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숲속의 부부' 전규환 감독 "오해 안타까워"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8.02.07 09:51 / 조회 : 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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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환 감독 / 사진=임성균 기자


촬영을 마친 후 한참이 흘러서야 관객과 만나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2018년이 시작해서야 개봉일을 잡은 그런 작품들이 상당하다. 고 김성민의 유작이자 전규환 감독의 신작 영화 '숲속의 부부' 또한 그렇다.


'모차르트 타운', '애니멀 타운', '댄스타운'으로 이어지는 '타운' 3부작과 '무게', '성난 화가'에 이르기까지, 금기를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세계로 해외 영화계에서 더 주목받은 전규환 감독의 신작 '숲속의 부부'는 촬영을 시작한 지 6년, 완성된 지 2년이 훌쩍 지나서야 개봉일을 잡았다. 오는 2월 14일. 설 연휴와 함께 '블랙팬서' '골든 슬럼버' '흥부' 등 대작들이 쏟아지는 한복판이다. 마침 '블랙팬서' 시사회가 겹친 늦은 오후 언론에 영화를 공개하는 자리를 가졌던 터. 전규환 감독은 엄청난 물량공세, 뜨거운 관심의 차이를 절감하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개봉지원을 받아 뒤늦게 영화를 선보이면서 포스터와 팸플릿을 딱 20만원 어치 만들어 배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주인공 삼아 불편하고도 낯선 세계로 인도해 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삶의 끝자락에 내몰린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학비를 벌기 위해 성매매에 내몰린 여학생의 이야기가 긴 프롤로그를 이루고, 세상을 향해 쌓아 둔 절망과 분노를 끔찍한 방법으로 터뜨리게 된 남자, 그의 아내의 이야기가 본편을 채웠다. 영화의 누구 하나 카메라를 향해 제대로 된 웃음을 보여주지 않는 스산한 이야기는 끔찍하지만 환상적인 느낌을 들게 한다. 2016년 6월 스스로 세상을 등진 배우 고 김성민이 본편의 남자주인공으로 펼친 열연 또한 영화에 또 다른 의미를 더하는 느낌이다.

전규환 감독은 "남들과 똑같은 영화를 만든다면 내가 영화를 만들 이유가 없다"며 작품세계에 대한 고집을 드러냈지만, 새로운 이야기와 문법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에게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온 '숲속의 부부'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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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환 감독 / 사진=임성균 기자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개봉을 확정했다.

▶이 이야기를 눈물 없이 들을 수가 없다. 예전 '애니멀 타운'이 세계에서 20개 넘는 영화제에 갔는데 국내엔 전혀 알려지질 않았다. 당시 '마더'와 세바스찬국제영화제에 초청됐을 때는 포스터 만들 돈이 없어서 페덱스 가서 5장을 인쇄하고 팸플릿은 A4 용지에 프린트를 해 갔다. 영화제에서 황당해 하더라. 이번에는 포스터며 팸플릿을 20만원 어치 만들었다.

-투자와 지원 없이 만들기 힘든 작품들이라고 생각한다. 사재를 털어 만드는 것도 한계가 있을 텐데.

▶장비도 팔고 차도 팔고. 작품을 할 때마다 집이 작아지며 서울에서 멀어지고 지방으로 가고 있다. 투자가 힘들고 지원이 부족하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영화 영상펀드나 투자지원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모태펀드에 수천억 돈이 있는데 대부분 대기업이 투자배급하는 상업영화 지원에 쓰이고 다수의 독립영화, 작은영화에게는 혜택이 거의 돌아가지 않는다. 저는 웬만하면 지원을 잘 안 받으려고 한다. 그 동안 많이 받았기에 후배들에게 기회가 갔으면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있다면.

▶저 좋자고 하는 사치는 없다. 해외 영화제 가서 칭찬받는 걸 즐길 수도 있겠으나 제 경우는 적어도 멜로든 액션이든 드라마든 색다른 텍스트의 영화가 충무로에 있다는 걸 세계 영화계에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이 크다. 후배 감독들에게 귀감이 되지는 않더라도 독특한 문법과 색다른 시선을 보여주고 싶다. 남들이 안 해보는 문법으로 영화를 해보고 싶다. 그게 전부다. 배우들의 연기도 마찬가지고 드라마의 플롯 시퀀스 같은 것도 새로운 문법으로 보여주고 싶다. 관습화된 문법의 영화는 많이 봐 오셨고 학습도 많이 됐으니까 색다른 영화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양하게 음식을 먹듯이 다양하게 보셨으면 좋겠다. 독립영화도 관습화된 문법 속에서 감정을 끌어내고 건드리는 것 같아 아쉽다. 연출자라면 창작을 하는 사람인데 그런 고민이 있었으면 한다.

-많은 관객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은?

