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듣고 싶었던 수상 소감은? 이미경 CJ부회장 소감에 부쳐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20.02.11 08:39 / 조회 : 5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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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이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하자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AFPBBNews=뉴스1


'기생충'다운 완벽한 엔딩인가? 자격 있는 사람의 자격 있는 소감인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 사상 처음이며, 오스카 역사에서도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한 건 처음이다. 아시아 영화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한 것도 이안 감독에 이어 두 번째요, 각본상을 수상한 아시아 영화인도 처음이다.

이날 봉준호 감독은 특유의 재치 넘치고 배려 깊은 소감으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각본상을 탔을 때는 "한국의 첫 오스카"라는 점을 짚었고,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았을 때는 함께 한 배우와 동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감독상을 받았을 때는 같이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콜세지에게 먼저 존경을 표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봉 감독과 같이 각본상을 받은 한진원 작가는 충무로의 영화인들과 영광을 나눴다. 작품상 수상자인 '기생충' 제작사 바른손이엔에이의 곽신애 대표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 실제로 벌어져서 너무 좋고 기쁘다"며 "지금 이 순간에 뭔가 굉장히 의미 있고 상징적인, 그리고 시의적절한 역사가 쓰여진 기분이 든다. 이런 결정을 해준 아카데미 위원들의 선택에 감사하다"고 토로했다.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은 한국영화 역사에 새겨질 것들이다.

그렇기에 아카데미 시상식을 현장에서 봤든, 중계로 봤든, 아마도 모두가 작품상 수상자 봉준호 감독의 소감을 기대했을 테다. 중계 카메라에도 잡혔지만 시상식에 참석한 할리우드 영화인들은 곽신애 대표가 소감을 말한 뒤 시간 관계로 조명이 꺼지자 손을 위로 올리며 "업(up)" "업(up)"을 외쳤다. 수상 소감을 말할 수 있도록 조명을 켜라는 뜻이다.

그들이 듣고 싶었던 수상 소감은 아마도 곽신애 대표와 작품상 공동 수상자인 봉준호 감독의 것이었을 터다. 작품상 수상자 자격은 영화제와 시상식마다 다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은 감독의 것이며, 아카데미 작품상은 프로듀서의 것이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수상자는 곽신애 대표와 감독 겸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봉준호였다.

불이 켜지고 수상 소감을 이어간 사람은 '기생충' 총괄 프로듀서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었다. 이미경 부회장은 '기생충' 한국 크레딧에는 제작·투자로, 미국 크레딧에는 'executive producer'(총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이미경 부회장 곁에는 허민회 CJ ENM대표가 서 있었다. 허 대표는 '기생충'에 'co-executive producer'로 이름을 올렸다.

이미경 부회장은 "봉준호 감독에게 감사하다. 당신이 당신이어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나는 봉준호 감독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그의 미소, 독특한 머리 스타일, 그가 말하고 걷는 방식, 특히 그가 연출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의 유머 감각이다. 그는 진지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유쾌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기생충'을 지원해주신 분들, 함께 일한 분들, 사랑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라고 덧붙였다.

이미경 부회장은 남동생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언제나 우리의 꿈을 지원해주는 남동생 이재현 회장에게 감사하다"고 공을 돌렸다. 이어 "우리의 모든 영화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의견을 바로 말씀해주신 한국 관객들에게 감사하다. 그런 의견 덕분에 우리가 자만하지 않고 감독과 창작자들과 함께 한계에 도전할 수 있었다. 한국 관객 여러분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라고 감사를 전했다.

할리우드의 심장에서 한국 관객들에 대한 감사로 막을 내린 이미경 부회장의 소감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어쩌면 이미경 부회장이 소감을 말한 뒤 봉준호 감독이 다시 소감을 밝힐 수 있었다면, 모두의 축제는 환상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미경 부회장이 봉준호 감독 대신 수상 소감을 말한 격이 되면서 이 영예의 순간에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해 '그린북'이 오스카 작품상을 탔을 때 총괄 프로듀서인 옥타비아 스펜서는 다른 5명의 프로듀서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지만 소감을 밝힐 수 있는 영예는 수상자인 프로듀서들에게 돌렸다. '노예12년'이 오스카 작품상을 받을 때 소감을 밝힌 브래드 피트는 감독인 스티브 맥퀸과 같이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이미경 부회장은 '기생충' 영광의 길에 한 몫을 단단히 했다. 한국영화의 발전에 음으로든, 양으로든 크게 일조했다. 어쩌면 '기생충' 오스카 작품상 수상은 이 부회장이 스티븐 스필버그의 드림웍스에 투자했을 때 꿨던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박근혜 정권 눈 밖에 나서 도피하듯이 영화 일선에서 떠났기에 감회가 무량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영광의 자리는 창작자의 것이어야 했다. 예술은 자본에 기생해 꽃을 피우지만, 그렇다고 자본이 예술은 아니다. 자본은 예술을 후원하고 소유할 수는 있어도 예술이 될 수는 없다.

'기생충'은 빈부와 관련한 이야기다. 햇살이 가득한 대저택과 햇살마저 아쉬운 반지하, 햇살이라곤 없는 지하에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훌륭한 작품의 대단원이 자본의 일성라는 건,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예술은 그렇게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은 그 아이러니조차 품는다. 이 아이러니마저 '기생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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