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퍼스-레이커스, 두 LA 팀의 기막힌 반전 드라마 [댄 김의 NBA 산책]

댄 김 재미저널리스트 / 입력 : 2019.03.0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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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커스의 카일 쿠즈마(왼쪽)-클리퍼스의 패트릭 베벌리. /AFPBBNews=뉴스1
지난해 미국프로농구(NBA) 오프시즌 때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스포츠 도박장 웨스트게이트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의 2018~2019 시즌 승수를 각각 48.5승과 35.5승으로 전망했다.

르브론 제임스라는 거대한 ‘날개’를 새롭게 단 레이커스는 지난 2017~2018 시즌(35승47패)보다 무려 13승 이상을 더 올리며 어렵지 않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한 반면 지난 시즌 승률 5할 이상 팀(42승40패)이었던 클리퍼스는 전 시즌보다 6승 이상 줄어들며 후퇴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런데 지금 NBA 순위를 살펴보면 승부예측을 전문으로 하는 라스베이거스 스포츠 도박사들의 예상도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경우가 있음을 알게 된다. 현재 시즌 16경기를 남긴 시점에서 클리퍼스는 37승(29패)을 올려 이미 도박사들의 시즌 전체 예상승수(35.5승)를 넘었고 플레이오프 진출 안정권으로 가고 있다.

비록 플레이오프행 막차티켓인 8위에 그치고 있지만 9위 새크라멘토 킹스(32승32패)와 4경기 차이를 벌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플레이오프 진출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제임스의 가세로 플레이오프 커트라인 안으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됐던 레이커스는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재 30승35패에 그치고 있는 레이커스는 이제 남은 17경기를 다 이긴다고 해도 시즌 승수가 47승에 그쳐 도박사들이 예상했던 48.5승 달성이 이미 불가능해졌다.


물론 현재 4연패를 포함해 최근 10경기에서 2승8패로 곤두박질하고 있는 레이커스가 남은 17경기를 다 이길 가능성보다는 다 질 가능성이 더 높은 실정이니 47승은커녕 원래 클리퍼스의 예상 승수였던 35.5승에 도달할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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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커스의 르브론 제임스. /AFPBBNews=뉴스1
이미 사기가 완전히 꺾인 레이커스는 앞으로 이번 시즌 남은 경기에서 제임스의 출전시간을 경기당 28~32분 선으로 줄이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8일 나왔다. 또 이틀 연속 백투백 경기가 있을 때는 두 번째 경기엔 르브론을 출전시키지 않는 것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조치들은 사실상 이번 시즌 플레이오프 도전은 실패했다고 ‘백기투항’을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팀의 베스트 플레이어였던 토바이아스 해리스를 트레이드한 후에도 기세 좋게 플레이오프를 향해 진군하고 있는 클리퍼스와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레이커스와 클리퍼스는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 위치한 스테이플스센터를 함께 쓰고 있는 ‘한 지붕 두 가족’이자 룸메이트 관계지만 구단의 전통과 역사, 가치에서 클리퍼스는 도저히 레이커스와 비슷한 레벨로도 분류될 수 없는 팀이다.

레이커스는 NBA를 대표하는 명문구단인 반면 클리퍼스는 그동안 NBA에서 가장 별 볼 일 없는 구단을 대표하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레이커스가 16번이나 NBA 우승을 차지한 반면 클리퍼스는 우승은커녕 구단 역사를 통틀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시즌이 13번뿐이었다. 클리퍼스가 플레이오프에 나간 횟수보다 레이커스가 우승한 횟수가 더 많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런 고정 이미지에 변화가 느껴지고 있다. 지난 2014년 NBA 역사상 최악의 구단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도널드 스털링이 강제 구단 매각조치로 쫓겨난 뒤 클리퍼스의 새 구단주가 된 억만장자 스타브 발머는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창립한 인물답게 탁월한 판단력과 효과적인 운영능력으로 차근차근 구단을 안정시켜가고 있다.

