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츠, 전술도 믿음도 코라에 모두 졌다 [댄 김의 MLB 산책]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8.10.3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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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시리즈 1차전을 앞두고 포옹하는 알렉스 코라(위) 보스턴 감독과 데이브 로버츠 LA 다저스 감독. /AFPBBNews=뉴스1
2018년 월드시리즈가 5차전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승리로 막을 내린 28일(현지시간) 보스턴 선수들의 파티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미국 내 월드시리즈 방송사인 폭스TV와 스포츠채널 ESPN 등은 다저스 팬들이 다 빠져나가 텅 빈 다저스타디움에 설치된 임시 스튜디오에서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방금 끝난 월드시리즈에 대한 분석과 보스턴 선수들 및 감독, 코치들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선수들의 자축행사 장면을 지켜봤다.

이날 경기 후 하나둘씩 돌아가며 포스트게임 인터뷰장에 나선 보스턴 선수들의 소감에서 빠지지 않고 계속 등장한 공통주제는 바로 루키 감독 알렉스 코라에 대한 찬사였다. 에이스 크리스 세일과 무키 베츠, J.D. 마르티네스, 잰더 보가츠, 데이비드 프라이스, 네이선 이볼디, 그리고 월드시리즈 MVP로 선정된 스티브 피어스 등 인터뷰장에 불려온 선수들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이구동성으로 승리의 원동력 가운데 하나로 코라 감독의 지도력을 꼽으며 그에게 찬사를 보내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날 9회에 마운드에 올라 3명을 모두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우승을 확정지은 세일은 “그는 우리 팀의 전부라고 해도 된다. 정말 최고의 감독”이라고 극찬했다. 장장 18이닝까지 간 역대급 ‘마라톤’ 승부가 된 시리즈 3차전에서 6+이닝 동안 97개의 공을 던지며 3피안타 1실점으로 투혼의 피칭을 한 경이적인 퍼포먼스로 월드시리즈 영웅 중 한 명으로 떠오른 이볼디는 “그가 시도한 모든 것이 적중했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안겨주는 법을 알고 있다”고 무한한 존경을 표했다.

특히 팀이 5-4로 박빙의 리드를 지키던 시리즈 1차전 7회말에 대타로 나서 승부에 쐐기를 박은 3점홈런을 터뜨린 에드와르도 누녜스는 “알렉스 코라는 내가 경험한 최고의 감독이다. 내가 내 자신에 대해 훨씬 더 긍정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감독이기 때문”이라며 1차전 홈런에 얽힌 숨은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코라 감독이 경기 전날 밤 누녜스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일 (라파엘) 데버스가 (3루수로) 스타트하지만 경기 중반 승부가 팽팽할 때 왼손투수를 상대로 득점 찬스가 오면 대타로 내보낼 것이니 준비하고 있으라”는 내용이었다. 누녜스는 그 날 밤 알렉스 우드의 경기 비디오를 집중 분석했고 그 결과 그가 승부의 고비에선 85%의 비율로 변화구를 던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누녜스는 “우드는 빠른 볼로 승부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난 타석에서 그의 커브를 계속 노리고 있었고 그 덕에 홈런을 칠 수 있었다“면서 ”내가 홈런을 친 것은 오직 코라 감독 덕분“이라고 감독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당시 7회초 1점을 만회해 4-5로 바짝 추격한 다저스는 7회말 수비에서 선두 앤드루 베닌텐디에게 인정 2루타를 내주자 오른손투수 페드로 바예스를 올려 미치 모얼랜드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았고 이어 오른손 거포 마르티네스를 고의사구로 거른 뒤 보가츠와 승부, 다시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다.

