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한 오클랜드... 1라운드 지명했더니 NFL 드래프트 신청 [댄 김의 MLB 산책]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9.01.18 13:36 / 조회 : 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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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왼쪽)와 풋볼 모두에서 활약 중인 카일러 머리. /AFPBBNews=뉴스1
요즘 미국 스포츠계에서 가장 ‘핫’한 선수는 오클라호마대학 풋볼팀의 쿼터백이자 야구팀 센터필더였던 카일러 머리(22)일 것이다.

외할머니가 한국인으로 밝혀져 한국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는 머리는 지난해 메이저리그(MLB)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9번 지명권으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뽑혀 계약금 466만 달러짜리 계약서에 서명한 미래의 메이저리거였다. 하지만 이번 주 그는 오는 4월 실시되는 미국프로풋볼(NFL) 드래프트에 참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래의 메이저리거가 미래의 NFL 쿼터백으로 진로를 바꿀 가능성이 생겼다.

현재 많은 NFL 드래프트 전문가들은 머리가 1라운드에 지명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머리는 미국 스포츠 역사상 NFL과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모두 1라운드에 뽑히는 최초의 선수가 된다. 보 잭슨과 디언 샌더스 등 과거 NFL과 메이저리그 무대를 누볐던 대선배 슈퍼스타들도 달성하지 못했던 대기록이다.

하지만 잭슨과 샌더스가 실제로 NFL와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뛰었던 것과 달리 머리가 두 스포츠를 모두 뛰는 것은 불가능할 전망이다. NFL의 스탠다드 선수 계약이 풋볼이 아닌 다른 스포츠 종목을 겸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등 잭슨과 샌더스가 활약하던 시대와는 상황이 달라졌을 뿐 아니라 설사 두 종목 겸업이 허용된다고 해도 몸이 버텨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 해도 프로 레벨에서 풋볼과 야구를 겸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머리의 고민은 지금 두 종목 겸업이 아니라 과연 어느 종목을 선택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머리는 다음 달 시작되는 오클랜드의 스프링 트레이닝 캠프에 참가해 메이저리그를 향한 도전을 준비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6월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전체 9번으로 오클랜드에 지명된 뒤 계약협상 과정에서 오클랜드에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풋볼선수로 마지막 시즌을 오클라호마에서 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프로야구 선수로 출발을 반 년 늦춘 뒤 이번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풀타임 야구선수로 나서겠다는 것이었다.

머리가 이런 요구를 한 것은 한때 미국 최고 쿼터백 재목으로 꼽혔던 포텐셜을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마감하는 것이 너무도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고교 시절 풋볼로는 쿼터백으로, 야구로는 유격수와 2루수로 맹활약한 머리는 언더-아머 올아메리카 야구올스타와 풋볼올스타로 뽑힌 사상 최초의 선수였다. 하지만 정작 대학교에 와선 단 1년도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던 것이 그에겐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고교 시절 전국 최고의 쿼터백으로 평가받으며 2015년 텍사스 A&M 대학에 진학한 머리는 1학년 때부터 경기에 나섰으나 또 다른 톱 쿼터백 카일 앨런(현 캐롤라이나 팬서스)과 주전 경쟁을 해야 했고 결국 1학년을 마친 뒤 오클라호마대로 전학을 결정했다.

같은 디비전 내에서 전학을 할 경우 1년을 뛰지 못하는 미 대학체육회 규정에 따라 2016년 시즌을 건너 뛴 머리는 2017 시즌엔 오클라호마에서 베이커 메이필드의 백업으로 또 1년을 벤치에서 보내야 했다. 메이필드는 그 해 하이즈만 트로피를 수상하고 NFL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에 지명됐다.

결국 지난해가 그가 대학풋볼 쿼터백으로 활약할 사실상 첫 기회였고 그는 그것을 놓치기 싫었던 것이다. 그리고 머리가 대학에서 야구선수로 그리 많은 경기에 뛰지 않았음에도 엄청난 재능을 믿고 그를 전체 9번으로 지명했던 오클랜드는 이런 소원을 받아들여 그의 프로야구 커리어를 이번 스프링 캠프까지 반 년 연기하는 데 동의했다. 사실 그의 요구조건을 거부하고 당장 팀에 합류할 것을 요구할 수도 있었으나 풋볼선수로 아쉬움을 마음껏 씻어낸 뒤 야구선수로 길을 출발하자고 합의했다.

