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머가 미쳤다!' 레너드·조지 입단식 압도한 억만장자 구단주의 열정 [댄 김의 NBA 산책]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9.07.26 18:41 / 조회 : 4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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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발머(왼쪽부터) 구단주-폴 조지-카와이 레너드. /AFPBBNews=뉴스1
미국프로농구(NBA) LA 클리퍼스는 현지시간으로 24일 카와이 레너드와 폴 조지의 입단식 겸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리에이전트 계약(레너드)과 블록버스터 트레이드(조지)를 통해 이들 두 명의 슈퍼스타들이 클리퍼스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은 이번 오프시즌 NBA 최고의 스토리였다. 당연히 이날 입단식과 기자회견에도 300명이 넘는 취재진이 몰려들 정도로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뒤 대부분 뉴스 미디어들의 포커스는 레너드나 조지가 무슨 말을 했느냐가 아닌 또 다른 한 사람에게 맞춰졌다. 바로 클리퍼스의 억만장자 구단주 스티브 발머(63)였다.

레너드와 조지를 소개하는 입단식에서 마이크를 잡고 사실상 MC 역할을 자청하고 나선 발머는 클리퍼스 사상 최고의 계약을 성사시킨 데 대한 흥분과 감격을 조금의 억누름도 없이 마음껏 폭발시켰다. 레너드와 조지를 소개하면서 참석한 취재진과 관계자들, 팬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이들을 박수로 맞으라고 독려하는 그의 목소리엔 거부하기 힘든 카리스마와 파워가 넘쳤다.

그 어떤 전문 응원단장도 이날 발머의 엄청난 퍼포먼스(?) 앞에선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발머는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로 행사장 전체를 완전히 압도하면서 클리퍼스의 새로운 시대 개막을 선포했고 그의 열정과 감격 앞에 이날의 주인공들인 레너드와 조지까지도 스포트라이트를 잃을 지경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이를 보도한 각 뉴스 미디어에 등장한 헤드라인을 살펴보면 레너드와 조지의 이름과 발머의 이름이 똑같은 비율로 등장했다. 하지만 그 중심엔 레너드와 조지가 아닌 발머가 있었다.


“발머가 레너드, 조지 이벤트에서 완전히 돌았다"(TMZ), “발머가 레너드와 조지를 소개하면서 완전히 미쳤다”(야후 스포츠 UK), "발머가 레너드-조지 소개 때 미친 듯 격렬했다“(마사블), ”레너드-조지 기자회견에서 발머가 쇼를 훔쳤다“(야후 엔터테인먼트), ”발머가 레너드-조지 기자회견에서 폭주했다“(폭스 스포츠), ”레너드-조지 기자회견에서 발머의 에너지가 센터 스테이지를 차지했다“(LA타임스) 등 대부분의 헤드라인들은 발머의 열정이 이날의 하이라이트였음을 알리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인 레너드와 조지에 대한 스포트라이트마저 훔쳐갈 정도의 임팩트 만점의 강렬한 액션이었음에도 모든 참석자들은 물론 레너드와 조지까지도 모두 일말의 불편함이나 어색함 없이 너무도 즐겁게 구단주의 흥분에 동참했다는 사실이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난 뒤 레너드와 조지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고 대신 구단주의 뜨겁고 열정적인 반응만이 기억에 남은, 정말 특별한 기자회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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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에서 손뼉을 치는 스티브 발머 구단주(오른쪽). /AFPBBNews=뉴스1
사실 클리퍼스는 5년 전인 2014년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었던 발머가 20억 달러에 구단을 인수한 이후로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 악덕 구단주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도널드 스털링 전 구단주 하에서 NBA 최악의 구단으로 바닥을 헤맸던 클리퍼스는 발머가 새로운 구단주로 합류한 이후엔 NBA에서 가장 프로페셔널하게 운영되는 구단으로 탈바꿈했다.

