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도·하퍼 향한 '역대급 무관심'... 노사 대충돌 조짐 [댄 김의 MLB 산책]

댄 김 재미저널리스트 / 입력 : 2019.01.22 17:35 / 조회 : 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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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 마차도(왼쪽)-브라이스 하퍼. /AFPBBNews=뉴스1
수년 전부터 메이저리그 팬들은 역대 최고의 스릴 넘치는 핫 스토브리그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흥분 속에 2018년 겨울을 기다려왔다. 브라이스 하퍼와 매니 마차도 등 역대급 슈퍼스타 프리에이전트(FA)들이 이 오프시즌에 한꺼번에 FA 시장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었다.

이번 FA 시장에 나올 초특급 스타들을 영입하기 위해 메이저리그의 큰 손 구단들이 미리 계획을 세우고 팀 페이롤을 사치세 부과기준 밑으로 끌어내려 가능한 많은 여유 공간을 확보하려 한다는 분석이 3~4년 전부터 나왔다. 역사상 가장 기대되는 FA 클래스가 메이저리그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는 장밋빛 예상 기사들도 만발했다.

하퍼와 마차도 가운데 과연 누가 역사적인 4억 달러 계약을 얻을 것인가 하는 것은 큰 화젯거리 중 하나였다. 한 마디로 2018년 겨울은 모두가 역대 가장 뜨거운 핫 스토브리그 액션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겨울이 지금 꽁꽁 얼어붙은 상태로 지나가고 있다. 모두가 예상했던 핫 스토브리그는 뜨겁기는커녕 썰렁하기 그지없다. 협상 출발점이 3억 달러이고 4억 달러 계약도 가능하다는 말이 돌았던 두 명의 26살짜리 슈퍼스타 하퍼와 마차도는 시장에 나온 지 석 달이 다 되도록 미계약 상태로 남아 있다. 이들에 대한 뜨거운 영입 경쟁은커녕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경쟁구단 자체가 거의 없는 분위기다.

최근 나온 루머 중 하나는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마차도에게 7년간 1억7500만 달러 오퍼를 제시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1억7500만 달러라면 엄청난 거액이긴 하지만 그동안 돌았던 마차도의 예상 계약 금액과 비교하면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에 대해 당장 그의 에이전트 댄 로사노는 “부정확하고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발끈하는 반응을 보였으나 그것뿐이었다. 워낙 이들의 계약과 관련한 유력한 소문조차 없자 일부 언론은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스,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화이트삭스 등이 협상에 나선 상태”라는 마차도 아버지의 믿기 어려운 발언까지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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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 마차도. /AFPBBNews=뉴스1
하지만 다저스와 양키스는 지금까지 마차도와 하퍼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적이 없다.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음에도 이들은 돈이 많아 계약할 능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영입후보로 소환당하는 느낌이다.

문제는 얼어붙은 FA 시장의 모습이 이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프링 트레이닝 개막이 이제 3주 앞으로 다가왔는데 올해 시장에 나선 217명의 FA 선수들 가운데 21일까지 메이저리그 계약을 체결한 선수는 단 79명뿐이다.

이 중 69명은 1년 아니면 2년짜리 단기 계약에 사인했다. 3년 이상 장기계약을 얻은 선수는 단 10명에 불과하다. 하퍼와 마차도 외에 달라스 카이클, A.J. 폴록, 크레이그 킴브럴, 마윈 곤잘레스, 마이크 무스타카스, 아스드루발 카브레라, 애덤 존스 등 스타급 선수들도 아직까지 얼어붙은 FA 시장에서 몸담을 팀을 찾지 못한 상태다.

이런 썰렁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선수들과 에이전트들은 조금씩 불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에이전트 제프 보리스는 구단들이 선수들의 연봉을 줄이기 위해 담합하고 있다는 금기시돼 왔던 강성발언을 터뜨렸고 시카고 컵스의 선수노조 대표인 크리스 브라이언트는 “하퍼와 마차도 같은 선수가 아직까지 계약을 못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안 좋은 상황”이라고 우려를 드러냈다.

지난 해 FA로 나섰다가 3월에야 계약하며 차가운 FA 시장의 무서움을 톡톡히 체험했던 제이크 아리에타는 1~3년차 선수들을 향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잘 지켜봐라. 다음은 너희들 차례”라고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또 카이클과 에반 롱고리아 등도 SNS를 통해 현재 상황에 대한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를 내보냈다.

