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너드 '감독·각본·주연', NBA를 경탄케한 'FA 드라마' [댄 김의 NBA 산책]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9.07.09 19:40 / 조회 : 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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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와이 레너드(오른쪽)가 지난 6월 토론토 로저스 센터에서 열린 MLB 토론토-LA 에인절스의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미국프로농구(NBA) LA 레이커스와 LA 클리퍼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 위치한 스테이플스센터를 안방으로 공유하는 ‘한 지붕 두 가족’ 사이다. 보통 같은 도시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팀들 간에는 치열한 라이벌 관계가 형성돼 있고 이들의 맞대결은 ‘더비’로 불리며 큰 관심을 끌게 마련이다. 더구나 홈구장을 함께 쓰는 사이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커스와 클리퍼스의 관계는 일반적인 동향의 라이벌 관계들과는 달랐다. 전통적으로 NBA의 최고 명가였던 레이커스와 항상 바닥권이었던 클리퍼스의 배경이 너무도 큰 차이가 났기 때문에 두 팀 사이를 진정한 의미에서 맞수라고 부르기 힘들었다. 레이커스가 통산 41번이나 서부 결승에 오르고 이 중 31차례 NBA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 16번이나 우승을 하는 동안 클리퍼스는 챔피언 결정전은커녕 서부 결승에도 한 번 올라본 적이 없다.

이들 두 팀은 로스앤젤레스를 홈으로 공유한 지난 34년 동안 단 한 번도 플레이오프에서 만나지 않았다. 양팀이 동시에 플레이오프에서 톱4 시드를 받은 시즌도 없었다. 같은 LA팀이라는 걸 제외하면 라이벌이라고 불릴 이유 자체가 없는 사이였다. 라이벌이 아니라 그냥 ‘룸메이트’ 사이라고 하면 딱 맞을 관계였다.

그런데 지난 주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슈퍼스타 프리에이전트(FA) 카와이 레너드(28)가 레이커스의 간절한 구애를 뿌리치고 클리퍼스로 간 것도 모자라 오클라호마시티(OKC)의 폴 조지(29)까지 데리고 클리퍼스에 합류한 것이다. 르브론 제임스-앤서니 데이비스에 레너드가 합류해 역대 최강의 ‘빅3’ 라인업을 구축하기를 꿈꿨던 레이커스로서는 쓴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문제는 레너드를 놓친 것뿐만 아니라 레너드와 조지의 합체로 인해 무시무시한 위협이 바로 자기 집 안방에 등장했다는 데 있다. 클리퍼스는 슈퍼스타 FA로서 지닌 파워와 NBA의 파워구조를 십분 활용한 레너드의 눈부신 ‘FA 파워플레이’ 덕분에 단숨에 최고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NBA 최고의 파워듀오 르브론과 앤서니를 앞세워 NBA 정상 탈환을 꿈꾸던 레이커스는 이제 자기 집 안방에서조차 ‘넘버 1’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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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우승 기자회견에 참석한 카와이 레너드. /AFPBBNews=뉴스1
이번 클리퍼스와 계약 과정에서 레너드가 보여준 움직임은 현지 NBA 전문가들의 경탄을 자아내고 있다. 코트 위에서 한 팀을 NBA 챔피언으로 만들 능력을 갖고 있음을 입증한 그가 코트 밖에서도 자신의 새 팀을 챔피언 후보로 만드는 동시에 잠재적인 위협이 될 라이벌 팀들을 견제하는 역할까지 완벽하게 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터넷 매체 데드스핀은 레너드가 이번 FA시장에서 보여준 움직임은 그가 NBA의 ‘올해의 중역’으로 선정되기에 충분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FA 협상기간 동안 레너드는 레이커스와 클리퍼스, 그리고 전 소속팀 토론토 랩터스 등 3개 팀을 계약후보로 올려놓았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힌트도 흘리지 않았다. 그 누구도 레너드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소위 NBA 내부 소식통들도 클리퍼스 계약 합의 보도가 나오기 직전까지도 SNS를 통해 그가 토론토와 2년 단기계약을 맺을 것이 유력하다는 예측을 내보냈다.

그런데 그가 클리퍼스와 계약에 합의했고 더구나 조지까지 함께 클리퍼스로 간다는 보도가 나오자 한 마디로 NBA 전체가 뒤집어졌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가 나왔기 때문이다.

사실 레너드의 유력 행선지로 클리퍼스보다는 레이커스가 유력하게 예상됐던 이유는 레너드가 온다고 클리퍼스가 당장 우승후보가 되기는 힘들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반면 그가 레이커스로 가서 르브론-앤서니와 힘을 합친다면 그야말로 필적할 상대가 없을 것으로 예상됐다.

