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팀 어머니와 아버지들 사이로 지나간 '패장', 갑자기 쏟아진 박수갈채 [★현장]

목동=김우종 기자 / 입력 : 2020.06.23 05:35 / 조회 : 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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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고 학부모들 사이로 지나가는 최재호(가운데 75번) 강릉고 감독. /사진=김우종 기자
8회까지는 모든 게 완벽했다. 창단 45년 만에 전국대회 첫 우승이 눈앞에 있는 듯했다. 그러나 마지막 1이닝을 버티지 못했다. 강릉고는 3-1로 앞선 9회초 밀어내기 볼넷으로 결승점을 헌납하는 등 통한의 3실점을 하면서 쓰디쓴 역전패를 당했다. 양 팀의 환희와 슬픔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김해고가 22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강릉고와 제74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결승전에서 9회초 3점을 뽑아 4-3 역전승을 거뒀다.

지난 2003년 창단한 김해고는 17년 만에 전국대회 첫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을 누렸다. 반면 앞서 준우승만 세 차례 경험했던 강릉고는 또 한 번 정상 문턱에서 주저 앉으며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경기가 끝난 뒤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도열한 가운데 시상식이 열렸다. 대회 최우수선수상의 영광은 김해고 투수 김준수에게 돌아갔다. 강릉고 에이스 김진욱은 감투상을 받았다. 올해 신인드래프트 2차 첫 라운드서 롯데의 지명이 유력한 김진욱은 이날 7⅓이닝 4피안타 2볼넷 1몸에 맞는 볼 11탈삼진 3실점(3자책)으로 호투했으나 승리와 연을 맺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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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후 기뻐하는 김해고 선수들.
김해고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남아 박무승 감독을 헹가래 치며 기뻐하는 순간, 강릉고 선수들은 조용히 라커룸서 짐을 쌌다. 이윽고 목동구장 1층 주출입구 쪽에서 김진욱이 선수 대표로 인터뷰에 임한 뒤 '백전노장' 최재호 감독이 취재진 앞에 섰다.

김진욱은 "9회에 올라와 최대한 마무리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아쉽다. 더 던지고 싶고 던질 수 있었다. 이번 대회서 부담감은 크게 없었다. 최대한 내가 할 일을 하면서 팀 승리를 위해 도움을 주고 싶었다"면서 "다음 전국대회에서는 꼭 우승을 목표로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롯데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어려서부터 팬이었다. 경기도 보고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고 마음을 전했다.

덕수고와 신일고 감독을 거치면서 황금사자기와 청룡기 대회 등에서 우승 경험이 있는 최재호 감독은 "지난해 준우승을 두 번 했는데, 만년 2등 팀이라는 별명이 붙을 것 같다"고 웃은 뒤 "아쉬움이 남아 있다. 김진욱의 뒷심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타자들의 스윙이 크기도 했다.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경기에서 패한 게 아쉽다"고 되돌아봤다.

인터뷰를 마친 최 감독이 경기장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이미 구장 밖 선수단 버스 근처에는 양팀 선수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서 있었다. 이들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관중석이 아닌 밖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출입구 쪽에는 김해고 학부모들이, 이들로부터 약 30m 떨어진 곳에는 강릉고 학부모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교가를 합창하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그런데 최재호 감독이 상대 팀인 김해고 학부모들 앞을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한두 명의 박수를 시작으로, 갑자기 여러 학부모들의 따뜻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들 역시 강릉고 학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다 같은 야구 선수를 자녀로 둔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패장을 향한 격려의 박수에 최 감독은 모자를 벗고 허리를 굽히며 깍듯이 예우를 표했다. 비록 승자와 패자는 갈렸지만, 천신만고 끝에 결승까지 올라오며 학교의 위상을 높인 양 팀 선수들 모두 승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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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취재진 앞에서 인사하는 최재호 감독. /사진=김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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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경기장 밖에서 학부모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강릉고(위)와 김해고 선수들. /사진=김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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