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육군의 망상, 5식 중전차
월드 오브 탱크 일본 중전차 10티어에 ‘5식 중전차(Type 5 Heavy)’가 등장한다. 덩치가 커 ‘독돼지’로 불리는 독일 중전차와 구축전차도 능가하는 거대한 크기, 풀 업그레이드 시 15cm 주포에 고폭탄을 사용하는 특이한 중전차다. 월드 오브 탱크 내 게임 기준으로 무게는 최대 160톤에 달한다.
게임 내에서 보면 진짜 크다 |
할힌골 전투 당시 전차를 앞세우고 진격하는 소련군 |
일본군이 작성한 할힌골 전투의 보고서 중 일부는 일본 육군 기갑 전력의 빈약함과 대전차 능력의 부재를 지적했다. 할힌골 전투 당시 일본군이 보유하고 있던 전차인 89식 중전차나 97식 중형전차는 숫자를 떠나 그 성능 자체가 썩 좋지 않았다. 소련군이 동원한 BT 전차나 T-26이 매우 얇은 장갑만 갖춘 경전차에 해당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월드 오브 탱크에 등장하는 97식 중형전차 치하. 3단계 중형전차다. |
가장 잘 알려진 설은 당시 육군성 대좌였던 이와쿠로 히데오가 육군기술본부에 95식 중전차(약 26톤)의 최소 2배 이상 체급을 갖춘 초중전차의 설계를 명령했다는 것이다. 소련의 T-35 다포탑 중전차에 자극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일본의 초중전차 계획은 점차 커져 100톤 이상의 체급을 갖춘 다포탑 초중전차로 발전해 나갔다.
오이의 단면도 |
1942년 초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차체가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고, 92식 105mm 45구경장 포를 장착한 포탑의 생산 명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실제 ‘오이’ 초중전차의 포탑 생산은 물자 부족으로 계속 보류되었다. 1943년에 들어서야 ‘오이’ 초중전차의 시험주행이 실시되었지만, 8월 주행시험 과정에서 차체가 일부 파손되었고 이후 계획은 흐지부지 되었다.
오이의 상상도? |
통곡의 벽은 실존했다? 미국 T95 구축전차
월드 오브 탱크 미국 9티어 구축전차로 T95가 등장한다. 납작하고 큰 덩치에 생긴 그대로 미련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305mm라는 무식한 전면장갑을 갖추고 있는 구축전차다. 주포 업그레이드시 155mm 주포로 적에게 큰 아픔을 줄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등장했던 다른 전차와 별로 닮지 않은 이상한 모양이지만, T95는 엄연히 실존했던 전차다.
지크프리트 방어선. 혹은 서부방벽(Westwall) |
웃기게 생겼지만 실존한 전차다 |
T95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T95 프로토타입이 생산되는 동안, 1944년 6월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통해 유럽에 상륙했다.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1945년 5월, 독일이 항복했다. 뚫을 수 없는 무적의 요새라던 지크프리트 방어선은 결국 허상에 불과했다. T95의 본래 용도는 이미 사라져 있었고, 결국 1945년 하반기에 실행할 예정이던 일본 전면 침공 계획 ‘몰락 작전(Operation Downfall)’투입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했다.
이 몰락 작전조차 실행되지 않았다. 1945년 8월, 원자폭탄 2발을 맞은 일본이 항복해 버렸기 때문이다. 첫 T95 프로토타입이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양산 계획은 초기 25대에서 5대로, 일본의 항복으로 다시 2대로 줄었다. 1946년 6월, T95의 이름은 다시 T28 초중전차로 변경되었다. 1947년에는 시험 주행 중이던 T28 한 대가 엔진 화재로 폐기처분 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고 T28은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살아남은 한 대는 계속 테스트를 받고 있었지만, 너무 느린 속도와 86톤에 달하는 무게 그리고 고정식 포탑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닌 신세가 되고 말았다. 1947년 10월 결국 T28 계획은 종료되었고, 이 특이하게 생긴 전차는 그대로 잊혀졌다.
