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김혜수 "투사보다 소임을 다하는 사람이길"

영화 '국가부도의 날' 김혜수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8.12.05 07:00 / 조회 :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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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김혜수 / 사진제공=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김혜수(48)가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 시나리오를 처음 접한 건 늘 그렇듯 어느 밤이었다. 비스듬히 기대앉아 읽다가 안되겠다 싶어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 순간을 김혜수는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국가부도의 날'는 국가부도의 위기를 1주일 앞둔 대한민국을 세 개의 축으로 묘사한다. 김혜수는 위기를 가장 먼저 직감하고 대책을 요구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 역을 맡아 영화의 중심축을 이끈다. 영화는 자연스럽게 21년 전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위기에 안일했던 국가와 재빠르게 기회를 포착했던 이, 그 타격을 온 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사람을

1986년 데뷔한 김혜수 역시 1997년 IMF를 겪은 세대다. 당시에도 활발히 활동하던 배우였던 김혜수에게 IMF란 어떤 시간이었을까. 그녀는 "친구들이 갑자기 지방으로 가고 비참하게 이민을 떠났다"면서 "당시엔 몰랐는데 집안 친인척들도 상처를 피할 수 없었다더라"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영화를 보고 제 초등학교 친구 하나가 너무 울었대요. 사회초년생이었던 그때 엄청나게 어려웠던 생각이 나서. 저는 연예인, 그 친구는 직장인이고 그 고충을 저는 잘 모르잖아요. 굉장히 친한 친구였는데도 IMF 당시 그렇게 어려웠단 말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전 몰랐던 거죠. IMF를 겪었음에도 내가 잘 알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구나. 그리고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를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구나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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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김혜수 / 사진제공=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국가부도의 날', 그리고 한시현은 김혜수이기에 가능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유능한 경제전문가인 그는 맡은 바 소임을 다하려 애쓰는 인물. 재정부 고위 관리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심지어 IMF 총재와 마주한 협상 테이블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한시현에게 공감할 수 있는 건 김혜수라는 배우의 아우라가 큰 몫을 했다.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 김혜수는 "재미는 없다. 가뜩이나 은행원이고 뻔하고 교과서스럽다. 그런 조합만이라면 안 한다"고 입을 뗐다.

"모범적이고 전형적인 동시에 틈새에서 느껴지는 다른 요인들이 있었어요.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권력 구조에서 저항하는데 그게 주가 되지는 않아요. 신념이나 원칙이 동력이지만 전형적인 패턴을 피해갈 여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틈새에서 느껴지는 것을 최대한 진짜로 가져갈 필요가 있었어요. 덜 전형적인, 덜 도식화된, 좀 더 인간적인 한시현을 구성하는 작은 것들."

신뢰와 실력으로 똘똘 뭉친 통화금융팀원들과의 호흡, 경제전문가로서의 확신과 강단, 위풍당당한 여배우 김혜수의 아우라 모두가 한시현을 구성했다. 그런 능력자가 여성이라는 자체가 엄청난 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김혜수는 "단지 여성이라는 것을 어필하거나 전사라는 걸 강조하고 싶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남성 중심 사회에 반감 가득한 투사가 아니에요. 상식적으로 이해할 때 가장 바람직한 성인. 자기 자리에서 제 몫을 제대로 다하는 사람…. 저는 그냥 한시현이길 바랐어요. 한시현이 투사보다는 그저 소임을 잘하려는 사람으로 보이길 바랐고요. 투사보다 그런 사람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더 많아져야 하고요. 투사를 폄하하는 게 아니에요. 투사는 모든 걸 버리고 싸워야 하는 사람인데, 소임을 다하는 건 마음을 옳게 먹는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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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김혜수 / 사진제공=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조우진, 허준호, 유아인, 그리고 뱅상 카셀. 김혜수를 통해 듣는 배우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재정국 차관 역 조우진과 영화 내내 대립했던 김혜수는 조우진을 두고 "너무 좋아"를 연발했다. "연기 잘하는 분에 대한 경외감이 있다. 조우진의 경우 천제적인 데가 있는데 노력까지 한다"며 "진짜 잘하는 사람과 했을 때의 흥분, 나만이 느끼는 호흡이 있다. 그런 걸 느끼게 하는 분이 제 연기 인생에 많지 않다. 그 중 한 명이 조우진"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촬영하며 딱 한번 만났던 허준호를 두고선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얼굴이 너무 좋으셨다"며 "배우의 얼굴에서 연기로 설명할 수 없는 드라마가 읽힐 때 느껴지는 깊은 감동이 있다"고 털어놨다. 유아인과는 극중에선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연기와는 별개로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됐다"고 말했다. 폼나고 칭찬받고 연기를 마음껏 뽐낼 수 있는 남자주인공이 상대적으로 많은데 '버닝' 이후 '국가부도의 날'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도 크게 다가왔다고 했다.

그리고 IMF 총재 역의 뱅상 카셀. 김혜수는 프랑스의 대표 배우이기도 한 뱅상 카셀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고 ''으잉, 오 마이 갓. 뭐라고요. 어떻게 캐스팅했어요' 그랬다며 팬심을 숨기지 않았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예요. 말이 그렇지 배우가 다 배우예요? 뱅상 카셀인데! 그 배우를 정말 좋아해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생겨요."

하지만 호흡을 맞춰 연기해야 하는 입장에선 촬영이 다가오며 정신이 번쩍 들었단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인데다, 가뜩이나 긴장감이 높은 장면인 데다 뱅상 카셀이 시나리오를 보고 출연을 결정했다 하니 더 긴장이 됐다. 김혜수의 준비도 철저했다. 영어대사, 그것도 협상 테이블의 딱딱한 대사를 '말'로 하고 싶어 시나리오를 받은 뒤 매주 최소 2번, 많게는 5번씩 연습을 했던 터다. "자다가도 뱅상 카셀의 대사까지 다 할 수 있을 정도"라는 김혜수는 말했다. 촬영은 단 3일이었다.

"다시 못할 경험이죠. 극중 이런 인물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럭키'였고요. 그저 연기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우리 시나리오 자체에 관심과 의미를 두고 출연한 배우였기 때문에 뱅상 카셀이 더 좋아졌어요. 영화를 보니 확실히 그냥 한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대사에만 충실해야 하는 신이 있고, 그 신에서 총재 역은 그랬어요. 좋은 배우란 무엇인가, 갖춰진 배우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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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김혜수 / 사진제공=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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