▶오히려 간단하다 할 수 있다. 관객의 90% 이상이 관습화된 문법에 젖어있는 분들이니까 그대로 찍으면 된다. 좋아하는 웃음의 포인트, 울음의 포인트를 적재적소에 넣는 것이다. 물론 그게 쉽다면 자만일 것이다. 제게는 어쨌든 그런 것들이 크게 의미가 없다. '애니멀 타운' 이후 많은 메이저 투자배급사에서 제안이 있었지만 거절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게 아니었고, 내 시나리오로 연출을 하고 싶었다. 대중영화로 사람들을 움직이자 한다면 그들과 가까운 영화를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가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지금껏 내 영화들은 국내 관객보다 해외에서 훨씬 많은 관객이 들었다. 영화제나 시사회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는다. 하지만 장사하는 이들의 진열대에 가기가 힘들다. 그걸 위해 포장하기가 힘들다.

-이번 '숲속의 부부'는 삶의 끝에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1부, 2부라지만 본편에 긴 프롤로그가 더해진 느낌이다.

▶그렇다. 프롤로그가 장편에 붙어 있는 느낌이다. 늘 절망의 끝에 붙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한다. 내가 절망 끝에 있는데 당연하지 않겠나. 나는 부자들의 이야기를 알 수도 없다. 그런데 영화든 드라마든 왜 이렇게 실장님이 많이 나오는지. 깡패도 어쩌면 그리 많은지. 많은 TV드라마와 영화가 준 정보로 만들어준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감독과 배우의 이름이 틀릴 뿐이지 10년 20년 전 만든 멜로영화나 조폭영화나 똑같아 보일 때가 있다.

-특히 본편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를 연상시키는 남자가 주인공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맞다. 남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어느 날 매체를 보는데 자살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그 사람들 나이가 저와 엇비슷한 동년배였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세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목숨을 던졌을까. 그러면서 극중 내레이션이 되는 시를 썼다. 대지에 쓰러져서야 세상에서 빠져나와 해방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분들의 고통에 비할 바 아니지만 동년배로서 저 역시 세상의 모습이 불합리하다 느낄 때가 많다.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그 분노가 어떤 모습으로 튀어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이 이야기를 만들었다.

프롤로그에 있는, 학비를 위해 성매매를 하게 된 학생의 이야기조차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봤다. 그의 아버지도 노동하다 집에 누워있고, 어머니는 기사식당에서 세차를 하고, 딸은 학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성매매를 한다. 그가 이 노동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봤다. 아내가 주요하게 나오는데 그 분들의 가족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싶기도 했다. 그 밑바닥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다만 노동자 이야기가 아니라 부부의 이야기, 한 가장의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노동자라는 표현 자체가 관습화된 주제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아니라 그 사람의 절망을 담고 싶었다.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형태를 띠고 있고 후에 그것이 들어나기는 하지만 궁금한 점도 생긴다. 아내는 남편에게 '왜 산으로 가느냐'고 묻는데 그에 답한다면.

▶주인공 성민은 아내를 데리고 산으로 간다. 그 공간은 누구도 침범할 수 있는 그의 공간으로 봤다. 거기에도 여러 사람이 온다. 고민이 있는 고등학생이, 사채업자에 끌려 온 실패한 사업자가, 또 조폭이 온다. 망가진 남자의 눈에는 그 모두가 자신의 영토에 들어온, 자신의 것을 파괴시킬 수 있는 것들로 보였을 것이다.

원래는 산이 아니라 폐공장이라는 설정이었다. 장소가 없어지면서 시나리오 자체가 없어졌다. 그때그때 상의를 하면서 만들었다. 또한 새로운 실험이었다.

-산으로 온 사람들 모두가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뜻밖에 어린 학생들조차.

▶우리 영화 드라마 매체들이 잘못된 학습을 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쁜 사람들을 꼭 응징한다. 사람들은 똑같은 모습으로 화 내고 울음을 쏟아내고 분노를 표현한다. 그게 다 망쳐놨다고 생각한다. 악마같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선량한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다. 피해자는 조폭일 수도 있고 담배나 피는 학생일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알 수 없다. 그 사람이 범죄자인지, 사이코패스인지 알 수 없다.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똑같이 옷을 입고 있다. 다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모를 뿐이지. 그걸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나아가 세상엔 당신들이 봐 왔던 영화만 있지 않다고, 또 세상이 이렇기도 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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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숲속의 부부' 포스터


-고 김성민의 유작임이 알려지며 '숲속의 부부'란 제목과 함께 과감한 노출신을 담은 포스터가 뜻밖의 반응을 부르기도 했다.

▶내 영화를 본 분들이라면 선정적인 영화가 아니라는 걸 다 알 텐데. 엄청나게 악플이 달렸다. 고인에 대한 능욕이라고도 하고. 대중의 그런 정서도 저를 힘들게 했다. 만약 그런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예고편도 자극적으로 만들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부부가 어떻게 다쳐가고 아파하는지, 모든 것을 잃고서 환상에 빠져버렸을 때 어떤 모습이 튀어나오는지를 담으려 했다.

