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왜 11년간 헌신한 범가너를 홀대했을까 [댄 김의 MLB 산책]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9.12.17 15:47 / 조회 : 4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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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디슨 범가너가 지난 9월30일 LA 다저스와 홈 경기에서 5회 대타로 나선 뒤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LA 디저스에 클레이튼 커쇼(31)가 있다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엔 매디슨 범가너(30)가 있었다. 커쇼가 사이영상을 3번이나 수상하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활약할 때 범가너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3번이나 차지하며 최고의 포스트시즌 에이스로 활약했다. 커쇼가 다저스의 아이콘이라면 범가너는 샌프란시스코의 아이콘이었다.


그런 범가너가 5년 8500만 달러 계약으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유니폼을 입었다. 영원히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남을 것 같았던 그가 하필이면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팀으로 이적했다.

지난 2017년과 2018년 시즌에 더트바이크 교통사고와 타구에 손을 맞는 등 잇단 불운으로 고전했던 범가너는 올해 풀타임을 뛰고도 명성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해 3년 연속 하향세를 이어갔다. 그로 인해 FA 시장에서 뜻밖의 ‘푸대접’을 받았다.

8500만 달러짜리 대형 계약을 ‘푸대접’이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 이상하지만 범가너의 명성과 함께 그 자신이 이번 FA 시장에 나설 때 최소 5년 1억 달러 이상의 계약을 목표로 했던 것을 감안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게다가 8500만 달러 중 1500만 달러는 계약기간 종료 후에 나누어 지급되는 조건이라고 한다.

한때 커쇼와 맞먹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특급 에이스로 활약했던 범가너 입장에서 성에 차는 조건일 리 없다. 특히 얼마 전 윈터미팅에서 게릿 콜과 스티븐 스트라스버그가 각각 3억 2400만 달러와 2억 4500만 달러 빅딜을 받는 것을 지켜본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그가 이번 계약을 선뜻 받아들인 것은 사실 다른 옵션이 없기도 했지만 그의 마음이 이미 샌프란시스코를 떠났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이번에 FA로 나선 범가너에게 애리조나의 오퍼와 비교, 평균연봉에선 조금 높지만 총액에서 1500만 달러나 떨어지는 4년간 7000만 달러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억 달러를 염두에 뒀던 선수에겐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는 수준의 오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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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시절 매디슨 범가너. /AFPBBNews=뉴스1
사실 샌프란시스코는 재정적으로 쪼들리는 구단도 아니고 현재 선수 페이롤에서 사치세 기준선 문제로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원하기만 했다면 얼마든지 범가너에게 팀의 대표급 대우를 해줄 수 있었다.

특히 비록 자신의 선택이긴 했지만 그가 지난 7년간 팀 공헌도에 비교하면 사실상 ‘헐값’에 불과한 수준의 계약으로 뛴 사실을 고려한다면 팀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인정, 콜이나 스트라스버그급 대우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의 기대치에는 어느 정도 근접하려고 노력하는 제스처는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범가너에 대한 샌프란시스코의 오퍼에선 그런 제스처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대신 “과거는 과거이고 미래는 미래”라는 비즈니스의 냉정함만이 느껴졌다. 지난해 오프시즌에 다저스가 이미 에이스로서의 위력을 잃은 커쇼에게 3년 9300만 달러의 연장계약을 줘서 붙잡은 것과는 차이가 느껴진다.

샌프란시스코는 지난 2010년과 2012년, 그리고 2014년 월드시리즈에서 ‘징검다리’ 우승을 차지했다. 1958년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본거지를 옮겨온 뒤 한 번도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르지 못하다 범가너의 경이적인 포스트시즌 활약을 타고 5년 사이에 3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는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는 이런 팀의 전성기를 다이너스티로 만들어가기 위해 상당한 투자를 했다. 2012년 우완투수 맷 케인과 5년 1억 1250만 달러에 계약해 FA로 떠나는 것을 막은 것을 시작으로 1년 뒤엔 포수 버스터 포지를 9년간 1억 6700만 달러를 주고 붙잡았다. 이후 브랜던 크로포드와 브랜던 벨트도 각각 7500만 달러와 7900만 달러 다년계약으로 묶어뒀다. 또 FA 시장에 나가 선발투수 자니 쿠에토와 제프 사마지아를 합계 2억 2000만 달러를 주고 사들였고 6200만 달러를 투입, 클로저 마크 멜란슨도 데려왔다.

