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로축구를 최고로 만든 '토요일의 발견'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0.06.19 15:09 / 조회 : 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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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토트넘-울버햄튼전에서 관중들이 우비를 입은 채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스포츠는 이제 단순히 승부를 겨루는 경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인과 사회를 움직이는 문화일 뿐 아니라, 막대한 부가가치를 낳는 산업이다. 스타뉴스는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의 연재 글을 통해 문화와 산업의 관점에서 스포츠를 조명한다. /편집자주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는 산업적 측면에서 여타 유럽 프로축구 리그를 압도한다. 심지어 ‘프로 스포츠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여기에는 전 세계적으로 범용성이 가장 큰 축구라는 종목의 장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프리미어리그가 2019~2020시즌부터 세 시즌 동안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미디어 중계권 가격만 하더라도 6조 4000억 원을 상회한다.

잉글랜드 소프트 파워의 핵심 콘텐트로 급부상한 프리미어리그의 성공 과정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대목은 오랫동안 쌓인 대중의 축구문화였다. 이는 프리미어리그의 마케팅을 빛나게 해주는 기반이었다.

1992년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하기 전까지 잉글랜드 프로축구의 주요 소비층은 노동자 계층이었다. 그들은 직장 동료들과 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마치 펍(선술집)을 들리듯 축구 경기장을 찾았다. 여기에서 그들만의 계층적 연대의식이 싹텄고 축구 클럽을 통해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과 도시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다.


현재의 프리미어리그는 소비자 물가지수 상승률을 훨씬 웃도는 티켓 가격 상승으로 관객 1명당 입장수입이 크게 향상됐고, 관중의 면면은 노동자 계층에서 중산층으로 바뀌어 왔다. 하지만 여전히 소득 수준에 관계 없이 프리미어리그 경기와 클럽,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에 시간 투자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노동자 계층이다.

그렇다면 왜 노동자 계층은 오래 전부터 이처럼 축구의 주요 소비층이었을까. 다양한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부분은 잉글랜드 프로축구 클럽의 기원과 토요일 반일 근무제라고 할 수 있다.

주로 면직, 방직, 철강 공장과 철도회사를 중심으로 조직된 잉글랜드 프로축구 클럽들의 주요 팬층은 처음부터 노동자 계층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들이 축구 경기를 보기에는 기본적으로 시간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하루 10시간 이상의 고된 일을 수행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퇴근 후 선술집을 찾는 게 일상이었다. 당연히 당시에는 야간경기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평일에 경기를 할 경우 이들이 경기장을 찾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다.

일요일에 경기를 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 의무의식이 강했던 잉글랜드에서는 불가능했다. 참고로 일요일에 최초로 잉글랜드 프로축구 경기가 펼쳐진 것은 1974년이 돼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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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버튼의 경기. 관중석을 가득 메운 팬들의 모습이 보인다. /AFPBBNews=뉴스1
이런 상황에서 관람 스포츠로 잉글랜드 프로축구가 발전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된다. 그것은 토요일 반일 근무제였다.

토요일 반일 근무제는 원래 1850년 영국 의회에서 제정된 ‘공장법(Factory Acts)’ 때문에 생겨났다. 공장법은 기본적으로 여성과 아동의 노동시간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토요일의 경우 오후 2시까지 일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이후에는 직종에 따라 토요일 낮 12시에 업무를 종료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와 같은 토요일 반일 근무제는 면직공업이 발달했던 지역과 도시에서부터 정착하게 됐고, 그 대표적인 도시는 맨체스터였다.

세계 최초로 영국에서 생겨난 토요일 반일 근무제는 대중들의 스포츠 관람과 여가 활동 확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관람 스포츠 가운데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계층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축구의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대중화 또는 산업화의 초석이 됐다.

최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 시간은 낮부터 저녁까지 다양화했지만 여전히 주요 경기의 시작은 토요일 오후에 편성돼 있다. 이와 같은 이유에는 토요일 반일 근무제로 마침내 토요일 오후에 여가시간을 확보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참여로 발전하게 된 잉글랜드 프로축구의 전통이 일정 부분 반영된 역사가 담겨 있다.

어떻게 보면 이는 현재 잉글랜드 프로축구의 문화와 산업을 만드는 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축구를 삶의 일부로 생각했던 잉글랜드 노동자들에 대한 헌사(獻辭)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짜 축구 팬들을 위한 잡지라는 기치 아래 1986년 창간한 영국의 축구 전문 월간지의 이름이 ‘토요일이 오면(When Saturday Comes)’으로 지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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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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