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재난영화 같은 전쟁영화 ①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09.19 11:15 / 조회 : 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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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D-1. 전쟁의 명운을 쥐고 있는 이 작전을 성공 시키기 위해 북한군의 눈길을 끌려 장사상륙작전이 감행된다. 평균나이 17세. 훈련기간은 많아야 2주에 불과했던 772명의 학도병들이 장사리에 상륙했다.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그 학도병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겼다.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진다. 파도가 거칠다. 교복 입고 교모 쓰고 총 한 자루 들고 있는 학도병들. 북한군 총에 죽기 전에 뱃멀미로 먼저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이들을 이끌고 있는 이명준 대위는 그저 불안하다. 파도가 거칠고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상륙작전을 지원할 예정이었던 함포 사격도 공중 폭격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작전은 감행된다. 상륙정도 네 대밖에 없다. 빗발치는 총알 속으로, 바닷속으로 학도병들이 뛰어든다.

한국전쟁을 취재하는 미국 종군기자 매기.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어린 학생들을 장사리에 상륙시켜 적을 교란하려는 작전이 감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국군 고위 관계자는 어린 학도병에 관심 없고, 미군은 낙동강 전선과 인천상륙작전으로 장사리에 병력을 돌릴 수 없다고 한다. 매기는 대세를 위해 버리는 돌로 쓰이는 어린 학생들의 전쟁을 더욱 살핀다.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포화 속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잇는 태원엔터테인먼트의 한국전쟁 3부작이다. 곽경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학도병과 상륙작전, 실화. 곽경택 감독은 세 가지 축을, 그만의 방식으로 엮었다. 일찍이 '친구'로 교복 입은 학생들의 거친 성장사를 풀었던 그는, '장사리'에서 전장으로 떠난 교복 입은 학생들을 그렸다. 그러니 짙은 경상도 사투리 쓰는 남자들의 우정과 갈등, 그리고 전쟁, 희생과 헌사가 고루 담겼다.

'장사리' 초반 20분은 압권이다. 폭풍우 치는 바다를 뚫고 장사리에 상륙해서 참호전까지 이어지는 액션 시퀀스는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복 입고 교모 쓰고,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모래사장을 내달리다가 참호에 뛰어들어 백병전을 벌이는 전개는, 여느 할리우드 전쟁 영화 못지않은 긴장감을 준다. 특히 참호전은 백미다. 단지 전투 장면을 잘 담은 게 아니다. 북한군 나이도 학도병 나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쟁으로 어린 나이에 서로가 서로에게 총과 칼을 겨누고 죽고 죽이는 모습으로, 역설적으로 반전을 이야기한다. 액션이 서사한다. 파도에 둥둥 떠밀려 오는 교모는 그대로 '장사리'다.

고지를 점령한 뒤, 인민군이 몰려오는 사이 전개되는 드라마는 소소하다. 곽경택 감독은 이 소소한 이야기들에 큰 뜻을 담았다. 최성필 역의 최민호, 기하륜 역의 김성철 등 학도병들의 작은 이야기를 쌓고 쌓아 전쟁의 참혹함을 전시한다. 이 참혹함의 전시로 반전의 메시지를 전한다.

'장사리'는 안타고니스트가 없다. 북한군을 괴물로 그렸던 '포화 속으로' '인천상륙작전'과 다르다. 전쟁이 재난이요, 곧 안타고니스트다. 그 재난에 희생된 사람들로 그렸다. 그렇기에 '장사리'는 전쟁영화면서 재난영화 같다. 다만 이 재난은 인재이기에, 전쟁이기에, 실화이기에, 희생과 헌사를 분명히 했다. 반전의 메시지와 희생에 대한 헌사는 '장사리'를 여느 국가주의를 강조한 영화와는 또 다르게 한다.

학도병을 연기한 김성철, 장지건, 이재욱 등은 좋다. 학도병을 이끈 상사 역의 김인권, 학도병과 끝을 같이 한 중위 역의 곽시양도 좋다. 이명준 대위 역의 김명민은 비중은 적어도 안정감을 준다. 매기 역의 메간 폭스와 학도병 역의 최민호는 아쉽다. 여성 캐릭터의 사용도 아쉽다. 강렬한 액션 시퀀스에 비해 감정을 고양시키는 데 동원된 음악은 버겁다.

'장사리'는 부제처럼 잊혀진 영웅들의 이야기다. 영웅이 되려 하진 않았지만 영웅이 돼버린, 그리고 잊혀진 학도병들의 이야기다. 스크린에 옮긴 수고가 고맙다.

9월 2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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