레이커스는 그를 모셔가기 위해 사실상 팀을 완전 분해해 맥시멈 FA 계약을 할 샐러리캡을 만든 뒤 다른 FA들과 협상도 미룬 채 그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레이커스로선 레너드 영입 경쟁에서 매우 중요한 우승 가능성 측면에서 클리퍼스보다는 유리하다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레너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음 속으로 클리퍼스를 낙점한 뒤 단순히 클리퍼스와 FA 계약을 하기에 앞서 자기의 다음 팀 클리퍼스를 확실한 우승후보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 시나리오를 계획했다.

그는 우선 또 다른 FA 슈퍼스타 케빈 듀랜트에게 연락해 자신과 함께 클리퍼스에서 힘을 합칠 것을 제안했다. 듀랜트는 개인적으론 그렇게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던 레너드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고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당시 그는 이미 절친한 친구 사이인 카이리 어빙, 디안드레 조던과 함께 뉴저지 네츠로 가기로 약속한 상태였기에 레너드의 제안이 매우 끌렸음에도 그의 오퍼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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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라호마시티 시절 폴 조지. /AFPBBNews=뉴스1
듀랜트 영입이 불발된 레너드는 그와 마찬가지로 오래 전부터 LA 쪽으로 온다는 루머가 있었던 LA 인근 출신 조지를 접촉했다. 조지는 불과 1년 전 FA로 레이커스와 협상조차 하지 않은 채 OKC와 맥시멈 4년 1억3700만달러에 계약한 선수여서 아무도 그가 움직일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NBA의 파워구도를 완벽하게 꿰뚫고 있던 레너드는 기존 계약과 관계 없이 조지의 미래를 결정할 힘은 조지 본인에게 있음을 간파하고, 함께 클리퍼스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자며 설득했다. FA인 듀랜트와 달리 조지는 클리퍼스로 오려면 팀간의 복잡한 트레이드가 동반돼야 한다는 사실도 레너드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레너드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조지가 OKC에 클리퍼스행 트레이드를 요구하고, 레너드는 클리퍼스에 조지 영입 트레이드를 요구하면서 이 모든 것은 순간적으로 해결됐고 레너드의 클리퍼스 계약과 조지의 트레이드 뉴스가 동시에 터져 나와 NBA를 경악시켰다. 향후 수년간 NBA 파워구도를 완전히 바꿔놓을 레너드의 걸작품이 세상에 등장한 순간이었다.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은 레너드가 계약 뉴스가 나오는 것을 거의 일주일 가까이 방지한 것은 레이커스가 자신과 계약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일찍 알게 돼 다른 스타들 영입에 나서지 못하도록 발을 묶어 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레이커스로선 한동안 레너드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조지의 클리퍼스행이 불발됐더라면 레너드가 마지막 순간 레이커스와 계약하는 쪽으로 선회했을 가능성도 있기에 그것이 원래 의도였다고 선뜻 단정 짓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레이커스는 일단 레너드의 클리퍼스행이 굳어지자 지난 주말부터 잰걸음으로 움직이며 상당히 탄탄한 로스터를 구축했다. 원했던 3번째 슈퍼스타는 얻지 못했지만 대신 두터운 선수층을 확보해 클리퍼스와 한판승부를 펼칠 만한 팀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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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레이커스의 앤서니 데이비스(왼쪽)-르브론 제임스. /AFPBBNews=뉴스1
이제는 레너드-조지의 클리퍼스와 르브론-앤서니의 레이커스가 NBA 챔피언 결정전 출전권을 놓고 충돌하는 ‘LA 더비’ 라이벌전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 오르고 있다. 과거 역사와 관계없이 두 팀은 갑자기 최대 라이벌이자 맞수 관계가 된 것이다. 수십 년간 존재한 적이 없었던 라이벌 관계가 한 슈퍼스타의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한순간에 만들어진 셈이다.

또 앞으로 최소한 3~4년간 NBA의 흐름도 완전히 달라지게 됐다. 단순히 우승판도만 바뀐 것이 아닌 것이다. 조지를 클리퍼스에 내준 OKC는 간판스타 러셀 웨스트브룩마저 트레이드하고 완전히 팀 리빌딩 모드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한 선수의 완벽하게 설계된 움직임이 완전히 NBA 판도를 뒤흔든 것이다. 이 정도면 레너드에게 ‘NBA 올해의 중역상’을 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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