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가 메이저리그를 흔든다... '투타겸업' 키우는 구단들 [댄 김의 MLB 산책]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9.03.1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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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 쇼헤이. /AFPBBNews=뉴스1
올해로 빅리그에서 5년차를 맞는 신시내티 레즈의 오른손 투수 마이클 로렌젠(27)은 오래 전부터 신시내티 감독과 코치들을 쫓아다니며 자신이 마운드에서뿐만 아니라 타자로서, 또 외야수로서 상당히 괜찮은 선수라고 주장했다.

기회만 준다면 투수가 아니라 중견수로서, 또 타자로서 충분히 빅리거 역할을 해낼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고 호소했다. 미 대학야구 명문교인 칼스테이트 풀러튼 재학 시절 팀의 마무리 투수이자 주전 중견수로 뛰며 대학야구 최고의 투타 겸업 선수로 활약했던 그였기에 정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런 그의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로렌젠은 첫 4년간 빅리그 커리어에서 첫 시즌인 2013년에는 주로 선발투수로, 이후 2014년부터는 주로 불펜투수로 활약했다. 투수였지만 신시내티가 투수들의 타격을 허용하는 내셔널리그(NL) 소속인 탓에 타격 실력을 보여줄 기회는 심심치 않게 있었다.

뛰어난 타격능력 덕분에 대타로 기용된 경우도 많았고 대타로 등장한 뒤 다음 이닝에서 바로 마운드에 올라가 공을 던진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지난 4년간 빅리그에서 그는 타자로 타율 0.250(84타수 21안타)에 2루타와 3루타 각 1개씩과 홈런 6개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엔 대타로 나서 홈런 2개를 때리는 등 31타수 9안타, 4홈런으로 타율 0.290, 출루율 0.333, 장타율 0.500을 기록했는데 그의 OPS+는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인 169(리그 평균이 100)에 달했다. 물론 타석수가 절대적으로 적어 샘플 사이즈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의 타격 재능이 결코 범상치 않음을 보여주기엔 충분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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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하는 마이클 로렌젠. /AFPBBNews=뉴스1
그럼에도 본격적으로 투타 겸업을 해보겠다는 그의 소원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대학 시절 스카우팅 리포트에서 중견수 수비력이 골드글러브 레벨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는 단순히 투수로서 마운드에서 던지고 타석에서 치는 것만이 아니라 야수로 수비에도 참여하길 원했다.

그는 기회만 되면 외야수로 기용해줄 것을 졸랐으나 지난 4년간 외야수로 나선 것은 지난해 8월 딱 1이닝뿐이었다. 팀은 그가 피칭에 집중하길 원했을 뿐 아니라 야수로 나섰다 혹시 부상이라도 당하면 소중한 마운드 자원을 잃을 것을 우려해 그에게 가끔 대타로 나서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달랬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올해 스프링캠프에서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해 일본에서 날아온 야구 천재 오타니 쇼헤이(25·LA 에인절스) 때문이었다. 베이브 루스 이후 100년 만에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진정한 투타 겸업선수로 나서 역사적인 활약을 펼쳐보인 오타니 덕에 신시내티를 포함한 빅리그 구단들이 투타겸업을 바라보는 시선에 상당히 근본적인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그동안 사실상 절대 안 된다고 여겼던 투타겸업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누그러졌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데도 유연해진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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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로렌젠의 투구 모습. /AFPBBNews=뉴스1
신시내티는 12일(한국시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시범경기에서 로렌젠에게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투타겸업을 허락했다. 우선 이날 5회에 로렌젠을 투수로 등판시켜 1이닝을 던지게 한 뒤 중견수로 자리를 옮겨 다음 2이닝을 뛰게 한 것이다.

로렌젠은 투수로 1이닝을 탈삼진 2개를 곁들여 퍼펙트로 막아낸 뒤 다음 두 이닝동안 중견수로 나섰다. 타석에도 한 차례 들어서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으나 그로선 꿈이 이루어진 경험이었다. 더구나 이날 테스트는 1회성이 아니라 올 시즌 내내 꾸준하게 시도될 예정이어서 로렌젠은 지금 크리스마스 전날 어린아이처럼 들뜨고 흥분된 상태다. 생애 가장 재미있는 시즌을 맞을 것이라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다.

로렌젠은 이번 실험이 가능해진 것은 100% 오타니 덕분이라는 감사를 잊지 않는다. “야구는 비즈니스인데 오타니는 팀을 선택할 때 100% 주도권을 갖고 자신의 투타겸업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었다”면서 “오타니를 통해 과거엔 절대 안된다고 했던 일이 가능한 일이 됐다”고 말했다.

신시내티의 딕 윌리엄스 단장도 오타니의 사례가 로렌젠에게 투수와 야수를 겸하도록 허락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시인했다. 그는 “오타니가 오기 전부터 로렌젠 실험을 고려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오타니의 존재가 이번 시도를 가속화시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신시내티의 새 감독 데이빗 벨은 이번 실험에 대해 “그(로렌젠)는 신념이 확고했고 그것을 위해 모든 준비를 빠짐없이 했다”면서 "그런 노력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옮은 일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윌리엄스 단장도 ”그는 정말 흥미로운 무기가 될 것“이라면서 ”특히 NL에선 더욱 큰 어드밴티지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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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하는 오타니 쇼헤이. /AFPBBNews=뉴스1
사실 오타니처럼 아메리칸리그(AL) 팀에서 지명타자와 선발투수로 나서는 것과 NL 팀에서 구원투수와 외야수로 나서는 것은 같은 투타겸업이라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오타니 같은 경우는 매주 한 차례 선발 등판과 3~4차례 지명타자 출장 등으로 출장계획을 미리 짤 수 있지만 경기 중 필요한 상황에서 갑자기 투수 또는 타자로 나서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반면 로렌젠 같은 경우는 구원투수와 야수인 데다 NL의 특성상 어떤 상황에서도 전천후 투입이 가능하다. 즉 같은 경기에서 투타로 모두 나설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 한 이닝에서 마운드에 올랐다가 바로 외야로 가는 것도 가능하다. 최소한 활용시 유연성 측면만 생각하면 오타니보다 더 효율적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이런 방식의 기용은 아직까지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기에 신시내티가 올해 로렌젠을 어떤 방법으로 활용할지에 상당히 많은 관심이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오타니가 불러온 투타 겸업의 바람은 비단 로렌젠의 케이스에만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에인절스는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제리드 월시(25)와 윌리엄 잉글리시(18), 케일럽 카워트(26), 보 웨이(27) 등 4명의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투타 겸업을 허용하고 이들의 성장세를 모니터하고 있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코너 내야수인 맷 데이빗슨을 가끔 불펜투수로 활용하고 있고 탬파베이 레이스는 지난 201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4번으로 지명한 1루수 겸 왼손투수 브렌든 맥케이가 풀타임 투타 겸업 선수로 빅리그에 올 날을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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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 쇼헤이의 투구 모습. /AFPBBNews=뉴스1
사실 이런 투타겸업은 잘 되기만 한다면 로스터의 효율적 운영 차원에서 엄청난 혜택을 될 수 있다. 선수 한 명이 투수와 타자를 겸할 수 있다면 선수 한 명을 더 가지는 효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은 지켜봐야 할 과제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오타니가 물꼬를 튼 투타 겸업 바람이 과연 메이저리그를 어떤 모습으로 바꿔놓을 것인지 흥미로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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