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김의 MLB산책] 제이콥 데그롬, 첫 승률 5할미만 사이영상 수상자 될까?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8.09.18 10:46 / 조회 :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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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 데그롬. /AFPBBNews=뉴스1


메이저리그에서 매년 시즌 최고의 투수에게 수여되는 사이영상은 지난 1956년부터 시상되기 시작했다. 1966년까지 첫 11년간은 아메리칸리그(AL)와 내셔널리그(NL)의 구분 없이 매년 한 명의 수상자를 뽑았으나 1967년부터는 양대 리그별로 수상자를 한 명씩 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이영상을 받은 투수는 총 78명으로 이중 2회 이상 수상자는 19명이다. 로저 클레멘스가 7회 수상으로 이 부문 압도적인 1위이며 이어 랜디 존슨이 5회, 스티브 칼튼과 그렉 매덕스가 4회씩을 수상했다. 3회 수상자는 샌디 코팩스와 페드로 마르티네스, 짐 파머, 톰 시버, 클레이튼 커쇼, 맥스 슈어저 등 6명이 있고 봅 깁슨, 톰 글래빈, 브렛 세이버하겐, 게일로드 페리, 팀 린시컴, 데니 맥클레인, 로이 할러데이, 요한 산타나, 코리 클루버 등 9명이 2회씩을 수상했다.

이들 중 양대 리그에서 모두 사이영상을 받은 선수는 지난 2003년 토론토 블루제이스(AL)와 2010년 필라델피아 필리스(NL)에서 상을 받은 할러데이와 지난 2013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2016~17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수상한 슈어저 등 두 명인데 LA 다저스의 전설적 투수 코팩스는 양대 리그를 합쳐 단 한 명만 수상자를 뽑던 시절인 1963년과 64, 65년 총 3회이나 사이영상을 받아 수상의 질적 측면에서 이들을 압도한다. 양대 리그에서 한 명만 수상자를 뽑던 첫 11년 동안에 사이영상을 2회 이상 받은 선수는 코팩스 뿐이다.

이처럼 사이영상 역사를 되짚어본 것은 과연 승률이 5할이 안 되는 선수가 사이영상을 받은 사례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지금까지 사이영상을 받은 78명 가운데 승률이 5할 미만인 선수는 딱 한 명 있었다. 2003년 2승3패를 기록했던 LA 다저스의 클로저 에릭 간예다. 물론 간예는 선발투수가 아니라 클로저였기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다. 그해 간예는 무려 55세이브를 올리며 평균자책점 1.20을 기록했기에 2승3패라는 전적은 전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78명의 사이영상 수상자 가운데 수상 시즌에 본업이 선발투수가 아니었던 선수는 간예를 포함, 9명이었다.

그런데 올해 메이저리그에선 어쩌면 역사상 최초로 선발투수로 승률 5할이 되지 않는 선수가 사이영상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 주인공은 뉴욕 메츠의 우완 에이스 제이콥 데그롬이다. 데그롬은 올 시즌 두 번의 선발 등판 기회를 더 남겨놓고 있는 18일 현재까지 승패가 8승9패로 승률 5할에 못 미친다. 그럼에도 그는 가장 유력한 NL 사이영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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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승운 없는 시즌을 보내고 있는 제이콥 데그롬. /AFPBBNews=뉴스1


그 이유는 그의 다른 기록들에 있다. 그의 시즌 평균자책점 1.78은 NL은 물론 메이저리그 전체 1위다. NL 평균자책점 2위인 애런 놀라(필라델피아, 2.42)와 3위 맥스 슈어저(워싱턴, 2.53)와는 엄청난 차이가 벌어져 있다. AL 1위인 크리스 세일(보스턴, 1.92)과도 적지 않은 격차다. 그는 또 시즌 251개의 탈삼진으로 이 부문 NL 2위에 올라 있다. NL에서 그보다 삼진을 많이 뽑아낸 선수는 슈어저(277개) 밖에 없다. 그의 WAR(베이스볼 레퍼런스) 8.6은 놀라(9.4)에 이어 메이저리그 투수 중 전체 2위다. 데그롬은 또 현재 22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선발투수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이런 환상적인 성적을 보유한 데그롬의 올해 승패 전적이 고작 8승9패라는 사실은 올해 그에게 얼마나 승운이 따르지 않았는지, 또한 메츠의 타선이 얼마나 그를 도와주지 않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그의 마지막 등판인 17일(한국시간)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내용을 살펴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데그롬은 이날 올해 메이저리그 최강타선으로 평가되는 보스턴을 맞아 7이닝동안 삼진을 12개나 뽑아내며 5안타로 3실점하고 승패를 기록하지 않았다. 이로써 데그롬은 지난달 19일 필라델피아를 상대로 9이닝 1실점(비자책점) 완투승으로 시즌 8승째를 따낸 이후 5경기 연속 무승행진을 이어갔다. 이 5경기에서 데그롬의 성적은 총 34이닝동안 탈삼진 47개, 9실점(8자책점)으로 이 기간 중 평균자책점은 2.12, 경기 당 탈삼진 9.4개였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성적은 2패뿐이었다.

