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할 순 없다" 진가신과 '변호인'..홍콩시위에 부쳐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08.16 11:46 / 조회 : 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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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진가신 감독과 영화 '변호인' 포스터


2014년 10월 4일이다. 부산 해운대 그랜드 호텔에서 홍콩의 진가신 감독을 만났다. 마침 홍콩은 우산 혁명이 한창이었다. 그해 9월부터 홍콩의 대학생들과 교수, 지식인들은 2017년부터 시행되는 행정장관 선출방식을 놓고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시위대가 당국의 최루액을 우산으로 막으면서 우산 혁명이라 불렸다.


진가신은 '첨밀밀' '명장' 등으로 한국에도 두터운 팬을 갖고 있는 감독이다. 홍콩 사람이란 정체성을 갖고 있는 그는 그간 영화 속에 홍콩에 대한 애정을 무던히 담아왔다. 그런 진가신 감독은 그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중국 본토와 합작해서 찍은 영화 '디어리스트'가 초청돼 3년만에 부산을 찾았다.

내외신 모두 진가신 감독이 우산 혁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이 쏠렸다. 진가신 감독이 홍콩인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내 왔는데 다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디어리스트'를 통해 중국 사회 문제를 깊숙이 다뤘기 때문이다. 원래는 인터뷰로 진행하려다가 요청이 쇄도하면서 기자회견으로 바뀌었다.

한 한국기자가 진가신 감독에게 "현재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산 혁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정치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 탓인지, 통역의 오류인지, 진 감독은 답을 하지 않았다.

기자가 다시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안 했는데 그렇다면 지금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디어리스트'처럼 먼 훗날 다른 관점에서 영화로 만들 수 있겠냐"고 물었다.


진가신 감독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는 "진짜로 너무너무 비통하다. 하지만 이런 소재는 영화로는 만들 순 없을 것 같다"며 "왜냐하면 출구가 없기 때문이다.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토로했다. 진가신 감독은 "홍콩 사람이라 매일매일 뉴스를 보고 있는데 학생들이 이렇게 열정적으로 자신들의 소리를 내는 건 당연하지만 결과가 없는 걸 보면서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만든 '중국합화인'이란 영화에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천진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대사가 있다"며 "요즘 내 생각과 가장 맞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진가신 감독의 말에 기자회견장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자리에는 홍콩 기자들도 중국 기자들도 있었다. 잠시 뒤 한 홍콩 기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 기자는 "최근 홍콩에는 '변호인' 등 한국영화들이 많이 상영돼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면서도 "그래서 진가신 감독은 어떻게 일상을 보내고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진가신 감독은 "원래 하려던 질문은 그게 아닌 것 같다"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현재 홍콩에선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개정을 반대하는 시위가 뜨겁다. 송환법이 개정되면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중국에 범죄인이 인도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홍콩의 민주주의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걱정으로,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홍콩경찰의 강경 진압이 논란이 되고 있고, 중국군의 무력 진압이 예상되는 등 현재 홍콩은 일촉즉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국에서 활동 중인 중화권 아이돌들이 연일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중화권 출신 아이돌 멤버들은 최근 각자 웨이보에 "오성홍기에는 14억 깃발 보유자가 있습니다. 나는 깃발 소지자입니다"라는 내용의 글과 함께 중국 국기 사진을 게재했다. 홍콩과 마카오, 대만 등이 모두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 당국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다.

대만 출신인 워너원의 라이콴린과 홍콩 출신인 갓세븐의 잭슨도 이 같은 행렬에 동참했다. 엑소의 레이는 빨간색 바탕에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 "홍콩이 부끄럽다"라는 문구가 적힌 이미지도 올렸다. 레이는 중국 기획사를 통해 삼성전자 휴대폰 광고 모델 계약을 해지한다고 알리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사이트에 대만과 홍콩을 다른 국가처럼 별도로 표기했다는 게 계약 해지 통보의 이유였다.

중국 본토 배우들도 다르지 않다. 디즈니 영화 '뮬란'을 찍고 있는 유역비도 최근 웨이보에 "홍콩이 부끄럽다"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는 글을 올렸다. 성룡은 CCTV에 "홍콩은 내 고향이고 중국은 내 국가"라며 "나는 내 국가와 고향을 사랑한다. 홍콩이 빨리 안녕을 되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14년 우산 혁명을 지지했던 주윤발과 유덕화, 양조위, 이안 감독 등은 이번 시위에는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주윤발 등은 우산 혁명을 지지했다가 중국 내 활동을 금지당했다. 중국 당국은 지난 7일 "본토의 영화와 영화인들이 올해 56회 대만 금마장 영화제에 참가하는 것을 잠정 중지한다"고 공지했다. 이 영화제에 참여하는 영화는 중국 상영이 금지되고, 해당 배우는 요주의 인물 리스트에 오를 것이란 말도 무성하다.

진가신 감독이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순 없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순 없다"고 말한 지 5년이 지났다. 바위는 더욱 단단해졌고, 계란을 던져봤자 깨질 것 같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홍콩에선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순 없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안 할 순 없다는 사람들이 일어났다.

홍콩 시위에 영향을 준 영화 '변호인'에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하지만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어있고, 계란은 아무리 약해도 살아있으니 마침내 계란이 깨어나 바위를 넘는다"는 대사가 나온다. 부디 계란이 바위를 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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