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사랑의 기억을 아로새기며

김미화 기자 / 입력 : 2020.01.14 12:03 / 조회 : 1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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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포스터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아델 에넬 분)와 그녀의 결혼식 초상화 의뢰를 받은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멜랑)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18세기 후반 프랑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여성의 사랑은 조금씩 타오르는 감정을 끝내 폭발시키며 관객에게 여운을 남긴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정략결혼을 위해 밀라노로 가야 하는 엘로이즈. 당시는 사진이 없었기에 서로 초상화를 주고 받았으나, 결혼이 하기 싫었던 엘로이즈는 초상화 그리기를 거부한다. 이에 엘로이즈의 어머니는 딸의 초상화를 몰래 그리기 위해 여성 화가 마리안느를 고용한다. 딸의 산책친구로 위장해 엘로이즈의 얼굴을 보며 몰래 초상화를 그려 달라고 한 것이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여성 화가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작품 활동을 하기 힘들었기에, 초상화 화가 등으로 많이 활동했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 찾아왔고, 몰래 엘로이즈 얼굴을 보며 그 속에서 초상화를 그려낸다.

엘로이즈를 자세히 관찰하던 마리안느는 미묘한 감정을 느꼈고, 엘로이즈 역시 자신의 마음 속에 파고드는 마리안느를 느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마음을 줄 때쯤 초상화가 완성됐고, 마리안느는 몰래 초상화를 그린 것에 죄책감을 느껴 엘로이즈에게 그 사실을 고백한다.

이후 두 사람은 거짓의 꺼풀을 벗겨내고 서로에게 다가가고, 초상화 앞에 모델로 선 엘로이즈와 그녀를 마음껏 관찰하는 마리안느는 브레이크 없이 서로에게 빠져든다.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관찰하는 것처럼, 초상화 모델 엘로이즈도 마리안느만을 바라봤다.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집을 비운 닷새,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에게는 평생 기억에 남을 사랑의 시간이 됐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18세기 후반 금기시됐던 여성의 동성연애를 섬세하게 스크린에 표현해냈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높은 수위의 표현 없이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관계를 관능적이면서도 끈끈하게 그려냈다.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던 타인이 서로의 얼굴을 관찰하며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서로에게 점차 빠지게 되는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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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스틸컷


영화는 초상화라는 미술을 소재로 하면서 그 사이 음악과 문학으로 전체적인 볼륨을 채운다. 이 영화에는 거의 음악이 없다. 파도소리, 바람소리, 장작불이 타닥 타는 소리, 캔버스 붓질 소리, 옷자락이 사그락 대는 소리가 영화를 채운다. 그러던 중 엘로이즈가 관현악 음악을 못 들어봤다는 이야기를 들은 마리안느는 오르간 앞에서 서툴게 비발디의 '사계'(중 여름 악장)를 연주한다. 그래서 '사계'가 등장했을 때 그 익숙한 음악이 더욱 뇌리에 깊이 박힌다. 그 띄엄띄엄 들리는 음표 속에서 엘로이즈는 행복하게 웃는다. 그 '사계'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감정을 폭발 시키며 관객이 숨죽이게 만든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아주 영리하게 음악을 활용했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가 하녀인 소피(루아냐 바야미 분)와 함께 그리스로마 신화 중 하나인 오르페우스 신화의 이야기를 읽는 장면 역시 인상적이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사라진 뒤 수평적인 관계가 된 세 사람은 오르페우스 신화를 읽으며 각자의 생각을 나눈다.(오르페우스 신화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오르페우스가 하데스를 찾아가 지하세계를 통과하기 전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아내 에우리디케를 지상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지만, 아내가 잘 따라오는지 궁금했던 오르페우스가 중간에 뒤돌아봐서 아내가 다시 지하로 가게 된 이야기를 그린다) 이 신화에 대한 세 사람의 해석은 사랑에 대한 각각의 생각을 이야기 해주면서 18세기 여성으로 살았던 이 캐릭터들에 또 다른 생명력을 부여해 준다. 특히 엘로이즈가 책의 28쪽에 그림으로 새긴 사랑은 압도적이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를 연기한 아델 에넬과 노에미 멜랑은 각각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표현해내며 관객을 끌어들인다. 그녀들의 눈빛과, 올라가는 입꼬리, 눈썹의 움직임 하나까지 이 영화에 큰 의미가 부여한다. 작은 감정을 쌓아오다가, 마지막 엔딩에서 '사계' 연주를 들으면 감정이 터질 수밖에 없다.

15세 관람가. 1월 1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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