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바쁜' 시애틀, '철거작업' 모험은 성공할까 [댄 김의 MLB 산책]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8.12.04 15:22 / 조회 :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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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윈 디아스. /AFPBBNews=뉴스1
미국 메이저리그(MLB) 시애틀 매리너스는 올 시즌 89승73패로 아메리칸리그(AL) 서부지구에서 1위 휴스턴 애스트로스(103승59패)에 14게임 차 뒤진 3위에 머물렀다. 포스트시즌 가뭄을 17년째 이어간 시애틀의 제리 디포토 단장은 시즌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팀이 나아갈 미래의 방향을 언급하면서 당장 완전한 '테어 다운(Tear down·‘철거작업’, 현재 팀을 완전히 뜯어내고 새로 시작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시애틀이 올해 올린 89승은 AL 중부지구 우승팀 클리블랜드(91승71패)에 불과 2경기 뒤진 것이고 내셔널리그(NL) 동부지구 우승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90승72패)와는 단 한 경기 차다. 휴스턴이 워낙 강해 14게임 차가 벌어졌지만 실제론 크게 나쁘지 않은 성적인 셈이다.

꼴찌보다는 1위에 훨씬 가까운 성적을 올렸기에 그런 팀을 완전히 공중분해시키고 새로 판을 짠다는 것은 사실 선뜻 생각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럴 생각이 없다는 디포토 단장의 발언은 당연하고 평범해 보였고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그 기자회견을 한 뒤 약 두 달이 지난 지금 디포트 단장이 하고 있는 일은 그의 말과는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클럽의 완전한 ‘테어다운’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비록 ‘테어다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현재까지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가장 바쁘게 보이는 시애틀의 모든 움직임을 늘어놓으면 바로 짐작할 수 있다.

시애틀은 지금 앞으로 최소한 2~3년을 바닥에서 보낼 것을 각오한 철거작업이자 사실상 ‘탱킹(tanking·고의 패배)' 과정에 들어간 것이다. 최소한 다음 2~3년간은 이기는 것을 포기한다고 공식적으로 백기를 문 앞에 내다 건 것과 마찬가지다.


본격적인 신호탄은 지난 달 중순 왼손 에이스 제임스 팩스턴을 뉴욕 양키스에 트레이드한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지난 2년간 33승을 올린 팩스턴은 특히 아직도 프리에이전트가 되려면 2년이나 남아 있어 보통이라면 꼭 붙잡고 있어야 할 선수이지만 시애틀은 양키스로부터 톱 유망주 3명을 받고 그를 아낌없이 내줬다.

앞으로 2년간은 바닥을 칠 결심을 굳힌 마당에 팩스턴은 트레이드 밸류가 가장 높은 지금 파는 것이 가장 이득이기 때문이다. 시애틀은 그 대가로 양키스의 넘버 1 유망주로 꼽히는 왼손투수 유스터스 셰필드와 오른손투수 에릭 스완슨, 그리고 외야수 돔 톰슨-윌리엄스를 받았는데 셰필드와 스완슨은 당장 내년부터 선발진 합류 가능성이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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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디포토 단장. /AFPBBNews=뉴스1
팩스턴 트레이드로 신호탄이 오른 ‘철거작업’은 지난 주부터 본격화됐다. 우선 철벽 셋업맨 구원투수 알렉스 콜로메(29)를 포수 오마르 나바에스와 맞바꿔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보냈다. 2016년 탬파베이에서 올스타로 뽑혔고 지난해엔 47세이브로 AL 1위에 올랐던 콜로메는 지난 5월 트레이드로 시애틀에 와 셋업맨으로 47경기에서 5승무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53을 기록한 뒤 반 시즌 만에 다시 시카고로 떠나게 됐다.

이 두 트레이드의 성격은 관련 선수들의 연봉만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팩스턴과 콜로메는 비록 모두 구단의 권리하에 있긴 하지만 둘 다 연봉조정 대상으로 올해 연봉(490만달러-530만달러)과 성적을 감안하면 내년 시즌 상당한 연봉부담이 예상되는 선수들이다.

