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1승15패... 빌리 빈 '머니볼', 왜 PO에선 안 통할까 [댄 김의 MLB 산책]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9.10.04 17:04 / 조회 : 8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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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빈 오클랜드 단장. /AFPBBNews=뉴스1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대표적으로 가난(?)한 팀 중 하나인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또다시 허무하게 시즌을 마감했다.

오클랜드는 올 시즌 97승을 올려 선수 연봉이 자신들보다 2배 반 가까이 많은 디펜딩 챔피언 보스턴 레드삭스(84승)를 무려 13게임 차로 제치고 플레이오프(PO)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하며 다시 한 번 ‘머니볼의 저력’을 입증했다.

그러나 3일(한국시간) 안방에서 벌어진 아메리칸리그(AL) 와일드카드 경기에서 탬파베이 레이스에 1-5로 완패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역시 97승으로 와일드카드를 따냈던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단칼 멤버’ 신세가 되며 ‘머니볼의 저력’이 ‘머니볼의 저주’로 끝나는 현상을 또 되풀이했다.

이번 패배로 오클랜드는 지난 2000년 이후 PO에서 지면 탈락하는 ‘벼랑 끝 경기’ 9연패를 당했다. 이 기간 중 이기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수 있는 경기에서의 성적은 1승15패다. 2006년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ALDS)에서 미네소타 트윈스를 꺾은 것이 지난 20년간 유일한 PO 시리즈 승리다. 20년간 오클랜드는 지구 우승으로 6회, 와일드카드로 4회 등 총 10번이나 PO에 나섰는데 첫 관문을 통과한 것은 그 2006년 ALDS 딱 한 번뿐이다.

거의 매년 메이저리그에서 연봉예산 최하 톱5에 드는 ‘스몰마켓 팀’ 오클랜드가 지난 20년간 10번이나 PO 무대에 진출하는 성공을 거두고 있는 배경에는 1998년부터 단장을 맡고 있는 빌리 빈의 ‘머니볼’ 철학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컴퓨터와 통계학적 분석 기법으로 선수를 평가하는 세이버 메트릭스를 활용해 경쟁 팀들에 비해 훨씬 적은 연봉 예산을 갖고도 꾸준하게 정상급 성적을 올려온 빈 단장과 오클랜드의 스토리는 2003년 출간된 ‘머니볼: 불공평한 경기를 이기는 기술(Moneyball: The Art of Winning an Unfair Game)'이라는 책과 이를 토대로 제작된 브래드 피트와 조나 힐 주연의 2011년 영화 ‘머니볼’로 한국 팬들에게도 잘 알려졌다.

하지만 가성비 측면에서 지난 20여 년간 최고의 성과를 올려온 오클랜드가 정작 PO에서는 도무지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클랜드가 2000년과 2001년에 이어 2002년까지 3년 연속으로 모두 PO 첫 관문인 디비전시리즈에서 2승3패로 아쉽게 탈락의 고배를 마시자 빈 단장은 다음의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내 똥은 플레이오프에선 효력이 없다(My shit doesn’t work in the playoffs)"는 것이었다. 그는 이 말에 이어 ”내 역할은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려놓는 것까지다. 그 다음에 일어나는 것은 순전히 운에 달렸다“고 덧붙였다.

즉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PO로 갈 만한 팀을 만드는 것까지이고 그 다음부터는 승운이 따라줘야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 말을 했는지, 아니면 그냥 잇단 아쉬운 패배에 답답하고 화가 나서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문제는 그의 말이 17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대로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오클랜드 팀은 20년간 PO에 나가는 족족 첫 판에 떨어지고 있으며 그 과정을 뜯어보면 정말 운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오클랜드가 2003년 ALDS에서 이번엔 보스턴에 또 2승3패로 패해 4년 연속 디비전시리즈를 2승3패로 탈락하자 사람들은 이런 오클랜드의 잇단 실패가 저비용 고효율만을 강조하는 ‘머니볼’의 약점이라고 평가했다. 돈을 쓰지 않고 고효율만 찾으니 결정적인 위기에서 팀을 구해줄 슈퍼스타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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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매트 채프먼이 지난 3일(한국시간) 탬파베이와 와일드카드 게임에서 패한 뒤 더그아웃에 앉아 있다. /AFPBBNews=뉴스1
오클랜드가 2012년과 2013년 디비전시리즈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 잇달아 2승3패로 패해 탈락했을 때 최종 5차전 선발투수 매치업은 바로 이런 평가가 나온 배경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두 해 모두 오클랜드는 5차전 선발로 나온 디트로이트 에이스 저스틴 벌랜더에게 꼼짝도 못하고 영패로 무릎을 꿇었다.

