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워바디' 꿈은 보이지 않지만, 눈앞의 몸은 보이네

김미화 기자 / 입력 : 2019.09.2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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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워바디' 포스터


2030으로 대변되는 '청춘'들은 각자의 트랙에서 치열하게 달리고 있다. 취업준비든, 고시준비든, 토익준비든, 공모전 준비든. 각자가 매진하는 것은 다르겠지만 소위 남들이 말하는 '스펙'과 '직업'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뉴스에서 들리는 말은 청년실업률 증가라느니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수백 대 일, 수천 대 일을 넘어섰다느니 하는 말뿐이다. 푸를청(靑)에 봄춘(春)자를 써서 청춘인데, 봄에 찾아오는 미세먼지 같이 청춘의 앞도 뿌옇기만 한 현실이다.

영화 '아워바디'(감독 한가람) 속 자영(최희서 분)도 이 시대가 바라는 청춘의 모습에 갇혀있다. 명문대를 나온 자영은 8년간 행정고시를 준비했지만 변한 것은 나이의 앞자리가 2에서 3으로 바뀐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엄마의 기대 속에, 동생의 응원 속에 혼자 집을 얻어 나와서 공부를 하지만 이제는 눈에 아무것도 안 들어온다. 결국 자영은 올해 시험을 보지도 않았다. 자영이 고시 공부하는 것을 지켜보던 남자친구는 자영이 올해 시험을 치러가지 않았다는 말에 "사람답게 좀 살아"라며 이별을 고하고 떠난다.


열심히 공부하며 달려왔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영. 칙칙한 피부에 불어난 몸무게, 뿔테 안경에 머리를 질끈 묶고 후줄근한 트레이닝 복을 입은 채 집 앞 계단에 앉아 캔 맥주를 마시던 자영은 건강미 풍기며 조깅하고 있던 현주(안지혜 분)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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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워바디' 스틸컷


'저 사람처럼 뛰고 싶다'라는 마음만으로, 자영은 구석에 처박혀 있던 운동화를 꺼내 신고 무작정 달린다. 유튜브를 보고 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시작하는데 지난 8년간 고시공부에만 매달리던 몸이 따라줄 리 없다. 터덜터덜 달리다가 다시 동네친구 현주를 만난 자영은, 현주의 페이스에 따라 달리다가 숨이 차서 헉헉대고 힘든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터뜨린다. 마치 남들처럼 살아보려고 뒤따라가는 몸부림치는 청춘의 눈물이 터진 것 같다.


동네친구이자 '런닝메이트' 현주를 만나 달리기 시작한 자영의 삶이 달라진다. 눈 앞이 막막한 취업도, 고시공부도 아니고 오직 기록이 말해주고 변화한 몸이 말해주는 런닝을 하면서 자영은 웃기 시작하고 진심으로 치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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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워바디' 스틸컷


친구가 근무하는 회사에 아르바이트로 일하면서도 자영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달리기와 그에 따르는 몸의 변화에 집중한다. 그러던 자영에게 큰일이 닥치고, 그 일을 계기로 자영은 스스로 억눌렀던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된다.

'아워바디'는 청춘의 현실을 그렸지만,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해피엔딩을 그리지 않는다. 따뜻함을 품고서 날카롭게 현실을 보여준다. 고시공부에 실패한 자영도, 그런 딸이 안쓰러워 채근하는 엄마도 흔히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모습 그대로다. 그래서 더 공감이 가고 아프다.

한국 사회는 '꿈'을 좇으며 다른 이들과 같은 꿈을 꾸고 따라가는 것이 맞다고 말한다. '아워바디'는 그 보이지 않는 꿈이 아니라, 내 눈에 보이는 몸을 통해 성장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시작점이 다른 사회에서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은 다 옛말이 됐지만, 몸만은 정확하다. 이 과정에서 '아워바디'는 여성의 몸을 성적인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고, 몸이 주는 변화와 건강함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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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워바디' 스틸컷


최희서는 자영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관객의 공감을 산다. 실제 이 영화를 위해 러닝을 시작한 최희서는 감정 연기뿐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자영의 변화를 표현해냈다. 어느 작품에서든 그 캐릭터 자체로 분하는 최희서는 '아워바디'를 통해 현세대의 30대 초반 여성이 느끼는 여러 감정을 깊게 표현해냈다. 최희서가 연기한 것은 30대 초반 여성 자영의 모습 속에는 남녀와 나이를 떠나 청춘이 느끼는 절망과 고통 그리고 삶이 들어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나도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뛰면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을 알지만, 마냥 달리고 싶다. 그것이 청춘이니까.

9월 26일 개봉. 러닝타임 95분,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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