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점보다 펀트가 많을 뻔한' 역대 최악의 슈퍼볼 [댄 김의 NFL 산책]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9.02.06 06:39
  • 글자크기조절
image
우승 뒤 기뻐하는 뉴잉글랜드 선수들. /AFPBBNews=뉴스1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LA 램스가 맞붙은 지난 4일(한국시간) NFL(미국프로풋볼) 슈퍼볼을 놓고 역대 최악의 슈퍼볼이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53년의 슈퍼볼 역사를 살펴보면 한 팀의 압승으로 끝난 ‘싱거웠던’ 게임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역대 최악의 경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판단의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수 있다. 뉴잉글랜드의 13-3 승리는 최소한 한 팀의 일방통행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번 53회 슈퍼볼처럼 그야말로 경기 내내 잠만 쏟아지게 만들었던 슈퍼볼은 없었던 것 같다. 솔직히 끝까지 집중하며 지켜보기가 고역이었을 정도로 재미없었다.

역대 가장 적은 16득점밖에 나오지 않은 이날 경기는 한 마디로 수면 유도제 같았다. 경기 내내 팬들이 환호하거나 탄성을 내질렀던 장면이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눈꺼풀이 무겁게 느껴져 4쿼터에선 소파에서 일어나 거실에 서서 걸어 다니며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어쩌면 그런 장면이 있었는데 조느라 못 보고 놓쳤는지도 모르겠다. 경기를 지켜봐야 한다는 직업의식이 아니었더라면 일찌감치 채널을 바꾸거나 아예 잠을 청했을 것이다.


지난해 뉴잉글랜드와 필라델피아 이글스가 맞붙었던 슈퍼볼 LII(52)는 올해 게임과는 정반대였다. 슈퍼볼은 물론 모든 NFL 플레이오프 역사를 통틀어 최초로 양팀 합쳐 1000야드가 넘는 토탈 오펜스를 기록하는 최고의 난타전이 펼쳐졌다.

3쿼터가 끝났을 때 양팀 야드 합계가 이미 슈퍼볼 신기록을 세웠고 경기 내내 펀트(3번의 공격 동안 10야드 이상 전진하지 못하거나 필드골 시도를 하지 못해 상대에게 볼을 넘겨주는 플레이)는 딱 한 번밖에 없었다. 한 마디로 경기가 진행될 땐 잠시도 숨 돌릴 여유가 없었다.

특히 뉴잉글랜드는 이날 단 한 번도 펀트를 하지 않고도 졌다. 슈퍼볼 역사상 펀트를 하지 않고도 패한 팀은 뉴잉글랜드가 처음이었다. 경기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의 순간이 이어졌고 환호와 탄성이 꼬리를 물었다. 필라델피아의 41-33 승리로 끝난 이 명승부는 진정한 ‘슈퍼’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image
LA 램스 선수들. /AFPBBNews=뉴스1
반면 올해 슈퍼볼은 ‘슈퍼’라는 표현을 붙이기가 무색한 경기였다. 물론 풋볼은 오펜스와 디펜스가 대결하기에 디펜스가 뛰어난 플레이를 할 경우 오펜스가 실제보다 더 저조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날 경기력은 팬들이 보고 즐기기엔 함량미달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양팀은 이날 4쿼터 종료 7분을 남겨놓고 뉴잉글랜드가 이날 처음이자 마지막 터치다운을 뽑아낼 때까지 터치다운 없는 경기를 했을 뿐 아니라 아예 그 플레이 전까진 단 한 번도 레드존(상대 20야드 라인부터 골라인 사이 지역- 득점이 임박한 지역이라는 의미)에서는 공격을 시도한 적조차 없었다.

축구로 말하면 아예 골 넣을 찬스조차 없었던 셈이고 야구로 말하면 양팀이 전혀 주자를 내보내지 못한 셈이다. 물론 양팀의 뛰어난 디펜스에 포커스를 맞춰 최고의 수비전을 봤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재미없었던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경기가 어찌나 지루했던지 심지어는 중계방송사인 CBS의 중계팀마저 냉소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댈러스 카우보이스 쿼터백 출신인 해설자 토미 로모는 3쿼터에 램스 펀터 조니 해커가 수퍼볼 신기록인 65야드 펀트를 기록하자 "오, 이런 좋은 기록을 보려고 지금까지 기다렸네요"라고 비꼬았고 아나운서인 베테랑 짐 낸츠도 "이게 오늘의 하이라이트"라고 맞장구쳤다. 재미없는 경기도 재미있다고 포장을 해야 할 중계진이 이런 말까지 했으니 내용이 어떠했는지 대략 잠작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양팀은 이날 합쳐 총 14번의 펀트를 했다. 양팀의 득점 합계(16점)와 거의 맞먹는다. 사실 뉴잉글랜드가 종료 1분12초전 시도한 41야드 필드골을 실패했다면 펀트 수(14)가 득점 합계(13)보다 많았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어이없는 기록이다.

놀랍게도 14번의 펀트는 슈퍼볼 기록이 아니다. 지난 2001년 슈퍼볼 XXXV(35)에서 볼티모어 레이븐스와 뉴욕 자이언츠는 무려 21번의 펀트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런 경기에선 무려 41득점(34-7 볼티모어 승)이 나왔다. 반면 이번 슈퍼볼은 양팀이 팽팽하게 맞서면서도 이렇게 재미없는 경기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 같다.

image
LA 램스 치어리더. /AFPBBNews=뉴스1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는 그동안 슈퍼볼에서 흥미를 돋우는 데 짭짤한 감초 역할을 했던 광고들과 하프타임쇼마저 예년에 비해 재미없었다. 평소에 풋볼팬이 아닌 사람들도 슈퍼볼만큼은 놓치지 않고 챙겨보는 이유 중 하나가 광고들과 하프타임쇼였는데 올해는 그것들마저 시원치 않았다. 이에 대해서도 혹평이 쏟아졌다.

당연히 경기 후엔 슈퍼볼에 대한 불만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쏟아져 나왔다. 미국에서 슈퍼볼 선데이는 사실상 최고의 축제일이나 마찬가지인데 가장 기대했던 날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날이 됐으니 실망감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 곳은 당연했다.

더구나 톰 브래디가 자신의 9번째 슈퍼볼에서 6번째 우승을 차지한 것도 일반 팬들을 시큰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물론 브래디가 위대한 쿼터백이고 역대 최고의 승부사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매번 이기는 팀과 선수가 또 이기는 것은 이미 봤던 경기의 재방송을 보는 것 같은 느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올해 만 41세인 브래디는 경기 후 당분간 은퇴의사는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어쩌면 그는 내년 이맘쯤 자신의 10번째 슈퍼볼에 나서 7번째 우승반지를 노릴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의 시대가 언제 마무리될지 모르지만 최소한 내년 슈퍼볼만큼은 올해가 아니라 지난해 슈퍼볼처럼 펼쳐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image
톰 브래디(왼쪽)가 아내와 키스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