다.

-영화 속 하이라이트에 심청가 하이라이트인 "눈이 번쩍 떴구나"는 없는데. 왜 그렇게 했나.

▶심청가 그 대목에 심학규 눈이 떠지면서 딸이라고 하니 딸인 줄 알지, 처음 보는 얼굴이구나란 부분이 있다. 전 그 지점이 이 영화를 가르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현장에선 슬레이트 지점이라고 했다. 그 전까지는 고통에 대한 설계였다면 번쩍하는 순간부터 이 세상이 사랑으로 바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일부러 빼고 설계했다. 원래는 눈이 번쩍한 장면 이후 이봉근, 이유리, 김하연 세 명만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 같은 장면을 넣으려 찍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장면이 흐름을 끊는 것 같아서 편집했다.

-엔딩 크레딧에 쓰인 노래는.

▶더 원이 부른 '사랑가'인데 작사를 내가 했다. 사랑 받는 것보다 사랑을 주는 게 행복하다는 뜻을 담았다.

-'귀향'도 그랬지만 '소리꾼'도 부감샷이 많은데.

▶'소리꾼'은 로드무비로 카메라 화각이 넓기를 원했다. 그래서 신윤복, 김홍도 그림처럼 그렇게 보여지기를 원했다. 그래서 부감샷이 많다.

image
'소리꾼' 조정래 감독/사진제공=리틀빅픽쳐스


-이유리, 김하연 등 영화 속 여성캐릭터들이 주체적인데.

▶이유리가 맡은 간난이 캐릭터는 딱 내 아내에서 가져왔다. 주체적이고 강단 있고 생활력 넘치는. 귀한 여자다. 이봉근이 연기한 학규 캐릭터도 그래서 나한테서 많이 가져왔다. 초반에 연꽃밭을 걷는 장면에서 이봉근이 어떻게 연기를 하냐고 물어서 "너는 학규잖아. 간난이만 쳐다 봐"라고 했다. 아내 바보, 딸 바보, 그렇게 연기하라고. 원래 옥 중 장면에서 판타지로 두 사람이 옥문을 열고 만난 뒤 간난이가 학규를 무릎에 눕히고 소리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편집했다. 정말 좋아하는 장면이라 아쉽다.

청이는 비록 어린 아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주체라고 생각했다. 중심이고. 그래서 영화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청이를 돌봐준다. 공동육아를 하는데 모든 샷마다 청이가 중심이다. 화면구도를 그렇게 했다.

-착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나.

▶착한 영화이긴 하지만 그 속은 고통스럽다. 착한 이야기를 하려는데 그 세계는 굉장히 고통스럽다. 그게 내가 보는 세상인 것 같기도 하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