벌랜더는 2012년 4피안타 11탈삼진 완봉승을 거뒀고 이듬해엔 8이닝 2안타 10탈삼진 무실점 피칭을 했다. 그런데 당시 벌랜더의 마운드 상대로 나선 오클랜드의 5차전 선발은 루키였던 재로드 파커와 소니 그레이였다. 최종전에서 신인을 선발로 내보낼 수밖에 없는 것에서 ‘머니볼의 태생적 한계’라는 말이 나올 만했다.

이 때까지 플레이오프 벼랑 끝 경기에서 6연패를 당한 빈 단장은 이듬해인 2014년 시즌 도중 다시는 그런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그동안 하지 않았던 파격적인 결단을 내렸다. 그 해 오클랜드는 시즌 전반기까지 리그 최고 성적을 올리며 쾌속 항진 중이었는데 빈 단장은 정규시즌뿐 아니라 PO에서도 통할 팀을 만들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감행하기로 한 것이다.

우선 수많은 빅게임에서 위력이 검증된 포스트시즌 에이스 존 레스터를 보스턴에서 트레이드해왔다. 이어 또 다른 선발투수 제프 사마지아와 제이슨 해멀도 영입해 포스트시즌 마운드를 확실하게 보강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오클랜드는 이런 전력 보강 후 오히려 후반기 들어 급격한 슬럼프에 빠졌고 결국은 와일드카드 2위로 간신히 포스트시즌에 턱걸이해야 했다. 하지만 일단 PO에만 나가면 롱런을 염두에 두고 구축된 팀의 위력이 나타날 것으로 믿었다. 와일드카드 게임에서 또 다른 스몰마켓 팀 캔자스시티를 상대로 에이스 레스터를 선발 출장시킬 때만 해도 승리를 자신했다. 그리고 오클랜드가 경기 중반 7-3 리드를 잡았을 때만 해도 마침내 ‘머니볼의 저주’를 끝내는 듯했다.

하지만 캔자스시티는 8회 3점, 9회 1점을 뽑아 기사회생하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고 오클랜드는 연장 12회초 1점을 뽑았으나 12회말 2사 후 팀의 6번째 투수로 나선 해멀이 살바로드 페레스에게 결승타를 맞고 또 한 번 통한의 눈물을 뿌리고 말았다.

빌 단장의 ‘머니볼’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패배 중 하나였다. 반면 30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나선 캔자스시티는 기적 같은 역전승의 여세를 몰아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했고 이듬해엔 아예 월드시리즈 챔피언으로 등극해 오클랜드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결국 ‘머니볼의 전통적 코스’를 살짝 이탈하면서까지 시도했던 과감한 투자조차 실패로 돌아가자 “내 똥은 PO에선 효력이 없다”던 빈 단장의 말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2014년 통한의 패배 후 3년간 하위권으로 떨어져 포스트시즌 무대에 나서지 못했던 오클랜드는 지난해와 올해 모두 97승씩을 올리며 다시 ‘머니볼의 저력’을 되살려 냈으나 여전히 포스트시즌에선 단칼 멤버 신세를 면치 못하면서 원치 않는 ‘머니볼의 저주’도 되살아났다.

그래도 지난해엔 시즌 100승을 올린 빅마켓팀 뉴욕 양키스에 진 것이어서 아쉬움이 덜 했으나 올해는 자신들보다 승수도 적고 페이롤도 적은 팀인 탬파베이에 완패한 것이어서 엄청난 허탈감마저 밀려들고 있다. 정말로 빈 단장의 ‘똥’은 포스트시즌에선 아무런 효험도 없는 진짜 ‘똥’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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