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개막전서 야유 뒤집어쓴 '1800억' 데이비스 [댄 김의 MLB 산책]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9.04.05 15:06
  • 글자크기조절
image
크리스 데이비스. /AFPBBNews=뉴스1
5일(한국시간)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2019시즌 홈 개막전이 벌어진 날이었다. 볼티모어 오리올파크 캠든야드에는 4만5000여 명의 팬들이 구장을 가득 메웠다. 뉴욕과 토론토를 도는 6게임 원정 여행에서 4승2패라는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시작한 볼티모어는 이날 홈 팬들 앞에서 좋은 분위기 속에서 시즌 첫 선을 보였다.

경기 출발도 산뜻했다. 라이벌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볼티모어는 1회말 선두타자 조나단 비야의 솔로홈런으로 포문을 연 뒤 볼넷 2개와 안타로 만든 주자 만루 기회에서 상대의 보크와 폭투로 2점을 추가, 일찌감치 3-0 리드를 잡았다.


그리고 계속된 투아웃 주자 3루에서 7번타자 크리스 데이비스(33)가 타석에 들어서자 관중석에선 야유와 격려가 반반씩 섞여 나왔다. 데이비스가 엄청나게 고전하고 있는 것은 잘 알지만 혹시라도 홈 개막전에서 초반에 빗맞은 안타라도 하나 때려준다면 그를 잠시나마 용서해 줄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데이비스는 먼저 볼 2개를 골라냈으나 이후 양키스 선발 제임스 팩스턴의 공 3개에 잇달아 헛스윙을 해 삼진으로 물러났고 볼티모어의 1회말 공격도 막을 내렸다. 데이비스를 향한 야유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야유의 함성은 이후 데이비스가 타석에 등장할 때마다 더 커져만 갔다. 데이비스는 볼티모어가 3-1로 추격당한 4회 무사 1루와 4-5로 역전당한 6회 무사 1루에서 잇달아 타석에 들어섰지만 무기력한 루킹 삼진과 헛스윙 삼진으로 돌아섰고 분노한 홈팬들의 야유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결국 8회말 2사 1루에서 타석이 돌아온 데이비스 대신 대타 핸서 알베르토가 나서자 오리올파크엔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1억6100만 달러(약 1830억원) 계약을 한 선수 대신 지난 오프시즌 동안에만 총 4번이나 방출됐다가 클레임되는 과정을 반복한 무명의 선수가 대타로 나온 것에 홈팬들이 이렇게 열광한 사례가 또 있었는지 모르겠다. 볼티모어는 이날 4-8로 역전패했다.

image
크리스 데이비스(오른쪽). /AFPBBNews=뉴스1
하지만 그렇다고 볼티모어 팬들을 탓하기도 어려운 것은 그만큼 데이비스의 부진의 정도가 지독하기 때문이다. 2015년 47홈런을 때려 메이저리그 홈런왕에 오른 뒤 2016년 1월 볼티모어와 7년간 1억6100만 달러라는 엄청난 액수에 계약한 데이비스는 이후 소위 ‘먹튀’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려고 작정한 선수 같았기 때문이다.

다음 3년간 그의 홈런 수는 38개에서 26개, 16개로 계속 떨어졌고 타율도 0.221, 0.215에 이어 지난해엔 0.168까지 추락해 메이저리그 주전급 선수로 역대 최악의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도 4년간 9400만 달러 계약이 남아있는 선수이기에 볼티모어는 그를 포기할 수 없었고 이번 시즌엔 어떻게 해서든지 지난해의 악몽에서 벗어나줄 것으로 믿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개막 후 첫 일주일간 그의 모습은 역대 최악의 주전타자 성적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운 지난해보다도 오히려 더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 이상 나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나쁘다. 이날 홈 개막전에서 3타수 무안타 3삼진을 합쳐 그의 올 시즌 성적은 17타수 무안타 11삼진이다. 아예 단 한 개의 안타도 치지 못하면서 거의 대부분 타석에서 삼진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말 경기까지 합치면 그는 현재 38타수 무안타 25삼진이라는 ‘황당함마저 느껴지는’ 수준의 타격 가뭄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보통의 선수라면 이렇게까지 못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성적을 남기기도 전에 아예 경기에 나갈 기회를 봉쇄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거의 1억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잔여 계약으로 인해 본인이 원하던 원치 않든 출장 기회를 얻고 있는데 그것이 더욱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몸값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더욱 몸이 굳어져 마치 깊은 수렁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댈수록 더 깊은 곳으로 빠지는 양상이 벌어지고 것이다. 이젠 몸값과 관계없이 아예 역대 최악의 선수라는 타이틀이 그에게 들러붙어 떼어내기 힘들어질 판이 되고 있다.

가장 흥분돼야 할 홈 개막전에서 끔찍한 경험을 한 데이비스는 “예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힘들다”면서 “하지만 지난해에도 난 많은 야유를 들었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애써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

많은 팬들은 그가 엄청난 돈을 받는다는 이유로 더욱 더 끔찍한 비난과 욕설을 퍼붓고 있다. 이에 대해 데이비스는 “전에도 말했지만 그들의 분통 터지는 기분을 이해한다. 나만큼 답답하고 화나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면서 “특히 오늘처럼 상대를 몰아친 경기에서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은 개인적으로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 외엔 다른 길이 없다”고 말했다.

image
크리스 데이비스. /AFPBBNews=뉴스1
한편 데이비스의 팀메이트들과 감독은 아직도 그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브랜던 하이드 볼티모어 감독은 “내가 보기엔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다. 지금은 모든 것이 잘 풀리지 않고 있지만 난 그에게 계속해서 뛸 기회를 줄 것이고 적절한 매치업을 찾아 볼 것”이라면서 “그는 지금도 계속 싸우고 있고 또 좋은 동료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성원을 보냈다.

개막전 선발투수로 나섰던 알렉스 캅도 “크리스는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이고 정말 좋은 사람이자 좋은 동료”라면서 “팬들의 분통 터지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홈팬들에게서 그런 경험을 당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동료에 대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데이비스가 이런 악몽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그가 최악의 상황에도 엄청난 돈을 받는다는 이유로 그나마 필요한 동정의 시선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큰 행운인 줄만 알았던 대박 계약이 그 자신을 숨도 쉬지 못하게 압박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느낌일 것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악의 먹튀라는 불명예를 향해 맹렬히 질주하고 있는 데이비스 앞에 과연 어떤 반전의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