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만 보면 게임음악은 그저 '추억'의 매개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게임음악은 부수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음악 때문에 게임을 하는 경우는 리듬게임 일부에 불과했고, 그 외 게임에서는 분위기를 돋구고 몰입감을 높이는 장치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게임의 콘셉을 반영한 음악 그 자체를 콘텐츠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죠. 다시 말해, 관련 게임에 대한 추억이 없어도 음악을 통해 흥미를 돋구고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 '핫'한 마케팅 방법이 된 겁니다. 심지어 대세죠.
가상의 아이돌 그룹이나 밴드부터, 실제 뮤지션들이 참여한 OST까지! 한층 다양해져 듣는 재미 역시 일품입니다. 한층 활발해진 콘텐츠로서의 게임 음악, 어떤 음악이 있는지 읽고, 보고, 들으며 즐기시죠.
한 번 더 나에게! 질풍같은 용기를! with 검은사막 모바일
'쾌걸근육맨 2세'의 OST로, 애니메이션 음악을 언급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풍가도가 '검은사막 모바일'과 만났습니다.
무려 네 명의 뮤지션들이 참여한 음원이었는데요. 복면가왕의 음악대장으로 대중적 유명세를 톡톡히 끌어올린 국카스텐의 하현우와 더불어 유투브에서 이 곡을 커버해 인기를 끈 이혁, 버블디아, 라온 세 명이 함께 불러 다양한 버전을 들어볼 수 있죠.
워낙 유명한 곡이고, 노래방 애창곡이기도 하기 때문에 '검은사막 모바일'을 모르는 대중에게도 광범위하게 어필할 수 있었습니다. '검은사막'이란 IP는 몰라도 한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이 노래를 모르기는 솔직히 힘들잖아요.
재미있는 점은 이 노래들이 '검은사막 모바일'만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마 게이머가 아닌 일반 대중에게 친숙한 노래로 접근하고자 이런 곡들을 선택했던 거겠죠. 실제로 이 영상들은 유투브에서 총합 3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음원 공개 이후 유정석이 부른 원곡 '질풍가도'가 음원차트를 역주행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죠.
Red sun red sun red sun! 지코 with 데스티니 가디언즈
영상에는 인게임 캐릭터인 케이드 6이 등장하는데요, 지코가 작곡한 곡이자 '쇼미더머니' 지난 시즌 우승자였던 행주의 결승곡 '레드썬'의 개사 버전이 삽입되었죠. 유저들을 지칭하는 단어인 '가디언'을 이용해 개사한 점이 독특합니다.
이미 음원차트를 휩쓸고 지나간 곡이었기에, 익숙한 노래가 들려오는 TV CM은 좀 더 각인효과가 짙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케이드 6가 입국하는 장면을 담은 스틸컷부터, 지코와 함께 서울 도심을 누비며 촬영한 CF 영상까지 좀 더 리얼하고 대중적인 모습으로 어필할 수 있었죠.
거기에 잘생긴 외모로 인기몰이 중이던 배우 서강준과, 전설적인 걸그룹 소녀시대의 윤아가 참여한 뮤직비디오까지 그야말로 대중 감성의 콘텐츠가 '총출동'한 사례입니다. 흡사 로맨틱한 드라마 한 편을 연상케 하는 두 사람의 '라그나로크 M: 영원한 사랑' 티저 영상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매력어필에 성공했습니다.
'라그나로크M'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연예인을 기용한 것도 있지만, 기존 유저들의 향수까지 자극했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갖습니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그리운 그 음악, 바로 프론테라의 테마송이 새로운 버전으로 흘러나오니 '라그나로크' 유저라면 당연히 관심을 가질 테니까요.
음원과 함께 공개된 뮤직비디오는 각 캐릭터의 매력과 설정을 잘 살린 화려한 영상으로 꾸며졌는데요, 음원차트 올킬은 물론이고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유튜브에서만 현재까지 1.7억회를 기록하는 등 전세계적 인기를 입증하기도 했습니다.
