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억원 거부+시즌 포기' 피츠버그 르비온 벨, 속사정은? [댄 김의 NFL 산책]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8.11.16 12:49 / 조회 : 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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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버그 르비온 벨. /AFPBBNews=뉴스1
이번 주 시즌의 반환점을 돈 미국프로풋볼(NFL)에서 최고의 화제는 누가 슈퍼보울행 레이스에서 선두주자로 나섰느냐가 아니다. 오는 20일(한국시간) 멕시코시티 아즈테크 스타디움에서 펼쳐질 예정이던 NFC와 AFC 선두 LA 램스(9승1패)와 캔자스시티 칩스(9승1패)의 ‘빅매치’가 아즈테크 스타디움의 필드 문제로 인해 램스 홈구장인 LA 메모리얼 콜로세움으로 옮겨진 것도 그리 큰 관심사는 아니다.


이번 주 NFL에서 가장 큰 화젯거리는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올프로 러닝백 르비온 벨(26)이 무려 1450만 달러라는 엄청난 개런티 연봉계약을 포기하고 올 시즌을 뛰지 않기로 한 결정에 쏠려 있다. 벨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13일 오후 4시까지 피츠버그 선수단 합류를 거부하면서 공식적으로 올 시즌 미계약 선수로 남게 돼 이번 시즌 전체를 뛰지 못하게 됐다.

그의 올해 연봉은 무려 145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63억5000만원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다. 그가 합의하지 않아 계약이 체결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구단이 그를 ‘프랜차이즈 선수’로 지정했기에 그가 팀에 합류만 하면 계약이 발효돼 자동으로 받았을 액수였다.(물론 그가 늦게 합류할수록 그 액수는 줄어든다. 주급이 85만5000달러이기에 한 주 늦게 합류할 때마다 그만큼씩 받을 수 있는 액수가 줄어드는 구조다)

이번 시즌 슈퍼보울 진출을 꿈꾸는 피츠버그(6승2패1무)의 핵심선수인 벨이기에 그의 팀 합류를 바라는 팬들과 동료선수들의 압박도 엄청났다. “완전히 미쳤다. 그런 거액 연봉을 거부하다니”, “정신 나간 녀석이다”, “그가 원하는 계약을 줄 팀은 어디에도 없을 텐데 스스로 무덤을 팠다”, “팀의 기대를 저버린 배신자다” 등 온갖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벨은 시종 꿈쩍도 하지 않았고 결국 팀에 복귀할 수 있는 마지막 데드라인마저 넘겨 올 시즌 팀 합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도대체 그는 무슨 이유로 이런 엄청난 금액을 포기하고 시즌 전체를 보이콧하는, 말도 안돼 보이는 결정을 내릴 것일까. 리그 최고 수준의 연봉을 포기하고 실업자를 자처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지가 않다. 벨은 기본적으로 이번 결정으로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시즌 종료 후 다른 팀들과 다년 계약을 통해 올 시즌 손실을 만회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런 거액의 개런티 계약을 포기하면서 한 시즌을 통째로 쉬는 것은 그다지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구단과의 싸움에서 원군이 되어야 할 팬들과 동료들의 바람과 희망을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버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욕심이 지나쳤는데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자존심 싸움으로 비화되는 바람에 스스로 자기 발등을 찍은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팬들의 가장 일반적인 반응이다.

특히 벨은 그를 대체한 선수인 러닝백 제임스 코너가 올해 벌써 771야드 러싱과 10개의 러싱 터치다운으로 모두 리그 3위에 올라있을 정도로 맹활약하는 바람에 시즌 초반 그의 복귀를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에게서까지 “안 와도 그만”이라는 냉소적인 말까지 듣는 처지가 됐다. 어떻게 보면 그로선 설상가상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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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버그 선수들. /AFPBBNews=뉴스1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이 벨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권리행사라면서 섣불리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피츠버그 구단이 2년 연속으로 벨을 ‘프랜차이즈 선수’로 지정한 데 따른 것이다. ‘프랜차이즈 선수’란 리그 최고 선수들의 평균연봉으로 1년 계약을 맺는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얼마 전 류현진(LA 다저스)에게 제시됐던 퀄리파잉 오퍼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둘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는 퀄리파잉 오퍼의 경우 이를 거부하고 FA로 나설 권리가 있는 반면 NFL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지정되면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벨은 이미 지난 2017년 시즌 피츠버그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지정돼 1212만 달러의 연봉으로 뛰었다. 당시에도 그는 프랜차이즈 선수 지정에 큰 거부감을 나타냈다가 결국 싸움을 포기하고 팀에 합류했다. 하지만 오프시즌 팀과 장기계약 협상에서 팀이 제시한 5년간 7000만 달러 오퍼는 개런티 금액(1700만달러)이 너무 낮다는 이유로 거부한 뒤 팀이 다시 그를 프랜차이즈 선수로 지정하자 본격적으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NFL과 메이저리그 장기 계약의 결정적인 차이는 메이저리그는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외한 액수가 모두 보장되는 반면 부상으로 언제라도 선수 커리어가 끝날 수 있는 NFL 계약은 일부만 보장된다는 사실이다. 당장 피츠버그가 제시한 장기계약 오퍼도 외형은 7000만 달러짜리지만 실제론 1700만달러짜리였다. 그 차이가 절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피츠버그가 벨에게 제시한 장기계약은 벨 입장에서 보면 외양만 화려했을 뿐 실속이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벨이 총액이 보장된 프랜차이즈 선수 계약마저 거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프랜차이즈 계약’이라는 무기를 활용해 선수가 FA로 나서 얻을 수 있는 대형계약 기회를 원천 봉쇄할 수 있도록 돼 있는 현 NFL 시스템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이다.

피츠버그가 2년 연속으로 그 무기를 활용해 오직 자기 팀만이 그와 장기계약 협상이 가능하도록 묶어놓고 실제 협상에서 겉만 번지르르할 뿐 실속 없는 오퍼만을 고집하자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계약 보이콧 권리를 사용한 것이다. 사실 그 누구도 무려 1450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 연봉을 포기하는 이런 카드를 벨이 실제로 활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나 그는 이를 단행한 것이다.

결국 이제 이 대결의 최종 승부는 내년 3월 FA 시장에서 벨이 과연 어떤 계약을 얻어낼 수 있느냐에 따라 판가름나게 됐다. 그가 만약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만족할 만한 계약을 얻는다면 이번 도박은 성공한 것이 되겠지만 만약 1년을 쉰 선수라는 이유로 평범한 계약에 그친다면 벨 입장에선 엄청난 도박에서 패하는 결과가 된다.

한편 피츠버그 입장에서 보면 벨의 대타로 나선 코너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 준 덕에 아직까지는 별다른 피해가 없다. 무엇보다도 프랜차이즈 선수라는 시스템이 원래 일방적으로 구단에 유리하게 디자인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즌이 본격적으로 후반으로 이어지고 포스트시즌에 돌입하게 되면 벨의 존재가 그리워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결국 누가 마지막에 웃게 될지는 아직까지 장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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