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이 밝힌 '버닝' "어렵다고? 예상했던 바"(인터뷰②)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영화 '버닝'의 이창동 감독 인터뷰

칸(프랑스)=김현록 기자 / 입력 : 2018.05.21 07:00 / 조회 : 3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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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 /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인터뷰 ①에서 계속>

-이전 이창동 영화와 많은 부분 달라 보인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음악만 해도 이전에는 음악을 최대한 절제했다. 영화에서 소리는 원래 있는 것이고 음악은 영화 밖에서 심은 것이다. 저는 가능하면 음악을 절제했는데, 이번에 음악 또한 장면에 필요한 음악이 아니라 그 음악 자체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데 그것이 영화에서 마치 우연히도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원했다. 촬영도 마찬가지다. 긴장감이 강화되고 해미에 대한 불안감과 무서움을 느끼는 경우에도 그것을 강화시키는 연출과 미장센을 알 수 있다. 저녁 노울 새벽 풍경… 심지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면서 그것 자체로 더 다른 텐션을 불러일으킨다든지. 각자의 요소가 독자적으로 자유롭게 있으면서 영화적인 것을 만들어가도록, 그것을 최대한 해보고 싶었다.

-그런 방식이 '버닝'이란 영화의 주제에 걸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그렇다. 걸맞다고 생각했다. 미스터리가 여러 겹을 갖고 있는데, 근본적으로는 서사 이야기 영화 이런 것에 대한 것의 미스터리까지 이어지는 영화이고 싶었다.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세상이 이렇다면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영화는 이 세상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하는 것인지. 최대한 그 요소들이 살아있게 하고 싶었다.

-해미가 노을을 배경으로 옷을 벗은 채 춤을 추는 장면은 특히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물론 준비는 많이 했다. 전종서씨가 판토마임 연습도 많이 했고 작가가 참여해서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잘 안무된 판토마임이어서는 안됐다. 그런데 그걸 아름답게 찍어야 한다는 야심찬 목표로 찍은 것은 아니다. 그 장면이 영화 중간에서 굉장히 본질적인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버닝'은 두 젊은 남자 사이의 이야기고 그 사이에 여자가 있다. 가난하고 힘들게 살고 카드 빚도 있는 것 같지만, 이 여자는 남들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몰라도 혼자서 삶의 의미를 구하고 있다. 비록 대마에 취하긴 했지만 혼자서 삶의 의미를 구하는 '그레이트 헝거'의 춤을 추는 것이다. 그것은 중요하다. 그녀의 춤 자체는 빼버릴 수 없는 영화의 핵심이다. 누군가는 삶의 의미를 구하고 있다는 것.

그러려면 좀 더 본연의 모습에 가까이 가야 한다. 종종 남자는 여자의 몸을 관음적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옷을 벗는다는 것은 관음적인 것이 아니라 가리고 있던 것을 벗어던지고 가까이 간 것이다. 우연히 태극기도 보이는데, 국기나 깃발이라는 건 어떤 질서의 상징이 아닌가. 그것과 상관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에서 초뤌한 춤을 추는 것이다. 저녁 노을은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밤과 낮의 경계, 현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 있는 것의 경계이고 눈에 보이는 것과 아닌 것, 진실과 거짓의 경계일 수 있다. 그 장면 자체는 그것이 느껴지는 것이 중요했다.

계산되지 않은 자유로움이 우연히 포착되길 원했다. 계산되게 보이지 않길 원했고 그렇게 찍혔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 테이크로 갈 생각이 없었다. 하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게 담긴 게 좋아서 그 테이크를 썼다. 그녀가 구하는 자유로움이 원초적으로 담기길 원했는데 함께 나오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도 불길하게 느껴진다. 제목이 '처형대로 가는 엘리베이터'다.

-여성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을 은유했다는 느낌도 든다. 암소가 팔려간다든지.

▶암소는 여성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소는 원래 팔려가기는 한다. 그런 시선에 대한 문제 의식이 당연히 있다. 종수는 어쩔 수 없이 한국남자다. 남성적인 시각이 있다. 그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어제 이스라엘 여배우가 이야기하더라. 제일 공감가는 대사가 해미가 춤추고 나서 종수가 '너는 남자들 앞에서 왜 이렇게 옷을 쉽게 벗냐. 창녀가 그런다' 라고 하는 것이라며 '이스라엘 남자랑 똑같네요'라고 하더라. 종수는 그러면서 또 해미에게 전화를 한다.

여자로서 사는 것이 힘들다. 남녀 어느 쪽도 마찬가지다. 특히 여자 쪽이 심할 텐데 성, 젠더에 관련돼서 해석하거나 바라보는 굉장히 두터운 고정관념이 있다.

-마침 해미가 처음 등장할 때 씨스타의 '터치 마이 바디'가 나온다.

▶그 곡 자체는 제가 골랐다. 그냥 우리 살고 있는 거리의 한 모습일 것이고, 사실 '터치 마이 바디'라는 제목도 그렇지만 일종의 성적 상품화가 되어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거기에 춤추고 있지 않은가.

-왜 종수의 집을 대남방송이 들리는 곳으로 골랐나.

▶그것이 한국의 현실이니까. 요즘은 남북문제가 현실 속에 보이지만 다 잊고 산다. 종수는 어렸을 때부터 대남방송을 들으며 컸을 텐데 얼마나 싫었겠나. 그것이 탈출하고 싶은 자신의 현실이었을 것이다. 서래마을이든 이런 데 살면 그걸 안 듣고 살지만 사실은 항상 그 방송이 들려오고 있다. 한국의 현실이 그 위에 있다. 그것이 일상 속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못 느끼고 산다.

-혹시 이 세대 청춘과 경험이 달라 고생한 적은 없나. 예를 들면 클럽 장면이라든지.

▶클럽은 좀 그랬다. 가본 적이 없어가지고.(웃음) 우리 촬영감독이 예전에 클럽에서 살았는데 요새는 또 바뀌어서. 클럽 장면이 수없이 나오지만 그렇게 찍고 싶지 않았다. 클럽의 현실감, 클럽에서 느낄 수 있는 뼛속까지 울리는 베이스를 전달하고 싶었다. 저는 잘 나왔던 것 같다.

-8년 만에 영화를 만들었다. 그 다음에는?

▶이제는 좀 더 부지런하게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약간 힘이 빠지기도 한다. 영화 다 만들고 나서 공개하고 개봉하고 이런 게 엄청 스트레스다. 모든 감독이 다 그렇겠지만 나는 나이가 좀 더 들어서 그런지 좀 스트레스가 있다. 꼭 이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영화를 해야 하나. 영화 만드는 것 자체는 그렇게 힘들지 않다. 즐겁다.

-일반 관객들의 평가를 찾아보면 좋은 작품 같은데 이해가 안 된다고도 한다. 조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다. 어쨌든 개봉한지 불과 며칠 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칸에 와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왜 이렇게 좋아하지' 이런 느낌이다. 영화를 순수하게 봐서 내가 하려고 했던 것들이 감각적으로 느껴지나 싶다. 한국 관객들은 아무래도 영화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 힘들게 하는 외적 요소들이 많으니까 힘들 것이다. 관객이 영화 자체의 감각을 따라가기를 바란다. 그러려고 영화를 만들었다.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영화가 보여주는 감각과 정서를 따라가기를 원했다. 다양한 반응이 나오겠지만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뭔가를 기대하고 있으면 그 기대는 항상 배반될 것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화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도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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