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는 11년을 기다렸다... '페타지니, 이젠 널 잊을 수 있을 것 같아' [★현장]

잠실=한동훈 기자 / 입력 : 2020.05.25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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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라모스가 24일 잠실 KT전 끝내기 만루홈런을 치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LG 트윈스
LG 트윈스 새 외국인타자 로베르토 라모스(26)가 24일 잠실 KT전에서 9회말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을 때려 팀을 벼랑 끝에서 구했다. 라모스는 17경기 타율 0.350, 출루율 0.443, 장타율 0.767에 7홈런 16타점을 기록 중이다. LG 팬들에게 역대 최고의 용병으로 기억되는 로베르토 페타지니(49)를 떠오르게 한다. 페타지니(2008~2009년) 이후 오랜 기간 '외국인타자 흑역사'에 시달렸던 LG 팬들의 마음을 가상의 편지 형식으로 꾸몄다.

페타지니야,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우리가 헤어진 지 벌써 10년이 지났어. 시간 정말 빠르다.


결론부터 말할게. 이제야 비로소 널 놓아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 물론 좋은 친구들도 있었지. 그래도 네 그림자는 마음 한 구석에 늘 남았거든.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달라. 정말 진지하게 오랜 기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너도 궁금하지? 로베르토 라모스라는 친구야. 그러고 보니 너랑 이름도 똑같네. 분명 범상치 않은 인연인 게 틀림없어. 1994년생이야. 너보다 23살이나 어리네. 너처럼 왼손잡이야. 어제는 있잖아,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도 쳤어. 네가 했던 거잖아. 너 이후로 처음 봤어.


그날은 지금도 생생해. 2009년 4월 10일 두산전이었지. 넌 우중간 펜스를 시원하게 넘겼어. 그리고 나온 담백한 박수 세 번. 거기에 난 반해 버리고 말았어. 너와는 영원히 행복할 줄 알았는데. 시간은 참 야속하지.

너를 떠나 보내고 오랫동안 방황했어. 조쉬벨(2014년)이라는 친구는 처음에만 잘 해주더니 금방 식어버리더라. 진짜인 줄 알고 설레었다가 상처가 너무 컸어.

그 뒤로도 자꾸 아쉬운 친구들만 마주치게 되더라. 어떤 친구는 몸이 너무 허약해서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했어. 또 어떤 친구는 잘 해줄 것처럼 하더니 자기 기분 따라서 멋대로 도망가 버렸어.

그래도 최근에 루이스 히메네스(2015~2017년)라는 친구는 꽤 괜찮았어. 네가 썼던 응원가까지 물려 받았고 잘 어울렸어. 하지만 풀타임을 뛴 건 딱 한 시즌밖에 없었지.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그리움을 막을 길이 없었어. 아... 페타지니만 있었어도... 이런 안타까운 탄식을 수백 수천 번 되풀이 했을 거야.

그런데 문득 알았어. 얼마 전부터 잠들기 전에 네 생각이 나지 않는 거야. 그조차도 어제 느꼈어. 라모스가 때린 굿바이 그랜드슬램 덕분에 말이야. LG에서 무려 11년, 정확히는 4062일 만에 나온 거래.

라모스는 지금 홈런도 단독 1등이야. 벌써 7개나 쳤어. 1루 수비도 엄청 잘 해. 누구처럼 처음에만 '반짝' 하는 거 아니냐고?

아닐 거야. 전문가들 얘기도 라모스는 정말 잘 할 수 있을 거래. 왼쪽 다리가 무너지지 않아서 처음 보는 공에도 유연하게 대처 가능하다고 하더라.

너한테도 소개해주고 싶은데. 그건 내 욕심이겠지? 이제 라모스에게 정착할 거야. 정말 네가 그립지 않게 됐어. 너와 아름다웠던 시절은 이제 아련한 추억으로만 묻어둘게. 너도 행복하길 바라.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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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시절 홈런을 날린 뒤 박수를 치는 페타지니. 일본프로야구 홈런왕 출신의 그는 2008년 시즌 도중 LG에 입단해 2009년까지 183경기에서 타율 0.338, 33홈런 135타점을 올리며 활약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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