여기서 좌타자 데버스 타석이 돌아오자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바예스를 내리고 우드를 마운드에 올렸지만 그것은 코라 감독이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걸어 들어간 꼴이 됐다. 이 수순을 전날 밤부터 미리 간파하고 있던 코라 감독은 기다렸다는 듯 데버스를 우타자 누녜스로 교체해 응수했고 전날 밤 우드를 집중 연구한 덕에 어떤 공이 올지 알고 있었던 누녜스는 우드의 2구 몸쪽 낮은 커브볼을 잡아당겨 왼쪽 그린 몬스터를 넘기는 3점짜리 아치를 그리며 리드를 8-4로 벌려 사실상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물론 결과론이지만 위력적인 구위를 보인 바예스가 데버스와 그냥 상대했더라면 마지막 아웃을 잡아냈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던 상황이었다. 코라와 로버츠의 두뇌싸움에서 코라 감독이 완승을 거둔 장면이었고 이 한 방은 시리즈 초반 보스턴이 기선을 제압하고 주도권을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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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코라 보스턴 감독. /AFPBBNews=뉴스1
하지만 코라 감독이 이번 시리즈를 통해 스타로 떠오른 것은 단순히 투타 매치업 등 두뇌싸움의 승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1년 전 보스턴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부터 선수들과 서로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다는 확실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시즌 내내 행동으로 선수들을 믿는다는 사실을 입증했고 그런 그를 선수들은 절대 신뢰했다. 그로 인해 보스턴 클럽하우스 안에는 개인보다 팀을 앞세우는 분위기가 확실하게 뿌리내렸고 이 효과는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월드시리즈 역사상 최다이닝, 최장시간 혈투가 벌어진 시리즈 3차전에서 패한 뒤 많은 전문가들은 코라 감독이 꼭 이길 필요가 없던 경기에 전력투구했다 패하는 바람에 상당한 티격을 입었다며 나머지 시리즈에 미칠 부정적인 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사실 팀의 모든 전력을 쏟아 넣고 패했기에 만약 4차전도 졌다면 시리즈가 어느 쪽으로 기울지 예측하기 쉽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려 18회까지 간 기록적인 혈투가 뼈아픈 패배로 끝난 뒤 코라 감독은 라커룸에서 선수들을 모아놓고 선수들에게 일일이 감사의 뜻을 표하며 그들과 같은 팀으로 함께 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고 한다. 장장 7시간이 넘는 혈투 끝에 뼈아픈 패배를 맛보고 침통했던 선수들이었지만 감독의 진심 어린 격려에 선수들 사이에선 감동의 물결이 몰아쳤다고 한다. 보가츠는 “이 미팅이 끝났을 때 우리는 그 경기에서 이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혈전에 모든 투수를 다 소진해 당장 다음 날(실제로는 자정이 지났기에 같은 날이었다) 벌어질 4차전 선발로 나설 선수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보스턴 선수들은 저마다 선발등판을 자원했다. 당장 3차전 선발투수였던 릭 포셀로와 2차전 선발 등판 뒤 이날 구원투수로도 나서 ⅔이닝을 던진 프라이스가 4차전 선발 등판을 자청하고 나섰고 시즌 후반 어깨통증으로 고생한 1차전 선발 세일도 당초 예정됐던 5차전 대신 4차전에서 나설 수 있다고 자원하고 나섰다.

코라 감독은 결국 이날 구원등판에 ⅓이닝만 던진 에드와르도 로드리게스를 선발로 낙점했지만 이런 선수단의 분위기는 보스턴이 4차전에서 6회까지 0-4 열세를 뒤집고 대역전승을 거둬 확실한 시리즈 승기를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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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로버츠 LA 다저스 감독. /AFPBBNews=뉴스1
반면 로버츠 감독은 시리즈 내내 이해하기 힘든 선수 기용과 투수진 운용으로 인해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까지 비판을 받은 데 이어 그런 지적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에서도 그 책임을 선수에게 떠넘기는 듯한 발언으로 또 한 번 구설수에 올랐다.

4차전에서 7회 1사까지 1안타만을 내주고 실점 없이 역투하던 리치 힐을 교체한 것에 대해 비난이 쏟아지자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힐이 경기 도중 자기가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으나 잘 지켜봐 달라”는 말을 했다고 공개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힐이 더 이상 던지기 힘들지 모른다는 말을 했다는 듯한 뉘앙스를 안겼다.

그는 또 교체상황에서도 자신이 힐과 대화를 하려고 마운드에 올랐는데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공을 넘겨줘 교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언뜻 보면 힐이 더 이상 던지기 힘들다고 스스로 마운드를 내려갔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었다. 자신의 대한 비난을 선수 탓으로 돌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 만했다.

하지만 힐은 나중에 자신이 로버츠 감독에게 그냥 공을 주고 내려간 것은 지금까지 로버츠 감독이 올라오면 100% 교체를 의미했기에 이번에도 당연히 그럴 줄 알고 그렇게 한 것일 뿐 자신이 스스로 던지기 힘들어 내려간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결국 시즌 최고의 고비, 그것도 월드시리즈 경기에서 감독과 투수가 대화를 나눌 기회 자체가 서로간의 오해로 인해 그냥 사라졌다는 이야기인데 그것은 전적으로 그만큼 선수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 로버츠 감독의 책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코라 감독과 보스턴 선수들 사이에 존재하는 서로간의 끈끈한 사랑과 존경의 감정이 로버츠 감독과 다저스 선수들 사이에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그 것이 이번 월드시리즈에 나선 두 팀의 운명을 결정한 가장 큰 차이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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