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공개 불발..숱한 우여곡절 속사정 [종합]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20.04.09 10:04 / 조회 : 2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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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의 시간' 스틸


결국 그리 되고 말았다.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공개가 암초를 맞았다.


8일 서울중앙지법은 콘텐츠판다가 리틀빅픽쳐스를 상대로 제기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법원은 본안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사냥의 시간'을 국내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극장, 인터넷,텔레비전(지상파, 케이블, 위성 방송 포함)을 통해 상영, 판매, 배포하거나 비디오, DVD 등으로 제작, 판매, 배포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공개해서는 안된다고 판결했다.

이에 넷플릭스는 '사냥의 시간'을 10일 전세계 190여개국에 동시 공개할 계획을 전면 보류했다. 이날 예정된 윤성현 감독과 이제훈 등의 온라인 관객과 대화, 추후 진행될 인터뷰 등도 모두 취소됐다.

앞서 콘텐츠판다는 리틀빅픽쳐스를 상대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리틀빅픽쳐스가 넷플릭스에게 '사냥의 시간' 해외 공개 권리까지 모두 넘긴 것에 대해 판매를 중지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것.

여러 매체에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이라며 기사화가 됐지만 정확히는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이다. 애초 '사냥의 시간' 한국 상영 권리는 리틀빅픽쳐스에 있기에 상영금지가 아니라 '사냥의 시간'을 넷플릭스를 통해 해외에 공개하는 건, 해외 판매에 대한 이중계약인 만큼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금지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법원은 콘텐츠판다의 손을 들어줬다. 리틀빅픽쳐스가 이를 위반할 경우 1일당 2000만원을 콘텐츠판다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넷플릭스는 당혹한 모양새다. 판결이 나오자 '사냥의 시간' 예고편과 검색도 넷플릭스 플랫폼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지난 3월 23일 넷플릭스와 '사냥의 시간' 투자배급사 리틀빅픽쳐스는 보도자료를 통해 "'사냥의 시간'을 4월 10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여개국에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에 '사냥의 시간' 해외 세일즈를 맡았던 콘텐츠판다는 이미 해외 30여개국에 판매를 했다며 리틀빅픽쳐스가 넷플릭스에게 해외 공개 권리까지 모두 넘긴 것은 이중계약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리틀빅픽쳐스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계약 해지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양측은 리틀빅픽쳐스가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공개를 발표하기 전부터 물밑에서 상당한 갈등이 있었다. '사냥의 시간'은 2월 26일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가 확산되자 개봉을 연기했다. 이후 리틀빅픽쳐스는 '사냥의 시간' 극장 공개가 코로나19 여파로 여의치 않게 되자 넷플릭스 문을 두드렸다.

'사냥의 시간'의 순제작비는 90억원, P&A 비용은 25억원 가량 들어 총제작비가 115억원 가량이다. 리틀빅픽쳐스와 넷플릭스는 '사냥의 시간' 전세계 독점 공개 금액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영화계에선 120억원 가량이라는 풍문이 나돌았다. 권지원 리틀빅픽쳐스 대표는 "넷플릭스에서 제시한 금액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회사 입장에서 납득할 수 있는 계약을 했다"고 밝혔다.

리틀빅픽쳐스로선 '사냥의 시간'을 언제 극장에서 개봉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추가로 P&A 비용을 집행해야 하는데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그런 이유로 리틀빅픽쳐스는 '사냥의 시간' 독점 공개권을 넷플릭스에 넘겼다.

문제는 이미 '사냥의 시간'이 콘텐츠판다를 통해 해외에 선판매됐고 이게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독점권을 넷플릭스에게 넘겼다는 점이었다. 리틀빅픽쳐스는 콘텐츠판다에게 계약해지를 요구하며 별도로 해외 판권 구매사들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당연히 콘텐츠판다로선 반발할 수 밖에 없었다. 해외 세일즈사로선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리틀빅픽쳐스측은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공개를 발표한 뒤 콘텐츠판다측에 만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이미 강은 건너간 뒤였다.

사실 '사냥의 시간'은 기획부터 우여곡절이 무척 많았다. 윤성현 감독은 2011년 독립영화 '파수꾼'으로 영화계 주목을 받았다. 당시 윤 감독은 여러 영화사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투자배급사 쇼박스와 계약을 맺었다.

이후 윤 감독은 꾸준히 시나리오를 썼지만 쉽게 영화화되지 못했다. 남북이 통일된 가상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본영'이란 시나리오로 영화를 준비했지만 불발됐다. 시나리오 완성도는 차치하고 당시 제작비로 1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돈이 투입돼야 하는 작품인데 상업영화판에서 검증되지 않은 감독에게 맡기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희소성과 스타성, 화제성을 겸비한 원빈 정도 되는 스타가 참여해야 투자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쇼박스는 이례적으로 감독 프로필까지 담긴 캐스팅 시나리오를 돌리기도 했다. 원빈 등은 고사했고 그렇게 '본영'은 무산됐다.

쇼박스는 이후 재능 있는 감독을 더이상 묶어놓을 수 없다는 이유로 윤성현 감독이 다른 곳에서 먼저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해줬다. 2015년말 즈음이었다. 이후 윤성현 감독은 '파수꾼'으로 인연을 맺은 이제훈과 '사냥의 시간'을 같이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런 이유로 '사냥의 시간'에는 '본영'의 어두운 정서가 많이 투영됐다.

그렇게 '사냥의 시간'이 출발했지만 이 과정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공동 제작 논의가 어그러졌다가 다시 정리되기도 했고, 투자 문제로 유아인에게 제안이 갔다가 다시 이제훈으로 정리가 되는 등 여러 일들이 겹치고 겹쳤다. 마침내 이제훈과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 박해수가 출연하고 리틀빅픽쳐스가 투자배급을 맡아 2018년 1월 크랭크인해 그해 7월 크랭크업했다. 촬영이 잠시 멈추기도 하는 등 촬영 과정에서도 숱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크랭크업한 뒤 1년이 넘게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사냥의 시간'은 2020년 2월 개봉을 결정했다. 2월19일 개봉을 염두에 뒀지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면서 2월 26일로 선회했다. 그렇게 '사냥의 시간'은 꽃길을 걸을 줄 알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끝내 좌초되고 말았다.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독점 공개 결정은 한국영화계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극장 개봉은 물론 VOD 서비스마저 포기하고 넷플릭스에서 독점 공개하기로 한 건, 한국영화사에 전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리틀빅픽쳐스가 영화계 중진들이 대기업의 횡포를 비판하며 만든 투자배급사라는 점에서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행을 놓고 비판의 목소리도 컸다. 회사 존폐가 걸린 만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이해한다는 목소리도 적잖았다.

어찌 됐든 '사냥의 시간'은 당분간 공개될 수 없게 됐다. 콘텐츠판다와 리틀빅픽쳐스는 계약 해지와 관련한 소송 외에 손해배상 소송 등 법적인 분쟁을 당분간 계속할 것 같다. 원만한 해결이 이뤄져 정상적으로 공개되기까진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양측이 성명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갈등이 더욱 커진 것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었다.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행은 코로나19가 남긴 상흔이며, 전통적인 영화산업과 OTT서비스간 과도기에서 벌어진 일이며, 돈으로 벌어진 갈등이다. 이래저래 한국영화사에 오래 남을 사건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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