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워키와 오클랜드의 '불펜 선발'실험 [댄 김의 MLB산책]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8.10.05 11:19 / 조회 : 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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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암 헨드릭스./AFPBBNews=뉴스1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야구에서 투수는 선발투수(starter)와 불펜투수(reliever)로 나뉜다. 물론 경우에 따라 선발투수가 경기 도중 구원투수로 등판하기도 하고 본업이 불펜투수인 선수가 선발로 등판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론 선발투수와 불펜투수의 경계선은 그동안 상당히 분명했다. 특히 매 경기가 거의 ‘머스트-윈’(must-win)에 가까운 플레이오프에선 최고의 선발투수를 엄선해 출전시키기에 그 차이가 더욱 뚜렷했다.

하지만 이번 포스트시즌엔 급격히 그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4일(한국시간) 벌어진 뉴욕 양키스와의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게임에서 불펜투수인 우완 리암 헨드릭스를 선발로 내보냈다. 이어 5일 벌어진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도 밀워키 브루어스는 불펜투수 브랜던 우드러프를 선발 등판시켰다. 연속 두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진정한 선발투수가 아닌 불펜투수가 선발로 등판한 것이다.

‘선발’이라고 하지만 헨드릭스는 사실 엄밀히 말해 선발로 등판한 것이 아니라 불펜투수로 가장 먼저 등판한 것이었다. 그의 임무는 1회를 잘 막은 뒤 다음 투수에게 바통을 넘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부상으로 인해 선발투수진이 괴멸되다시피 했지만 불펜진은 ML 최고급으로 막강한 오클랜드는 이미 정규시즌 때부터 이런 ‘불펜 선발’ 시스템을 꾸준하게 활용해 왔다. 나설 수 있는 선발투수가 마땅히 없는 경기에선 아예 불펜투수들이 1회부터 나서 여러 명이 경기를 잘게 쪼개 던지며 압도적인 클로저 블레이크 트레이넨이 경기를 마무리할 때까지 다리를 놓는 방식이다.

헨드릭스는 9월 한 달 동안 총 12경기에 나섰는데 이중 8경기에서 이런 방식으로 ‘선발’ 등판했다. 그 8경기에서 그는 한 경기를 빼고는 모두 1회를 마친 뒤 다음 투수에 자리를 내주고 물러났는데 이 8경기 모두 1회엔 실점을 하지 않았다. 그는 9월에 단 2점만을 내줬는데 그 2실점은 1회를 잘 막은 뒤 2회에 마운드에 올랐다가 내준 것이었다. 이런 그를 미국 언론들은 ‘스타터’(starter-선발투수)라고 부르는 대신 ‘오프너’(opener- 경기를 시작한 투수)라는 새로운 단어로 표현했다.

오클랜드는 그런 ‘불펜 선발’ 시스템을 벼랑 끝 단판승부인 와일드카드 게임에서도 주저없이 활용했다. 오클랜드는 단판승부인 와일드카드 게임을 앞두고 25인 플레이오프 로스터에 투수 11명을 포함시켰는데 이중 진짜 선발투수는 베테랑 우완투수 에드윈 잭슨, 한 명 뿐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불펜투수였다. 하지만 오클랜드는 잭슨을 선발로 내세우는 대신(잰슨의 마지막 등판은 9월27일로 이날 충분히 등판 가능했다) 거의 매 이닝마다 새 투수를 투입하며 양키스 타선을 잠재운다는 복안으로 헨드릭스를 오프너로 내세워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9월의 1회와 10월의 1회는 전혀 달랐다. 헨드릭스는 이날 선두 앤드루 맥커천을 볼넷으로 내보낸 뒤 양키스의 간판 슬러거 애런 저지에게 투런홈런을 맞았고 이 한 방으로 오클랜드의 계획은 처음부터 꼬이고 말았다. 그럼에도 5회까지 추가 실점 없이 잘 버텼으나 6회에 마침내 가장 믿었던 불펜멤버들인 페르난도 로드니와 트레이넨이 실점하면서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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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든 우드러프./AFPBBNews=뉴스1



한편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우드러프를 선발로 내보낸 밀워키는 오클랜드처럼 선발이 바닥난 상황은 아니었음에도 ‘불펜 선발’ 시스템을 가동했다. 하지만 오클랜드와 다소 다른 점은 100% 불펜투수인 헨드릭스와 달리 우드러프가 원래 선발투수였다는 점이다. 그는 올해 트리플A에서 17경기에 선발로 등판했고 메이저리그에서도 올해 출장한 19경기 가운데 4경기에서 선발 등판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는 지난 9월 이후엔 한 번도 선발로 나선 적이 없고 불펜투수로만 나섰다. 그는 9월 한 달간 불펜투수로 7경기에 나서 12.1이닝을 던지며 삼진을 16개나 쓸어 담고 단 1점만을 내줘 평균자책점 0.73을 기록했다.

하지만 기본이 선발투수였던 우드러프는 이날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에서 3이닝을 책임질 수 있었다. 그냥 버틴 것이 아니라 3이닝동안 콜로라도 타선에 볼넷 1개만을 내주고 무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밀워키는 이날 우드러프부터 첫 4명의 불펜투수가 8회까지 콜로라도 타선을 무안타 무실점으로 막는 눈부신 피칭을 했으나 2-0으로 앞서던 9회초 5번째 투수인 제레미 제프리스가 3안타로 2실점하면서 승리를 눈앞에 두고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하지만 앞선 8이닝 결과와 결과적으로 연장 10회말에 결승점을 뽑아 승리한 것을 감안하면 이날 불펜 선발 시도는 성공적이었다고 봐야 한다.

밀워키의 크레이그 카운슬 감독은 이날 경기에 앞서 “기본적으로 우리는 전통적인 선발투수와 구원투수의 개념을 탈피하려 하고 있다. 이번 포스트시즌을 통해 그런 방향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구축한 투수진은 모두가 상당한 이닝을 책임질 수 있다”면서 “그 때문에 우리는 27개의 아웃을 잡는데 여러 가지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우리는 아웃카운트를 더 여러 투수가 나눠가지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여 이번 포스트시즌에 또 다시 ‘불펜 선발’을 시도할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ESPN의 통계 전문사이트인 ‘파이브서티에잇’에 따르면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불펜투수들은 전체 이닝의 40.1%에 달하는 총 1만7천415.1이닝을 던져 지난해 수립된 역대 최고기록 1만6천469.2이닝을 훌쩍 넘어섰고 최근 포스트시즌에서도 불펜의 중요성이 선발진에 비해 더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이면 특히 이번 포스트시즌은 이런 추세의 분기점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지금까지는 포스트시즌에서 27개 아웃을 잡는데 선발투수에게 최소한 15개 이상을 의존했다면 이제는 그 공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번 포스트시즌이 끝나면 선발투수와 불펜투수 가운데 누가 더 많은 이닝을 소화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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