마왕의 목소리를 다시 한 번, 신해철, 그리고 CRY
명반을 내놓자마자 고인이 된 마왕을 추억하는 팬들은 아직도 너무 많고, 신해철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팬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기에 관심을 얻었습니다.
신해철은 생전에도 게임을 포함한 서브컬쳐 분야에 아주 다양한 관심을 표명한 바 있고 실제로 게임과 애니메이션 음악작업(심지어 더빙까지…)에도 참여했던 바 있었습니다.
2004년에는 '길티기어 이그젝스' OST를 작업했고, 인게임 캐릭터인 '테스타먼트'의 더빙도 맡았죠. 뭐 더빙 평은 사실 그저 그랬습니다만 음악만큼은 언제나 그랬듯 호평이었죠.
2016년에 나온 이 OST 음원은 고인이 생전에 만들어 둔 작업물을 기반으로 성지훈 엔지니어가 완성한 것이었는데요, 고인의 유작이라는 점에서도 팬들에겐 의미가 깊은 음원이었습니다. 미공개 음원이었다는 점과 더불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죠.
음원을 들을수록 생전의 마왕이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게임과 SF,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았던 덕밍아웃의 제왕이었던 마왕...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재범, 그레이와 함께한 피파 온라인 4
시리즈의 전작인 '피파 온라인 3'이 BGM면에서 유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던 데 기인해 후속작에도 음악작업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나 싶은데요.
주제곡인 'El Tornado'는 인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이자 실제 축구 선수인 호날두의 기술명을 따온 이름이었죠. 실제로 박재범과 그레이는 게임 속 스킬인 'El Tornado'의 모습을 담은 영상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만들었다고도 밝힌 바 있습니다.
힙합 뮤지션다운 스웨거 넘치는 라임과 속도감 있는 비트는 치열한 스포츠경기가 매 스테이지 벌어지는 '피파 온라인'의 매력을 잘 살려 좋은 평을 받았죠. 음원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인기를 실감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수영과 파이널 판타지 X
하지만 음원이 공개되자 이런 논란은 사그러들었습니다. 지금도 이수영의 베스트 앨범에 꼭 들어가는 노래이기도 하고, 베스트 넘버를 꼽을 때 항상 거론되는 곡인 '얼마나 좋을까'는 '파이널 판타지 10'의 인게임 시네마틱 영상과 더불어 최고의 콜라보 작업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더불어 국내 가수가 참여했다는 점 때문에 게임 타이틀 자체도 유저들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할 수 있었죠.
사실 '얼마나 좋을까'는 일본의 원곡을 이수영이 번안해 부른 곡인데요.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명곡 오브 명곡인 'Eyes On Me'의 작곡가이자, 시리즈의 게임음악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우에마츠 노부오가 이수영의 목소리를 듣고 반해 작업이 성사되었다는 것은 유명하죠. 원안보다 번안 버전을 더 좋아했다는 소문도 있지만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발라드부터 팝, 힙합, 록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채롭게 게이머들의 귀를 유혹하고 있는 게임음악, 다양하고 깊어진 만큼 이 게임음악이 마케팅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를 몇 가지만 뽑아봤습니다. 사실 명곡이 너무나 많아 고르기가 어찌나 힘들었는지 모르겠어요. 꼭 넣고 싶었는데 넣지 못한 곡이 참 많네요.
게임하는 걸그룹 PEACE, 걸그룹 게임단 AQUA, 연예인 게임단 등 음악과 게임의 만남은 꾸준히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BTS 월드'는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을 게임 전면에 등장시키기도 했고요.
요즘은 스팀에서도 게임 OST를 DLC로 판매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퀄리티 높고 게임과 잘 어울리는 게이머들을 위한 게임음원이 앞으로도 많이 발매되었으면 좋겠네요. '그저' 게임음악이 아닌 '바로' 게임음악인 명곡들로 게이머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