물론 몇 십 년에 걸친 만년 꼴찌구단의 흔적을 하루 아침에 몽땅 지워내기란 힘들었지만 발머의 시대가 열린 뒤 5년이 지난 지금 클리퍼스는 이미 모든 면에서 엘리트 구단으로 자리 잡았다. 같은 LA에서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지내지만 항상 클리퍼스를 뒤덮고 있던 존재였던 레이커스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레이커스와 직접적으로 경쟁한 이번 레너드 영입전에서 완승을 거둔 것도 클리퍼스의 위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잘 말해주는 것이었다. 지금 레이커스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난맥상을 본다면 어느 쪽이 더 안정된 구단인지에 대한 기존의 생각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사실 구단주들을 놓고 순위를 매긴다면 클리퍼스는 이미 NBA 1위일 것이다. 아니 NBA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스포츠 구단 중 1위일 지도 모른다. 개인 자산 453억 달러로 올해 포브스 선정 세계 최고 갑부 랭킹에서 19위에 올라있는 발머는 전 세계 모든 스포츠 구단주들(개인) 가운데 자산 랭킹이 최고이지만 꼭 돈이 많아서 최고인 것이 아니다.

소유권은 갖고 있지만 큰 투자는 꺼리고 뒤에서 숨어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상당수 거물급 구단주들과 달리 그는 구단 운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무엇보다도 팀의 발전에 전력을 투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돈이면 다 된다는 식으로 팀을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구단 운영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구단주라는 위치를 앞세워 독불장군식으로 구단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아니다.

하버드 출신으로 15년 가까이 마이크로소프트의 CEO를 역임한 발머는 냉철하면서도 과감하게, 그리고 특히 이날 기자회견에서 보여줬듯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놀라운 열정을 가지고 구단을 이끌고 있다. 스포츠 구단주는 처음이었지만 독 리버스 감독과 제리 웨스트 고문 등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과 함께 아무런 잡음 없이 조용하게 클리퍼스를 명문구단으로 탈바꿈시켜가고 있다.

이번 레너드 영입전에서 클리퍼스가 승리한 것도 상당 부분은 발머 구단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직접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며 레너드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가 원하는 모든 것들을 선제적으로 처리해 나간 것도 발머의 놀라운 추진력의 위력을 보여준 것이었다. 구단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그 어떤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는 그의 열정만으로도 레너드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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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발머 구단주의 발언에 웃음 짓는 폴 조지(왼쪽)와 카와이 레너드. /AFPBBNews=뉴스1
클리퍼스는 레너드와 조지 입단 기자회견 다음 날인 25일엔 LA 다운타운 남쪽 잉글우드 지역에 1만8500석 규모의 전용 경기장을 포함한 새로운 대규모 헤드쿼터 콤플렉스 건립안을 발표했다. 1999년부터 레이커스, LA 킹스(NHL)와 LA 다운타운에 위치한 스테이플스센터를 공유해 쓰고 있는 클리퍼스로선 스테이플스센터의 리스 계약이 2024년에 만료되는 것에 대비, 본격적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10억 달러 이상이 투입될 이 초대형 프로젝트는 공적 자금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100% 발머 구단주가 개인적으로 재원을 충당하며 2021년 착공해 3년 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콤플렉스에는 경기장 외에도 스포츠 의료기관과 3개의 주차빌딩, 공원과 교육시설, 레스토랑과 비즈니스 건물 등을 포함하고 외부에서는 초대형 스크린을 통해 야외 관전과 응원을 할 공간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발머 구단주는 “내가 클리퍼스를 샀을 땐 구장을 새로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스테이플스센터에 머무는 것에 단점을 발견하게 됐다”면서 “새로운 잉글우드 아레나는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해줄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레이커스 빌딩에서 플레이한다고 했는데 이제는 클리퍼스 빌딩에서 플레이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레이커스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 진정한 NBA의 명문 구단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새로운 구장으로 옮겨가기 전에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NBA 타이틀을 따내는 것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행보로 볼 때 그것이 조만간 현실로 이뤄질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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