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겜이라는 거짓말, 모바일 MMORPG의 배신

이덕규 객원기자 / 입력 : 2019.05.2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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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서는 모바일 MMORPG에 기대 자체가 없다. 사실 최근의 일도 아니다. 이제 MMORPG는 모바일과 PC과 확실하게 구분되어야 하는 시대다. 같은 MMORPG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모바일과 PC의 게임플레이 방식은 1부터 100까지 다르다고 봐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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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모바일에서 MMORPG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가 기대한 것은 자동이동과 자동수행과 자동전투가 아니었다. PC MMORPG가 그러하듯 어떤 세계 안에 들어가 직접 탐험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주인공'이 된 듯한 재미를 기대했다. 하지만 모바일 MMORPG는 수없이 유저를 배신해 왔다.


하지만 이 배신은 어쩌면 철저히 계산된 기획이었을지 모른다. 모바일 기기의 조작은 PC보다 훨씬 빠르게, 더 큰 피로감이 엄습하기 마련이기에.

화면도 작고, 그 작은 화면 안에서 가상패드를 이용해 캐릭터를 조종해야 하며, 이펙트나 배경 그래픽이 아무리 화려하다 한들 모니터에 비해 몰입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애초부터 잘못된 캐치프레이즈였다. 모바일 MMORPG에서 'PC MMORPG를 플레이하는 듯한 느낌'은 받을 수가 없다. 태생적으로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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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유투버로 인기를 끌고 있는 시미즈 켄(일본의 AV배우....뭐 다들 알죠?)이 광고모델로 등장해 야릇한 표정을 짓는 바람에 논란부터 시작했던 게임이 있다. 바로 모바일 MMORPG '아르카'다.


사실 뭐 믿지도 않았다. 이 게임 깔았던 분들 중에 혹시 아르카가 갓겜이라는 그 형 말 믿고 깐 사람 진짜 한 명이라도 있어요? (계시다면 제가 다음 원고에서 사죄드릴 것입니다) 갓겜이라는 홍보문구 한두번 보냐 이거야. 믿어주기엔 우린 너무 많이 속았다.

콧구멍 사이즈까지 조절할 수 있는 요즘 같은 세상에, 직업이 같으면 전부 쌍둥이인 이 게임 '아르카'의 첫인상이 좋을 수는 없었다. 아니 머리 색이라도 바꾸게 해 줘야지, 거기다가 장비 낀다고 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처음 마주한 화면은 너무도 전형적인 모바일 MMORPG의 그것이었다. 자동전투와 가상패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메뉴버튼과 캐릭터창, 퀘스트 목록...이젠 안보고 그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스샷만 놓고 보면 무슨 게임인지 알아맞추기가 하늘에 별따기일 정도인 요즘 세상에 정말 새로울 것도 특이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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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리엘의 디자인은 대체 무엇이길래 온갖 게임에서 베끼는 것인가
판타지 배경에다가, 중국 개발사 티 팍팍 나는 미묘한 번역투 스크립트에, 심지어 연출 컷씬에서는 스크립트와 사운드가 제대로 싱크도 안 맞춰져 있어서 사운드가 씹힌다. 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허허 웃음까지 나오더라.

진행은 언제나 그랬다시피 알아서 잘 싸우고, 유저가 할 일은 적당히 손가락만 움직이면서 구경하면 된다. 양손을 써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검지손가락이 있으니까. 턱 괴고 앉아서 툭툭 누르다 보니까 40레벨이다. 이거 완죤 리니지 PSS네.

관상도 지겨워질 때쯤 이리저리 메뉴를 들어가 봤다. 이거 뭐 한 일도 없는데 황송하게 보상을 엄청 준다. 대단한 보상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지만, 그저 검지손가락 운동만 좀 했을 뿐인데 참 이것저것 많이도 준다. 뭔지는 모르지만 다 받는다. 어느새 탈것도 받았다. 올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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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페가수스를 줬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겁니까
그렇다. 이제 게임 얘기를 더 할 필요는 없다. 이 게임엔 그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식 양산형 MMORPG라고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프레임과 바로 그 게임성이다. 과금? 과금유도는 사실 말할 필요가 없다. 업적이나 목표달성으로 꽤 퍼주는 것 같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으려면 과금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하지만 장점은 분명히 있다. 이 게임은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다.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미니맵을 확인하고 최적루트를 짠다던가 이런 지능적인 플레이는 필요없다.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다.

