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스의 파격 실험, 신인 드래프트 변혁 불러올까 [댄 김의 MLB 산책]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9.05.28 13:33 / 조회 : 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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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보라스. /AFPBBNews=뉴스1
올해 메이저리그(MLB)의 신인 드래프트는 다음 달 3일(현지시간)부터 실시된다.

사흘에 걸쳐 열리는 MLB 드래프트는 팀당 총 40라운드로 진행된다. 1, 2라운드 사이와 2, 3라운드 사이에 직전 시즌 드래프트 지명선수와 계약이 불발됐거나 소속팀 출신 프리에이전트(FA) 선수를 다른 팀에 잃은 구단에 대한 보상 지명권 라운드도 있어 매년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MLB 30개 구단이 모두 약 40명을 지명하는 것이니 매년 평균 1200명 정도가 지명을 받는다. 지난해 드래프트에서는 총 1214명이 지명을 받았다.

공식적으로 ‘1년차 선수 드래프트(The first-year player draft)'라고 불리는 MLB 드래프트는 1965년 처음으로 실시된 후 아마추어 선수들을 메이저리그 구단들에 공급하는 기본 통로 역할을 해왔다. 재능 있는 선수들을 끊임없이 확보해야 하는 MLB 구단들에 드래프트는 오래 전부터 대단히 중요한 과정이었지만 최근 들어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선수들에 대한 분석과 스카우트 작업이 갈수록 전문화했고 최상위급 유망주들의 가치가 폭등하면서 드래프트 지명권, 특히 상위라운드 지명권 가치들은 덩달아 폭등했다. 요즘은 드래프트 상위 지명권 가치가 웬만한 빅리그 팀의 주전급 선수보다 더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됐다.

지난해 시즌 종료 후 원소속팀의 퀄리파잉 오퍼(QO)를 거부하고 FA로 나섰다가 아직도 소속팀을 찾지 못한 달라스 카이클과 크레이그 킴브럴이 FA 시장에서 미아 신세로 남게 된 이유에도 드래프트 지명권이 무관하지 않다. QO를 거부하고 나선 선수와 계약하는 구단은 선수의 원래 구단에 보상으로 드래프트 지명권을 내주게 되는 사실상의 징벌 규정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은 그런 드래프트 보상 지명권 조항에도 QO를 거부한 선수들이 FA 시장에서 거액 계약을 얻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지만 드래프트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지난해부터 확연히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카이클과 킴브럴 같은 최정상급 투수들에 대한 영입 결정에서도 거액을 투자해야 한다는 금전적인 부담 외에 소중한 드래프트 지명권을 잃는 것에 대한 반발기류가 강해진 것이다.

과거라면 서로 모셔가려고 구단들이 줄을 섰을 카이클과 킴브럴 같은 선수들마저 FA 시장의 미아 신세로 만들 정도로 강력한 변화다. 당장 올 가을 오프시즌에서 QO를 받는 선수들은 그동안 거의 자동으로 그를 거부하고 FA 시장에 나섰던 과거와 달리 오퍼의 수락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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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류현진(오른쪽)의 LA 다저스 계약식에 참석한 스콧 보라스. /AFPBBNews=뉴스1
그렇게 중요한 드래프트 지명권이지만 지명을 받은 선수가 자동적으로 그 팀의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선수와 팀 사이에 계약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액수 차이로 협상이 결렬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계약이 불발되는 케이스가 상당수 나온다. 특히 드래프트에서 30라운드 이후로 가면 계약을 하지 않는 선수들의 비율이 상당히 높아진다.

하지만 여전히 상위라운드, 특히 1라운드 지명을 받은 선수가 계약에 이르지 못하는 일은 상당히 드문 편이다. 지난 6년간 MLB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 지명된 선수 259명 중 계약을 하지 않은 선수는 7명뿐이었다. 다소 놀라운 것은 그 중 4명이 지난해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당시엔 계약을 했지만 나중에 미국프로풋볼(NFL)로 방향을 틀면서 계약을 취소했다.

바로 지난해 전체 9번으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지명됐다가 오클라호마대 풋볼팀에서 쿼터백으로 최고의 활약을 보인 뒤 올해 NFL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애리조나 카디널스행을 선택한 카일러 머리(22)다. 머리까지 합쳐 지난해 MLB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선수 중 5명이 계약을 하지 않은 셈이다.

그 중 한 명이 지난해 머리보다 한 순위 앞선 전체 8번으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지명된 우완투수 카터 스튜어트(20)다. 애틀랜타는 당시 18세 고교 졸업반이었던 스튜어트를 지명한 뒤 신체검사 도중 손목에서 부상 징후가 나타났다며 그가 요구한 450만 달러의 절반도 안되는 200만 달러의 계약금을 제시했고 스튜어트는 이를 거부하고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는 그 과정에서 에이전트를 스콧 보라스로 교체한 뒤 올해 드래프트를 얼마 앞두고 전격적으로 일본프로야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6년간 개런티 700만 달러 플러스 인센티브 조건으로 계약해 메이저리그에 충격파를 던졌다.

스튜어트의 계약은 미국의 아마추어 선수가 MLB 드래프트를 건너뛰고 곧바로 외국 프로팀과 계약한 첫 사례로서 기록됐는데 과연 그의 파격적인 계약이 장차 MLB 드래프트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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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프트뱅크와 계약한 카터 스튜어트. /사진=MLB 파이프라인 캡처
스튜어트는 이 계약으로 MLB팀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그 어떤 계약보다도 큰 계약을 얻었을 뿐 아니라 만 25세면 FA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돼 FA 자격 획득기간도 2년이나 줄일 수 있게 됐다. 이런 사실은 지금까지 드래프트에 지명된 뒤 구단의 오퍼가 만족스럽지 못해도 다른 대안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해야 했던 선수들에게 새로운 옵션이 있음을 알려준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다음 주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지명선수 중 구단의 오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스튜어트가 선택한 옵션을 찾아볼 선수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번 스튜어트 계약 뒤에 보라스가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보라스는 스튜어트와 애틀랜타의 계약협상이 결렬된 직후 소프트뱅크와 접촉, 스튜어트와 그의 가족이 약 일주일 정도 일본에 머물면서 일본 문화와 야구 환경을 체험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스튜어트와 그의 가족이 일본과 소프트뱅크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됐고 태평양 건너편 낯선 환경에서도 적응하며 장차 빅리그 야구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 이번 계약으로 이어진 것이다.

보라스는 이 과정에서 스튜어트와 그의 가족에게 자신의 고객인 일본인 선수 키쿠치 유세이(27·시애틀 매리너스)의 예를 들어 신뢰감을 얻었다. 그는 “키쿠치가 만 26세 때 빅리그 팀과 3년간 4300만달러 계약을 한 것은 일본 시스템을 거쳐서도 빅리그 투수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빅리그 선수를 키워내는 능력은 일본팀과 MLB팀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마이너리그에서 고생하며 성장하는 것 외에 일본이라는 새로운 대안이 있음을 제시한 것이다.

그동안 메이저리그의 드래프트 제도가 아마추어 선수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인위적으로 그들의 가치를 축소시킨다고 비판해 온 보라스는 “이런 길을 활용할 만큼 재능있는 선수는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겐 자신들의 진짜 가치를 찾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재능이 있는 선수라면 일본과 한국의 리그에서도 가치가 있고 그런 국제적인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연 스튜어트와 보라스의 파격적인 실험이 메이저리그에 또다른 근본적인 변화의 바람을 불러올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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