반면 이 트레이드 대가로 얻은 선수들은 모두 최저연봉 대상이다. 특히 나바에스는 지난달 초 또 다른 트레이드로 탬파베이로 떠나보낸 마이크 주니뇨와 방출 웨이버를 통해 휴스턴으로 간 백업캐처 크리스 허만을 대체할 수 있는 선수여서 연봉 절감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곧바로 지난 주말 블록버스터 트레이드 뉴스가 터져 나왔다. 올스타 클로저 에드윈 디아스(24)와 베테랑 2루수 로빈슨 카노를 뉴욕 메츠로 보내고 메츠로부터 베테랑 우익수 제이 브루스와 4명의 유망주를 받아들인 것이다.

5년 전 체결한 10년 2억4000만달러 계약 가운데 아직도 5년간 1억2000만달러가 남아 있는 카노(36)를 메츠로 보내기 위해 시애틀은 다음 2년간 연봉 2600만달러 계약상태인 브루스를 받고 연봉 보조용 현금 2000만달러도 얹어줘야 했다. 그래도 앞으로 5년간 1억 달러에 달하는 연봉 부담을 덜게 됐으니 당장 연봉 감축 측면에서도 남는 거래다. 특히 브루스는 장차 다시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가 가능한 선수다.

물론 이번 딜을 성사시키기 위해 시속 100마일의 강속구를 뿌리며 올해 57세이브를 올려 메이저리그 역사상 한 시즌 최다세이브 2위 기록을 세운 특급 클로저 디아스를 희생시켜야 한 것이 아팠지만 어차피 당분간은 이긴다는 생각을 포기한 입장이기에 감내할 수 있었다. 더구나 메츠로부터 3명의 오른손투수와 센터필더 등 4명의 유망주를 받았는데 이들이 기대만큼 성장해준다면 그 아픔이 빨리 잊힐 수도 있다.

이어 시애틀은 4일(한국시간) 올스타 유격수 진 세구라를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보내고 1루수 카를로스 산타나와 유격수 J.P. 크로포드를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지난해 7월 5년간 7000만달러에 계약했던 세구라를 1년 반 만에 내보내기 위해 역시 다음 3년간 3500만달러 잔여계약이 남아있는 산타나를 받아야 했지만 브루스와 마찬가지로 산타나 역시 조만간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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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세구라(오른쪽). /AFPBBNews=뉴스1
결국 현재까지 시애틀은 팩스턴, 주니뇨, 콜로메, 디아스, 카노, 세구라, 데나드 스판 등을 내보냈고 계약이 만료된 지명타자 넬슨 크루스는 그대로 내보낼 것으로 예상돼 이미 지난해 라인업에서 주전급들은 절반 이상 물갈이됐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도 트레이드 미끼로 활용이 가능하다면 젊은 유망주급 선수라도 거래가 가능하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올스타로 뽑힌 2년차 외야수 미치 해니거도 트레이드가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 마디로 누구라도 내보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애틀의 재개발 사업을 위한 속전속결식 철거작업을 지켜보는 현지언론의 반응은 어떨까. 한 마디로 지난해 데릭 지터가 인수한 마이애미 말린스가 이런 모습을 보였을 때 “염치없는 행동”이라는 원색적 비난이 쏟아졌던 것과는 딴판이다.

오히려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꼭 필요한 팀 재건과정이라는 의견이 강하고 이해한다는 분위기다. 아마도 마이애미는 이런 ‘파이어세일’의 상습범이었던 반면 시애틀은 지난 수년간 상당한 투자를 하며 노력했으나 실패했던 팀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지금 시애틀이 속한 AL 서부지구를 보면 시애틀이 완전 철거 후 재건하는 길을 선택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지난 2년간 우승팀 휴스턴은 앞으로도 3~4년 이상을 정상에서 꼼짝하지 않을 팀이고 올해 와일드카드로 약진한 오클랜드 역시 젊은 유망주들이 주축을 이룬 팀인 데다 계획 중인 새 구장이 현실화된다면 앞으로는 그런 유망주들을 팔아치우지 않고 계속 보유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전력도 향후 3~4년간 정상권을 유지할 것이 확실해 당분간은 시애틀이 와일드카드 플레이오프 경쟁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현실적인 평가다. 이번 완전 철거작업이 심지어는 시애틀 지역에서조차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는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메이저리그에 다음 2~3년간 또 하나의 ‘동네북’팀이 추가되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매년 우승을 겨룰 팀과 꼴찌를 다툴 팀이 시즌 시작 전에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탱킹 작업이 장기적인 목적을 갖고 있고, 비록 단기적인 것이라고는 해도 승부의 세계에서 사실상 이기는 것을 포기한 팀들이 계속 생겨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그냥 받아들여야 할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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