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화 레전드가 어린 팬들에 한 만행(?)', 진실은 [인터뷰]

고척=김우종 기자 / 입력 : 2018.09.24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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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개월 전. 한 야구 팬이 유튜브 사이트에 댓글로 올린 글이다.

"때는 2000년. 한화가 1999년도 우승을 하고 야구 팬이었던 아버지는 저를 한화이글스 어린이 회원에 가입시켰습니다.


처음엔 야구 룰도 몰랐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야구장 다니기를 여러 차례. 선수들 이름을 조금씩 알게 될 때였습니다. 그 당시 제 나이 초등학교 5학년(올해 30세).

저희 집은 대전 중구 대흥동 현대아파트였습니다. 어느 날 제가 외출할 때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한 선수가 7층에서 타는 겁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래서 저는 바로 사인을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이 선수 왈 '펜도 없고 종이도 없는데 사인을 어떻게 해' 하면서 웃으시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저랑 같이 7층을 누르고 올라갔습니다. 그 선수 집에 가서 사인도 받고…. '어떻게 나를 알아봤어? 한화 팬이야?' 하시면서 냉장고에 있는 생크림 케이크도 주시고, 사람 얼굴만한 한화 이글스 로고 야구공에다가 사인도 한 후 저에게 주시며 머리도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저는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장면은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때 먹던 생크림 케이크의 청포도와 딸기, 아직도 식감이 생생히 기억이 나요. 저는 그 이후로 이 선수의 유니폼을 아직도 계속 사고 있습니다.

선수 시절의 유니폼, 코치 시절의 유니폼 등. 이 선수에게 그 이후로 아직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나중에 만나면 꼭 말하고 싶어요. 생크림 케이크 잘 먹었다고.

어린 저에게 이 사건은 평생 기억될 정도로 강렬했습니다. 본래 프로야구가 출범될 때 취지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자' 라고 알고 있습니다. 진짜 어린이들에게는 사인을 잘 해주면 좋겠습니다. 팬이 없으면 프로도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 21일. 이 글이 한 유명 커뮤니티에 '어느 한화 레전드가 어린 팬들에게 한 만행.jpg'라는 제목과 함께 올라왔다.

커뮤니티에 접속한 많은 야구 팬들은 '훈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같은 글 아래에는 이 선수에게 사인을 부탁하자 '목말도 태워주고 잘 생겼다는 말도 해줬다'며 기뻐하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그래서 글쓴이는 열정 넘치는 한화 팬이 되었다고.

이미 알고 있는 야구 팬들도 있겠지만, 이 선수는 바로 한화 이글스의 영구 결번 주인공, '살아있는 레전드' 정민철(46) MBC스포츠플러스 야구 해설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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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고척돔에서 해설을 준비하고 있는 정민철 위원 /사진=김우종 기자





진위가 궁금해, 23일 오후 해설위원으로 SK-넥센전이 열린 고척돔을 찾은 정민철 위원을 현장서 만났다.

글을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던 정 위원은 글을 다 읽은 뒤 "제가 시간이 오래 돼 정확히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이 아파트(대전 중구 대흥동 현대아파트)에 살았던 건 맞아요. 가물가물하지만 6층인가 7층에 살았던 걸로 기억해요"라고 입을 열었다.

약 18년 전의 일. 그 이후에도 수 많은 팬들을 만났을 정 위원이다. 그는 또렷하게 기억을 못하는 듯했다. 그렇지만 정 위원은 글쓴이가 지목한 그 아파트에 살았다는 게 맞다고 했다. 결국 정황상 이 글의 내용은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

정 위원은 "당시는 요새와 상황이 달라서…. 요즘은 SNS로 팬들과 소통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집으로 찾아오는 팬들이 많았거든요. 그러면 집에 있는 케이크나 아이스크림을 내어줄 때도 있었고, 목말도 태워주고 그랬던 것 같아요"라고 회상했다.

정 위원은 "그런데 그때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다 그렇게 했어요. 또 요새 후배들과는 팬들과 접촉할 수 있는 환경이 많이 달랐고요. 제가 선수로 뛰던 당시에는 SNS나 스마트폰이 없어서…. 저 때는 다 저렇게 했어요"라며 쑥스러워했다.

'자기뿐만 아니라 누구나 저 때는 다 그랬다'는 그에게서 여전히 겸손하고 사람 좋은, '살아있는 한국 야구 전설'의 향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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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해설 준비를 하고 있는 정민철 위원(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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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의 정민철 해설위원 모습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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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철 위원은 1992년 빙그레(한화 이글스 전신) 이글스 소속으로 데뷔,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2000년과 2001년에는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했다. KBO 리그 16시즌 통산 393경기 출장 161승 128패 10세이브 평균자책점 3.51을 기록했다. 161승은 KBO리그 통산 최다승 부문 2위 기록. 그의 등번호 23번은 한화 이글스의 두 번째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 우완 최다승 및 우완 최다 이닝(2천394⅔이닝), 우완 탈삼진 3위(1천661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그는 프로 통산 9번째 노히트 노런 기록(1997년 5월 23일 대전 vs OB전) 보유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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