무엇보다도 메이저리그 선수노조가 더 이상은 이런 분위기를 두고 보기 어렵다는 자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선수노조의 노사협상 책임자 중 한 명인 브루스 마이어는 지난 주말 “1월 중순이 됐는데 2년 연속으로 FA 시장에서 역사적인 수준으로 움직임이 거의 없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구단들이 FA를 통해 로스터를 향상시키는 것에 대한 무관심이 리그 전반적으로 퍼져 있다. 경쟁을 하지 않으려는 풍토는 선수와 팬들은 물론 경기 자체에도 좋지 않은 현상”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MLB 사무국은 “모든 구단의 단장들은 자기 팀이 가능한 자주 포스트시즌에 나갈 수 있도록 팀을 만들려고 모든 노력을 다한다”면서 “하지만 우리 팬들은 현명하지 못한 장기 계약이 구단의 경쟁력을 오랫동안 약화시키는 것을 지켜봐 왔다. 아직 계약하지 않은 선수들이 어떤 요구를 하고 있고 어떤 오퍼를 받았는지 알지 못하면서 이들이 계약하지 못한 것을 구단 탓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근거 없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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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스 하퍼. /AFPBBNews=뉴스1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을 경우 지난 1994~95년 이후 선수파업 없이 유지되던 메이저리그의 노사관계 평화시대가 막을 내릴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 노사협약은 2021년 시즌 종료 후 만료된다.

그렇다면 FA 시장이 지난해부터 얼어붙은 뒤 풀릴 기미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구단들이 돈이 없어 그런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전체 수익은 지난해 사상 최초로 100억 달러를 돌파했고 구단들의 기업가치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구단들이 사치세 부과기준이라는 인위적인 선을 그어놓고 사실상 샐러리캡 제도를 운명하고 있는 것이 대형계약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설명하진 않는다. 지난해 팀 페이롤이 가장 많아 사치세를 가장 많이 납부해야 하는 보스턴의 경우 세금액이 1200만 달러 정도로 추정되는데 보스턴이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감안하면 이 정도는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 수치다.

사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9개 구단은 사치세 부과기준보다 팀 페이롤이 1억 달러 이상 적은 상태를 보이고 있다. 사치세 부과기준에 육박하지 않고도 돈을 쓸 여유가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탱킹’ 과정에 있는 구단들과 원래 하위권인 스몰마켓 팀들은 미래를 위해 유망주 확보에만 열을 올릴 뿐 당장 메이저리그 팀의 전력 보강엔 별 관심이 없다. 다저스와 양키스, 시카고 컵스, 보스턴 레드삭스처럼 돈을 쓸 이유와 능력을 모두 갖고 있는 팀들은 대형 장기계약에 극도로 조심스러운 자세를 보이고 있다.

다저스는 올해 류현진, 데이빗 프리즈와 1년 재계약한 것을 빼면 구원투수 조 켈리와 3년간 2500만 달러에 사인한 것이 FA 계약의 전부였다. 양키스는 이번 겨울 FA 시장에서 약 1억4000만달러를 쓰긴 했지만 대부분은 자기 팀 FA들과 재계약하는 데 사용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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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AFPBBNews=뉴스1
컵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이번 FA 시장에서 두 팀이 합쳐 1600만 달러를 쓰는 데 그쳤다. 사실상 FA 시장을 보이콧한 셈이다. 심지어는 월드시리즈 챔피언 보스턴도 자기 팀 출신 FA인 스티브 피어스와 네이선 이볼디와 재계약하는 데 7400만 달러를 쓴 것을 제외하곤 단 한 명의 FA와도 계약하지 않았다.

다양한 분석기법을 통해 최저의 비용으로 최상의 가치를 창출하는 알고리즘에 정통한 각 구단 단장들은 한마디로 확실한 필요가 느껴지지 않는 한 돈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에 철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MLB 구단들의 수익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는 가운데 이런 분위기는 선수들을 갈수록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해 메이저리거들의 평균 연봉은 거의 10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는데 올해도 그런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한 바탕 전쟁이 펼쳐질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아직 3년이란 시간이 남아 있지만 메이저리그에선 벌써부터 조금씩 노사 대충돌의 조짐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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