“ 오토를 돌릴 만큼 배터리 잔량은 충분한가? ”

고민할 필요 없이 짜여진 루트를 따라가면 그만이고, 적당히 따라가기만 해도(물론 남들과 다를 거 하나 없겠지만) 꽤 화려한 코스튬과 탈것을 얻을 수 있다. 날개 달린 탈것을 타고 창공을 가르는 캐릭터의 모습을 애니 보듯 구경하는 것이다.

언젠가 모바일 MMORPG를 이제 관상용 RPG라고 불러야 한다고 한 적이 있었다. 딱 그 표현이 적확하다. 관상용이다.

모바일 MMORPG는 MMORPG가 아니다. 그저 오토일 뿐이다. 어떤 방식으로 나오든 이제 모바일 플랫폼의 MMORPG를 표방하는 게임은 이 형태를 벗어나기 어렵다. 오토를 돌려서 자원을 모으고, 레벨업을 하고, 도감을 채운다. 그리고 어쩌다 던전 한 번 들어가서(물론 이것도 오토로 가능하겠지만) 조작 좀 해주면 딜 1등 찍기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나머지 파티원도 다 오토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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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는 누구에게도 인생게임으로 기억되지는 않을 것이다. 대단한 스토리도 없고 대단한 게임성도 없다. 소위 말하는 X겜이라고 서슴없이 부르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유저는 꽤 있다. 심지어는 매출차트 성과도 나쁘지 않다. 그 유저들은 이 게임이 오토의 향연이라는 걸, 양산형이라는 걸 몰라서 플레이하고 있는 걸까? 그럴 리 없다.

적당히 터치만 해 주면 알아서 성장하고 알아서 전투하고 알아서 장비까지 입는 총천연 파워풀 풀오토 시스템이라는 걸 몰라서 할까? 오히려 오토를 원하는 사람도 많다. 조작하는 맛, 소위 손맛도 없는 게임을 왜 할까? 답은 간단하다. 생각할 필요가 없고 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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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사정만 넉넉하다면야 무엇을 고민하겠는가
조작하는 재미를 원한다면, 손맛을 원한다면 이제 모바일 게임을 구태여 선택할 유저는 많지 않다. PS4에는 수많은 타이틀이 있으며 닌텐도 스위치는 좀 더 역동적이다. VR 기기까지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시대에 조작감과 체감을 원한다면 왜 모바일을 선택하겠나. 모바일게임의 조작감은 그저 그런 수준이다.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도 이제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손맛을 구현한 게임이 흥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모바일은 모바일일 뿐이다. 플랫폼 특성은 확연하고 한계 역시 명확하다. 그 이상의 손맛은 다른 플랫폼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고, 그렇다면 모바일게임을 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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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게임, 특히 모바일 MMORPG가 오토를 기본기능으로 탑재하게 된 것은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플랫폼의 한계를 직시한 결과다. 모바일 게임은 기본적으로 이동 중을 포함해 어디에서나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이 최고의 장점이었지만 그만큼 단점도 명확했다. 그 결과가 작금의 모바일게임들이다.

모바일게임은 모바일 플랫폼의 특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바일에서도 PC MMORPG를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언어도단이고 거짓말이다. 그럴 수는 없다. 정말 그 말이 맞았다면 PC게임 시장은 사장되었어야 옳다. 하지만 그럴 리 없었다. 정확히는 그럴 수 없었다.

간편한 플레이, 손쉬운 조작, 높은 이동성이 모바일게임의 특성이자 장점이다. MMORPG란 장르는 애초부터 모바일과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래 전 모바일 시장에서 RPG가 득세하기 시작한 그 시절부터 언젠가 모바일 게임에도 MMORPG 전성기가 도래할 거라는 이야기는 있었다. 하지만 그때 기대했던 것이 이런 형태가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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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일부처럼 느껴질 정도로 몰입도가 높은 MMORPG의 매력... 모바일에는 없다
플랫폼 후발주자일 수밖에 없었던 모바일이 여타 플랫폼, 즉 PC와 콘솔 등의 카피 형태로 시작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초반의 재기발랄함에 비해 최근은 플랫폼을 진지하게 고려한, 장르적으로나 게임으로서나 참신한 시도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대형게임사의 신작 중에서도 고민 없어 보이는 타이틀이 허다한 요즈음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싶으면서도, 아직도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모바일이기에 더 빛나는 장르, 모바일 플랫폼이라서 더 재미있는 게임이 왜 없겠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지 이제 10년을 향해 간다. 이제는 조금 더 고민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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