올 시즌 데그롬은 13경기에서 승패를 기록하지 않았는데 이 13경기의 평균자책점은 1.62였다. 올해 메이저리그 1위인 그 자신의 시즌 평균자책점보다도 더 잘 던진 13경기에서 단 1승도 보태지 못한 셈이다. 이 13경기에서 7승만 얻었더라도 그는 지금 사이영상을 예약했을 것이다.

또 그가 올해 패전을 기록한 9경기 중 6경기에서 그는 2자책점 이하를 내주고 패전의 멍에를 썼다. 패전을 기록한 9경기에서 그의 최다실점은 3점이었고 평균자책점은 2.67이었는데 이는 NL 5위에 해당된다. 타선이 조금만 받쳐줬어도 완전히 다른 성적표가 나왔을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데그롬이 등판한 경기에서 메츠의 팀 타율은 0.218에 불과했다. 그가 아닌 다른 투수가 나왔을 때도 메츠 타선은 그다지 신통치 못했지만 그래도 타율이 0.240으로 데그롬이 나왔을 때보다는 훨씬 잘 쳤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가 나서는 경기에서 메츠 타자들은 철저히 침묵을 지킨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실제로 사이영상을 받을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의 사이영상 수상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승패가 투수의 혼자서 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날 데그롬의 구위를 실제로 지켜본 보스턴의 알렉스 코라 감독은 “데그롬은 올해 우리가 상대한 투수 가운데 최고 중 하나였다. 그가 NL 사이영상을 받아야 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그는 시즌 내내 어메이징했다. 승패는 잊고 진짜 숫자를 봐라. 정말 놀랍지 않느냐”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유력한 AL 사이영상 후보 중 하나로 이날 데그롭의 마운드 상대로 등판했던 보스턴의 에이스 크리스 세일도 “지금 그는 리그 최고의 투수”라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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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그롬이 사이영상을 수상여부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AFPBBNews=뉴스1


사실 지금까지 사이영상 수상자 가운데 승률 5할 미만의 선수가 없었다는 것만으로 데그롬의 수상 가능성을 평가 절하할 수는 없다. 올해 데그롬처럼 뛰어난 구위를 보이고도 그 정도로 승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선수가 별로 없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사이영상 투표에서 승률에서 뛰어난 선수와 평균자책점과 탈삼진 등에서 압도적이었던 선수들 사이에 경쟁이 붙었을 때 승률에서 우세했던 선수가 사이영상을 받은 경우는 몇 번 있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1990년 27승6패와 평균자책점 2.95를 기록한 밥 웰치(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21승6패, 1.93과 리그 최고의 삼진/볼넷 비율을 기록한 로저 클레멘스를 제치고 사이영상을 받은 것이다. 당시 대부분 사람들은 클레멘스의 시즌이 웰치보다 뛰어났다고 인정하면서도 27승이라는 놀라운 승수 때문에 웰치에게 표를 던졌다.

하지만 데그롬에 희망을 주는 케이스도 있다. 지난 2010년 시애틀 매리너스의 펠릭스 에르난데스는 승률 5할을 간신히 넘긴 13승12패, 평균자책점 2.27, 탈삼진 232개의 성적으로 AL 사이영상을 받았다. 아직까지 선발투수로 사이영상을 받은 선수 중 승수와 승률 최하 기록이다. 올해 데그롬의 성적은 승패를 제외하면 에르난데스를 압도한다. 또 단순한 승패보다는 내용을 더 중시하는 최근의 경향도 데그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데그롬은 투수의 승패가 사이영상 판정에 미치는 영향을 어느 정도로 생각해야 할지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그는 “정말 (결정하기가) 힘든 이야기”라면서 “당연히 나는 내가 나서는 모든 경기에서 이기고 싶지만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기에 당연히 승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승리를 얻는 것보다 내가 던진 경기에서 팀이 이기는 것일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데그롬은 사이영상 역사상 최초로 승률 5할 미만 수상자가 될 수 있을까. 그는 아직 시즌 두 번의 등판기회를 더 남겨놓고 있다. 이 두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사이영상 트로피는 그의 품에 안길 가능성이 커 보이나 그렇지 못하다면 과연 어떤 투표결과가 나올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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