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커쇼도 '첫 7경기 21.33', 류현진 볼삼비는 끝까지 갈까 [댄 김의 MLB 산책]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9.05.10 15:40 / 조회 : 4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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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AFPBBNews=뉴스1
지난해 오타니 쇼헤이(25·LA 에인절스)가 메이저리그에서 투타 겸업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때 자주 등장했던 이름 중 하나는 ‘메이저리그의 전설’ 베이브 루스였다. 오타니의 투타겸업이 루스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100년 만에 처음이라는 사실로 인해 오타니가 화제로 오를 때마다 루스의 이름이 수시로 소환돼 비교대상으로 언급되곤 했다.


그래도 루스는 메이저리그 최고 전설급 선수여서 오타니 때문이 아니더라도 언제라도 이름이 소환될 수 있는 선수다. 사실 메이저리그와 관련해 그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지난 8일(한국시간) 류현진(32·LA 다저스)의 선발 등판 경기 때 다저스 경기 전담 채널의 중계방송 도중, 출생연도로 볼 때 루스의 아버지뻘 되는 한 선수가 류현진과 비교 대상으로 갑자기 소환돼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그는 루스와 달리 단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선수였다. 아니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이름의 메이저리거가 있었다는 사실을 현지 중계팀들조차도 신기하게 느낄 만큼 생소한 인물이었다.

다저스의 중계방송 채널에 류현진의 비교대상으로 갑자기 소환된 이 선수의 이름은 레이디 볼드윈이었다. 야구선수의 이름이 ‘레이디(Lady)'라는 사실부터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는 1859년생으로 1895년생인 루스의 아버지뻘 되는 사람이다.

그의 특이한 이름은 사연이 있다. 그의 본명은 찰스였지만 그 시대에 야구를 한 대부분 선수들과 달리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말할 때도 전혀 욕설을 쓰지 않고 예의바른 언어만 사용한 것으로 인해 동료들이 ‘레이디’라고 부른 것이 이름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이 레이디 볼드윈이 류현진의 비교대상으로 소환된 이유는 바로 그의 ‘볼넷 대비 삼진 비율’, 이른바 '볼삼비' 기록 때문이다. 이 중계방송에 따르면 볼드윈은 만 25세였던 1884년 시즌에 삼진/볼넷 비율 21.00을 기록했는데 이것이 메이저리그 역사상 아직도 이 부문에서 한 시즌 최고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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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사진=OSEN
그런데 류현진은 올해 이 경기 전까지 삼진 39개를 잡고 볼넷 2개를 내줘 삼진/볼넷 19.50을 기록하고 있었다. 볼드윈의 메이저리그 기록을 류현진이 턱밑까지 추격했기에 그의 이름이 소환된 것이다.

그리고 류현진은 이날 볼넷 없이 삼진 6개를 보태 삼진(45)/볼넷(2) 비율을 22.50으로 높이며 볼드윈의 기록을 넘어섰다. 물론 볼드윈의 기록은 시즌 전체 기록이기에 시즌이 끝날 때까지는 기록을 경신했다고 할 수 없다.

다저스 중계팀들이 160년 전 태어난 인물인 볼드윈까지 소환한 것은 당연히 류현진의 기록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35년 전에 세워진 전설 같은 난공불락의 기록에 류현진이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볼드윈이 이 기록을 세운 1884년은 당시 내셔널리그에서 처음으로 투수의 오버핸드 투구를 허락한 해였다. 그 전까지는 투수들이 소프트볼처럼 언더핸드로 볼을 타자에게 토스하는 방식으로 야구를 했다고 한다. 즉 투수는 볼을 타자에게 토스하는 역할을 했고 야구는 양팀 타자들과 야수들의 대결 구도로 진행됐다고 한다. 그런데 1884년 시즌부터 투수들에게 오버핸드 투구가 허용됐고 그 이후부터 투수와 타자의 대결 구도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말 그대로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에 세워진 기록이니 사실 신뢰성이 의심받는 것도 당연하다. 베이스볼 레퍼런스닷컴의 경우 단일 시즌 삼진/볼넷 비율 기록 순위에 볼드윈의 이름이 올라 있지 않다. 그의 기록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베이스볼 레퍼런스의 이 부문 최고 기록은 비교적 최근에 세워진 것으로 지난 2014년 필 휴스(당시 미네소타 트윈스)가 기록한 11.625다. 현재 류현진과 볼드윈의 기록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 리스트에 보면 제구력의 대명사로 불리는 명예의 전당 멤버 그렉 매덕스의 1997년 시즌도 9위에 올라 있는데 그 때 그의 삼진/볼넷 비율은 8.85에 불과(?)하다. 볼드윈의 기록은 물론 현재 진행형인 류현진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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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베이스볼 레퍼런스
그렇다면 볼드윈은 과연 어떤 선수였을까. 그는 왼손투수로 밀워키 브루어스(1884년), 디트로이트 울버린스(1885~88년), 브룩클린 브라이드그룸스(다저스의 전신, 1890년), 버펄로 바이슨스(1890년)에서 6년간 빅리그 선수로 뛰었다. 그의 커리어 최고 시즌은 1886년으로 42승13패, 평균자책점 2.24를 기록했고 323개의 탈삼진으로 그 해 내셔널리그 탈삼진왕에 올랐다.

그해 그가 올린 42승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왼손투수의 시즌 최다승 기록 2위에 해당된다. 특히 놀라운 것은 그의 42승13패 기록이 모두 완투였다는 사실이다. 즉 55경기에 나서 모두 완투를 하며 42승13패를 기록했다는 이야기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말도 안되는 숫자들이다.

더구나 그는 이듬해인 1887년에는 월드시리즈에 나가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를 상대로 5경기에 나서 모두 완투를 하며 4승1패 평균자책점 1.50을 기록했다고 한다. 물론 이 때의 월드시리즈는 당시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의 우승팀이 만난 것으로 현대 월드시리즈 기록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던졌으니 그의 커리어가 길지 못했던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는 부상으로 인해 만 31세에 선수 커리어를 접어야 했고 고향인 미시간으로 돌아가 농부로 살며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야구의 태동기에 등장해 짧고 굵은 커리어를 보낸 뒤 홀연히 사라진 전설적인 미지의 선수. 그런 선수까지 소환시킬 정도로 엄청난 기록에 도전하고 있는 류현진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삼진/볼넷 비율이 이 정도 수준에 오르려면 단순히 제구력이 좋은 것만 가지곤 안 된다. 기본적으로 삼진을 많이 잡을 수 있는 구위와 볼넷을 내주지 않는 제구력을 모두 갖고 있어야만 도전이 가능하다. 그런 전설적인 기록에 류현진이 도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정말 탄성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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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튼 커쇼. /AFPBBNews=뉴스1
시즌은 아직도 시작단계다. 류현진은 이제 겨우 7경기에 나섰을 뿐이다. 지난 2016년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31)는 첫 7번의 선발 등판에서 삼진 64개를 뽑아내고 볼넷은 3개만 내줬다. 삼진/볼넷이 21.33으로 현재 류현진의 22.50과 거의 비슷하다.

그 해 커쇼는 총 172개의 삼진을 잡고 볼넷 11개만 내줘 삼진/볼넷 비율 15.64로 역대 최고 수준의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해 실제 기록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커쇼의 이 부문 최고 기록은 2014시즌으로 239개의 삼진을 잡고 볼넷 31개를 내줘 삼진/볼넷 비율 7.71을 기록, 메이저리그 통산 랭킹 20위에 올라 있다. 과연 류현진은 시즌 종료 후 이 부문에서 어떤 기록을 세울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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