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인의 쏙쏙골프] ‘메이저 퀸’ 김인경에게서 배울 점

김수인 골프칼럼니스트 / 입력 : 2017.08.1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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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경(29)이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한지 1주일이 넘었지만, 그가 만든 멋진 드라마는 골프장에서 여전히 화제를 몰고 다닙니다.

“기나긴 30cm의 악몽을 드디어 5년만에 끝냈다” “여자 골퍼로서 환갑의 나이에 어떻게 메이저대회서 여유있게 우승을 할수 있나?” “겨우 160cm를 넘는 작은 체구로 어떻게 장타자들을 누를수 있었지?” 등등.


김인경이 6타차로 앞선 상태에서 최종 라운드를 맞이했으므로 골프팬들은 초반에 2위와 더 큰 스코어 차이를 벌리면 중계를 안볼 작정이었죠. 김인경이 일요일인 6일 오후 10시 좀 넘게 1번 홀 티샷을 했으므로 월요일 출근에 대비해 자정쯤 잠자리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9번홀에서 스리 퍼트로 보기를 한 이후 더 이상 타수를 줄이지 못하는 사이 유와트 섀도프(잉글랜드)가 8언더파를 몰아치며 2타차로 김인경을 추격하자 다들 시간가는 걸 그만 잊어먹었습니다.

김인경이 우승을 확정지은 새벽 세시까지 조마조마하게 경기를 지켜본 팬들이 의외로 많았던것 같습니다.


다음날 언론들은 질기고도 질긴 ‘30cm의 악몽’을 끊어냈다는 데 기사의 초점을 맞췄죠. 김인경이 2012년 나비스코 챔피언십(현재 ANA 인스퍼레이션) 최종 라운드 18번홀에서 톡~쳐도 넣을수 있는 30cm 퍼팅을 놓쳐 메이저 첫 우승을 날린 걸 되새기면서 말입니다.

언론에서는 이 순간을 골프사상 가장 비극적인 장면중 하나라고 꼽기도 하지만, 사실 너무 과장되게 보도해 후유증에 시달린 김인경이 긴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제가 경험해봐서 아는데, ‘30cm의 악몽’은 별거 아니었습니다.

김인경의 비극후 몇 개월 지나 저 역시 30cm 파 퍼팅을 남겼었는데 퍼팅을 하려는 순간, 별안간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블랙 아웃’ 현상이 일어나 김인경처럼 퍼트 미스를 하고 말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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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는 김인경. /AFPBBNews=뉴스1


김인경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올수 있는 신경계 이상이 갑자기 일어난 것인데 마치 김인경이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는 식으로 보도를 하는 바람에 김인경은 이후 엄청난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됩니다. 2014년엔 인도네시아의 한 단식원에서 13일간 금식하면서 명상의 시간을 갖기도 했고요.

물론 이 덕분에 마음을 다스리는 도(道)를 터득해 여성 골퍼로서 내리막을 타기 쉬운 만 29세에 그 어려운 브리티시 오픈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습니다만.

김인경에게서 배울점이 많은데 첫째, 그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아쉽게 우승을 놓쳐도 담담하게 다음 대회를 노립니다.

두번째, 중학교 시절부터 써오고 있는 골프 다이어리입니다. 유명 골퍼들의 장단점을 꼼꼼히 기록해 기량 발전의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참 좋은 습관입니다.

저는 상세히 적진 않지만, 10년전부터 매번 라운드후 그날의 특기 사항과, 잘잘못을 컴퓨터에 기록해 다음 라운드를 준비해오고 있습니다.

세번째는 침착한 전략이죠. 2위에 6타자로 앞서 시작한 브리티시오픈 최종라운드에서 보신 바와 같이, 절대 무리수를 두지 않고 또 흔들리지 않는 침착성으로 그 힘든 우승을 거뒀습니다. 단독 1위로 크게 앞서다가도 방심과 교만으로 2위에게 추격을 허용하는 사례를 골프뿐 아니라 야구, 축구, 배구 등 다른 종목에서도 흔히 볼수 있지 않습니까.

네번째는 기부 천사라는 점입니다. 김인경은 다치면서까지 발달장애 아이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고 자선기금도 자주 낸답니다. 2013년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하자 상금 전액을 오초아 재단에 기부하기까지 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브리티시오픈 우승전까지 김인경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저하고 이름 두자가 같지만^^). 플레이 스타일이 시원스럽지 않고 인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열심히 그의 경기를 지켜보고 응원할 생각입니다.

그가 좋아하는 비틀즈 노래의 가사, ‘길고 굽은 길을 걸어’처럼 시련을 딛고 마침내 높이 날아 올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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