하지만 묘하게도 이 과정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선수라고 할 수 있는 범가너에 대한 연장 계약은 없었다. 그 이유는 범가너가 이미 장기계약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빅리그에서 겨우 풀시즌 1년을 마친 지난 2012년 4월 샌프란시스코와 2017년까지 5년간 3556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최저연봉을 받던 만 22세의 그에겐 엄청난 큰 돈이었지만 장기적으론 자신에게 큰 손해가 될 수 있는 위험한 계약이었다. 하지만 당시 범가너는 가족들에게 빨리 경제적 안정을 제공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기에 이 계약을 선택했다.

그런데 문제는 범가너의 활약이 너무나 뛰어나 그의 계약이 너무나 빨리 ‘역대급 헐값 계약’이 돼버린 것이었다. 이런 경우 대개 구단은 선수의 가치가 계약 당시에 비해 급상승한 것을 인정, 계약기간이 절반 정도 지나면 기존 잔여계약을 파기하고 새로운 장기계약으로 선수를 대우해주는 것이 보통이지만 샌프란시스코는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 범가너 측도 계약 조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거나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범가너 역시 자신의 계약 조건에 만족할 수는 없었지만 화끈한 성격의 그로선 이미 사인한 계약을 바꿔달라고 떼를 쓰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팀의 여러 동료들이 엄청난 대형 계약을 받고 또 커쇼가 다저스로부터 새 계약을 받는 것을 보면서 구단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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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 /AFPBBNews=뉴스1
물론 샌프란시스코가 범가너의 계약을 바꿔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2012년과 2014년 우승 때도 고려 대상이었으나 그 땐 계약기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는 이유로 넘어간 뒤 2017년 시즌을 앞두고 마침내 범가너와 연장계약을 통해 그를 영원한 샌프란시스코 맨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범가너는 그 해 4월 더트바이크를 타다 사고를 당해 투수의 생명이라도 할 수 있는 어깨를 다쳤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지고 말았다. 샌프란시스코는 이후 범가너의 재기 여부를 확인할 때까지 논의 자체를 미뤘고 이듬해엔 범가너가 타구에 맞아 손을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재협상 이야기는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샌프란시스코는 지난 2년은 1200만 달러씩의 구단 옵션을 행사해 범가너를 더 묶어뒀다. 그리고 지난해 파한 자이디가 샌프란시스코의 새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샌프란시스코는 통계 분석 기법에 근거한 팀 리빌딩을 시작했고 여기에 팀의 아이콘으로서 범가너의 가치는 설 자리가 없었다.

결국 범가너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11년간 몸담았던 샌프란시스코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샌프란시스코는 마지막 순간 평균연봉에선 애리조나의 오퍼보다 약간 높은 4년 계약을 제시했지만 범가너는 미련없이 애리조나를 선택했다. 샌프란시스코 역사상 최고 전성기를 견인한 에이스는 이렇게 샌프란시스코를 떠나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11년을 뛰었지만 범가너의 나이는 아직 겨우 만 30세다. 그의 커리어가 이대로 하락일로를 걸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그가 애리조나에 새 터를 잡음에 따라 앞으로 한동안 매년 최소 3~4번 이상 샌프란시스코를 상대로 마운드에 오르는 범가너를 보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샌프란시스코 팬들은 “최소한 그가 (앙숙) 다저스에는 가지 않았다”고 자위하고 있지만 구단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거인의 시대가 너무 허탈하게 막을 내렸다는 사실에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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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디슨 범가너.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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