(포스터가 오해를 샀다 하기 전에) 40대, 50대 관객의 정서에 관심이 있었나 되묻고 싶다. 그런 부부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었는지를. 시사회 때 극장에 우리 팜플렛이 곳곳에 걸렸는데 중년, 노년의 부부들 관객들이 지나치지 않고 팸플릿을 뒷면까지 들여다보고 언제 개봉하는지를 묻기도 하더라.

-노출이 있지만 선정적인 야한 작품이 아니라는 데 물론 동의한다. 직접 영화를 본다면 전혀 다른 감흥을 느낄 것 같다.

▶영화에 노출이 있으니까 야하다, 그러니까 포르노다 하는데 전혀 아니다. 노출이 있을 뿐이다. 나는 상황으로 정서를 끌어올리는 걸 좋아할 뿐 잔인한 걸 싫어한다. 잔인하고 잔혹하고 폭력적으로 보이는 상황을 만들지만 그걸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보여주는 걸 싫어한다. 그게 연출자가 하는 몫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시고 평해주셨으면 좋겠다. 보기 전에 그러지 마시고.

-고 김성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해외에는 '종말'(The End)이라는 제목으로 선보였지만 한국에서는 '숲 속의 부부'라는 어쩌면 동화적으로 보이는 느낌의 제목이 생겼다. 고인을 의식한 것이라 했는데.

▶처음부터 제목이 '종말'이었는데 고 김성민이 그렇게 간 뒤에 '종말'이라는 뜻을 영화에 올려놓는 게 소름끼칠 정도로 싫어졌다. '숲속의 부부'라는 제목은 소프트한 느낌이다. 부부가 숲 속에 들어와서 벌어지는 판타지 같은 스릴러의 모습을 그 타이틀에 담으려 했다. 극중에서도 절망에 고통스러워하는 인물을 연기했는데 괴로움 속에 세상을 떠난 그가 마치 영화의 모습대로 간 것처럼 오버랩 돼 편집조차 잘 할 수가 없었다. 그 얼굴만 보면 감정이 올라왔다.

-오래전 촬영을 마친 영화가 이제야 개봉하는 데도 영향이 있었다.

▶영화 촬영은 꽤 오래 전 끝났다. 시작은 2012년부터였을 것이다. 촬영을 하고2015년 보충촬영을 하려던 상황에서도 여러 우여곡절이 생겼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상황이 있었다. 많이들 언제 개봉하느냐 물어보는데 사실 제가 제일 급했다. 그 전에 잘 편집해서 누가 되지 않게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2016년) 편집을 다 해서 음악 작업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성민씨 소식을 들었다. 멍했다. 큰 영화제 이곳저곳에서 콜이 왔지만 영화를 노출할 수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부천영화제에서 영화를 처음 선보였다. 마지막으로 다시 편집을 하는데 너무나 힘들었다. 한 장면을 편집하고 멈추고 나갔다 들어와 다시 편집하길 수십 번 했다.

-고 김성민을 돌아본다면. 어떤 배우였다고 생각하나.

▶김성민은 굉장히 끼가 넘치는 배우였다. 다른 드라마 영화 속에서 보여준 모습이 너무 아까울 정도로 연기의 기운이 넘쳐나는 배우였다. 최고의 피지컬에 발음도 좋고 연기의 몰입도도 최고였다. 우리 현장에서는 너무 유쾌했고 내내 너무 행복해 했다. 노출 있는 신을 찍을 때도 벗고 다니면서 장난을 쳐서 스태프가 쫓아가 덮어주고 했을 정도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등장하는 고 김성민의 메이킹 영상 속 밝은 모습이 먹먹하더라. 그것이 만든 이들에게도 어떤 위로가 됐을 것 같다.

▶맞다. 그랬다. 시나리오가 없었기에 그만큼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눴다. 해가 떨어지면 촬영이 끝이기에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셨다. 막걸리를 그렇게 좋아했다. 이 작품처럼 나를 자유롭게 해 주는 곳이 없다고, 그러면서 행복하게 찍었다. 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한편 앞에서는 그랬구나, 많이 외로웠던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영화 속 우는 장면이 있는데 촬영 당시 컷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캐릭터에 들어온 게 아니라 자기 감정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마지막 아내 옆에서 눈물을 흘릴 때도 두세 번 테이크를 갔는데 오케이 사인 떨어질 때는 카메라를 잡고서 내가 같이 눈물을 흘렸을 정도였다. 당시 갑자기 멀쩡했던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내렸는데 그 마음을 식혀주는 건지 묘했다. 묘한 영화 많이 찍었지만 감정이 제일 묘했다.

-왕성하게 활동하다 한동한 뜸했다. 다음 작품 계획은 있는지.

▶그 동안 작품을 많이 했다. 사실 2015년 먼저 개봉한 '성난 화가'는 일부러 색다른 B급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대출도 많이 받고 돈을 들여 찍고 직접 배급도 했다. 케이블 TV 광고까지 했으니까. 그런데 걸어준 곳이 없었다. 두세곳 정도? 그 때 상처를 받고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다. 내 모든 걸 다 버려가면서 스스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그러고 3년 동안 한 작품도 쓰지 못했다. 시간이 지났다. 이제야 어렵게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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