사실 당시만 해도 머리는 대학풋볼에서 제대로 뛰어본 적이 없었기에 NFL 유망주로는 평가되지 않았고 특히 5피트 9인치(175cm)라는 풋볼선수론 왜소한 체격으로 인해 NFL 쿼터백으로선 후한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 오클랜드 입장에서 그에게 한 시즌 더 풋볼선수로 뛸 기회를 주는 것이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은 마침내 풋볼에서 제대로 된 기회를 잡은 머리가 지난 시즌 말 그대로 펄펄 날아다닌 것이었다. 머리는 패싱과 러싱에서 모두 최고의 재능을 보이며 오클라호마를 플레이오프에 올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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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 경기를 하는 카일러 머리. /AFPBBNews=뉴스1
그러자 그 전까지는 별 관심이 없었던 NFL팀들이 갑자기 쿼터백 머리에게 뜨거운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고 그의 NFL 진출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옵션으로 돌변했다. 6개월 전만 해도 머리를 확실히 붙잡았다고 자신했던 오클랜드는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결국 오클랜드는 구단 수뇌부들이 머리를 찾아가 원래 계약대로 야구선수로 뛰어줄 것을 설득하는 작업에 나섰고 메이저리그에는 머리의 계약을 수정해 그에게 메이저리그 계약을 주는 것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 승낙을 받아냈다. 메이저리그 역시 NFL과 자존심 싸움이 된 머리 쟁탈전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오클랜드의 요청을 수용했을 뿐 아니라 리그 고위 관계자가 머리 설득작업에 함께 동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머리는 일단 NFL 드래프트에 참가를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결정이 그가 오클랜드와 계약을 포기하고 NFL로 간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옵션을 확보해 놓고 생각할 시간을 벌려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2월15일엔 오클랜드의 스프링 캠프가 시작되고 2월26일엔 NFL 드래프트 참가자를 위한 평가장인 NFL 콤바인이 막을 올린다. 머리로선 사실상 이 시간 전까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NFL 드래프트는 4월에나 열리는데 그 때까지 엉거주춤한 상태로 남아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과거 탬파베이 버카니어스는 슈퍼스타 보 잭슨을 영입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꼼수를 썼다가 대실패를 경험한 사례가 있다. 1986년 NFL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 지명권을 쥐고 있던 탬파베이는 잭슨을 지명하기 위해 그에게 야구선수로 커리어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으나 잭슨이 이를 거부하면서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러자 탬파베이의 휴 컬버하우스 회장은 잭슨을 팀 시설에 초대하고 자신의 자가용 전용기를 보냈는데 잭슨에게 이번 여행은 전국대학체육협회(NCAA)의 허가를 받은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잭슨이 그 초대를 받아 전용기에 타는 순간 NCAA 규정 위반으로 대학야구 선수로 마지막 시즌을 뛸 자격이 박탈되는 것을 노린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잭슨은 결국 풋볼에 전념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잭슨은 격분해 탬파베이에선 절대로 뛰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했다. 그리고 결국 그 맹세대로 그 해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탬파베이에 지명되고도 끝내 계약을 거부했다. 탬파베이는 그를 야구로 빼앗길까 두려워 그의 대학 야구선수 자격을 박탈시키는 꼼수를 썼다가 그를 놓쳤을 뿐 아니라 소중한 전체 1번 지명권까지 날려버린 셈이 됐다.

NFL과 메이저리그는 각자 장단점이 있고 어떤 쪽이 그에게 더 큰 성공을 안겨줄 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슈퍼보울과 월드시리즈에 모두 출전한 유일한 선수인 샌더스는 자신이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야구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역시 이번 결정은 전적으로 머리가 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연 머리는 어느 쪽을 선택하고 그의 스토리는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아무리 뜯어봐도 쉽지 않은 결정이 될 수밖에 없다. 두 스포츠에서 모두 뛰어난 재능을 지닌 것이 그에게 과연 축복인지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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