처음엔 스포츠 구단 운영경험 없이 의욕만 앞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구단주로 5년차에 접어든 현재 클리퍼스는 오히려 레이커스보다 훨씬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다. 지금 현재 구단이 움직이는 모습만 보면 클리퍼스가 더 명문구단처럼 느껴진다.

사실 매직 존슨이 구단사장을 맡은 레이커스는 최근 앤서니 데이비스 트레이드 협상과 탬퍼링 논란이 말해주듯 많은 경우 다소 우왕좌왕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폴 조지와 카와이 레너드에 얼마 전 데이비스까지 영입을 시도하는 등 그동안 소위 ‘슈퍼팀’을 구축하기 위해 애를 쓰며 요란을 떨었지만 정작 소득은 없었고 아직까지는 제임스를 붙잡은 것이 전부다. 그리고 제임스 한 명 가지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이번 시즌이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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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퍼스의 닥 리버스 감독. /AFPBBNews=뉴스1
반면 클리퍼스는 요란하게 보여주는 모습은 별로 없지만 물밑에서 차근차근 팀 재건 작업을 진행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번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플레이오프 막차순번인 서부 8위에 자리 잡고 있던 클리퍼스가 팀의 간판 해리스를 필라델피아 76ers로 트레이드하는 등 팀의 주요선수들을 대거 내보내자 이번 시즌 플레이오프 도전을 포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정작 이 거래들의 결과물은 클리퍼스가 ‘꿩 먹고 알 먹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미래 샐러리 감축을 통해 프리에이전트(FA) 영입전에 뛰어들 확실한 발판을 마련함과 동시에 이번 시즌의 플레이오프 도전도 포기하지 않은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 이면엔 구단 사장직을 내려놓고 코칭, 즉 경기에만 전념하고 있는 닥 리버스 감독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클리퍼스는 이들 트레이드를 통해 팀 샐러리캡에 5900만 달러의 여유공간을 추가로 마련한 것이 중요했다. 이로 인해 클리퍼스는 오는 오프시즌에 2명의 맥시멈 FA 계약이 가능해졌다. 클리퍼스는 이 풍부한 실탄으로 오프시즌 FA 시장이 열리면 레너드(토론토)와 케빈 듀랜트(골든스테이트)를 붙잡는다는 계획이다.

남가주 출신인 레너드는 과거 샌안토니오에서 트레이드를 요구할 때도 원했던 팀으로 클리퍼스를 꼽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토론토가 그를 붙잡지 못한다면 클리퍼스로 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클리퍼스의 또 다른 빅 타깃은 바로 듀랜트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많은 사람들이 듀랜트가 골든스테이트를 떠날 경우 뉴욕 닉스에서 카이리 어빙과 힘을 합칠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의외로 클리퍼스가 듀랜트 영입전에 강력한 다크호스 경쟁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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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스테이트의 케빈 듀랜트. /AFPBBNews=뉴스1
듀랜트는 최근 미디어들과 인터뷰 과정에서 자신의 행선지에 관한 예상 질문에 불쾌한 감정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가 하면 얼마 전엔 “선수들이 좀 더 분노의 감정을 갖고 경기에 임할 필요가 있다”는 스티브 커 감독의 발언에 대해 “난 수긍할 수 없다”고 반박하는 등 예전보다 더 민감한 반응을 보여 그의 마음이 이미 골든스테이트를 떠나기로 결심을 굳힌 것이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7일에는 그가 극성스런 언론으로 유명한 뉴욕행에 회의를 품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듀랜트는 골든스테이트를 떠나기로 결심했고 뉴욕행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면 클리퍼스로 갈 가능성은 충분하다.

또 하나 무시할 수 없는 요소는 NBA의 전설 제리 웨스트가 현재 클리퍼스의 이사회 멤버로 있다는 사실이다. 듀랜트는 웨스트에 대해 상당한 존경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지난 2016년 골든스테이트와 계약했을 때 웨스트가 골든스테이트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것이 꼭 우연은 아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아직 FA시장이 열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클리퍼스가 이들을 붙잡기 위해 충분히 연구했고 미리 사전 정지작업까지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사실이다. 올 여름 오프시즌에 클리퍼스의 새로운 도약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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