1974년, 미국 버지니아 포트 벨부아(Fort Belvoir)에서 들판에 버려져 있던 T28이 발견되었다. 본래 1947년 계획 종료 당시 남아 있던 T28은 해체 후 고철로 매각할 계획이었는데, 27년동안 행방이 묘연하다 갑자기 발견되었다. 이후 T28은 켄터키 주 패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가, 2020년에 완공 예정인 조지아주 포트베닝(Benning)로 옮겨 전시할 예정이다.
애니메이션 '걸즈 앤 판처 극장판'에도 T95가 등장했다. 게임에서는 지원되지 않지만 T95의 바깥 궤도는 실제로 분리 가능하다. |
월드 오브 탱크 영국 10티어 구축전차로 등장하는 ‘FV4005 Stage 2’는 차체에 비해 거대한 포탑을 장착하고 있어 ‘대두’로 불린다. 비록 생긴 모습은 웃기지만 183mm 주포를 탑재하고 있어 한 발에 최대 1750라는 무지막지한 대미지를 자랑한다. 티어를 가릴 것 없이 어지간한 체력의 전차는 한 방만 제대로 박혀도 정신이 혼미해지는 위력이다.
머리가 진짜 크다 |
FV4005 Stage 2는 당대 영국의 주력전차인 센추리온 mk3을 기반으로 1951년 개발이 시작되었다. 원래 FV4005은 FV215 중전차 계획에서 파생되었다. FV215 중전차는 소련의 IS-3 중전차에 맞설 수 있는 위력의 중전차를 생산하려는 계획이었고, 이 과정에서 FV215의 차체에 강력한 포를 얹은 자주포 컨셉의 차량이 제안되었지만 도중에 개발이 중단되었다.
BL 7.2인치 곡사포. 길이 7m, 무게는 10톤에 달한다. |
기동 중인 센추리온 전차. 한국전쟁 당시의 모습이다. |
문제가 있다면 이 BL 7.2인치 곡사포 자체가 기본형이 10톤, 기갑차량에 탑재하기 위해 개량한 버전인 L4도 기본 4톤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무게를 자랑했다는 점이다. 사격 시 발동하는 반동도 약 87톤에 달했다. 사용 탄약은 HESH(High Explosive Squash Head, 점착유탄)였는데, 포탄 하나의 무게도 104kg나 됐다. 탄약수 두 명이 달라붙어도 이론상 발사속도는 분당 6발에 불과했다.
어쨌든 이 괴물 같은 포를 얹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센추리온 Mk.3 차체에 스페이드를 장착해 포의 강력한 반동을 흡수하고, 104kg에 달하는 포탄 장전을 조금이라도 쉽게 하기 위해 비커스-암스트롱(Vickers-Armstrongs)사가 개발한 장전 보조 장치를 도입했다. 이러한 개량은 나름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FV4005 Stage 1 |
FV4005 Stage 2는 ‘월드 오브 탱크’에 등장하는 것처럼 실제로도 상자처럼 생긴 포탑을 장착했다. 그러나 이 포탑은 최대 장갑이 14mm에 불과한 말 그대로 껍데기에 불과했다. 껍데기만 씌운 수준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크고 무거운 183mm 포 때문에 완성된 전차는 차체에 비해 엄청나게 큰 포탑을 단 꼴이 되었다.
과연 영국... |
그럼에도 불구하고 FV4005 Stage 2의 위력 자체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많은 부분을 희생했지만 183mm HESH탄의 위력은 확실했다. 하지만 마지막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시대의 변화였다. 훨씬 가볍고, 위력도 강한 대전차 미사일 체계가 등장하며 대구경포를 장착한 구축전차나 대전차 자주포는 구세대의 유물이 되었다.
영국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FV4005 Stage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