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현 감독 "'조작된 도시' 지창욱-오정세 반대 많았다"(인터뷰,스포有)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7.02.12 11:14 / 조회 : 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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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현 감독/사진=김휘선 기자



'웰컴 투 동막골' 이후 12년. '조작된 도시'로 돌아오기까지 강산이 바뀌었다. 박광현 감독은 차기작으로 오래 준비했던 '권법'이 늦어지자 '조작된 도시'로 방향을 틀었다. 9일 개봉한 '조작된 도시'는 게임세계에서는 탁월한 고수지만 현실에서는 백수인 남자가 살인 누명을 쓴 채 감옥에 갇히자 탈출한 뒤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

호불호는 갈리고 있지만, 첫 주 100만명 가까운 관객을 만나고 있다. '조작된 도시'는 낯익은 이야기를 낯설게 풀었다. 그런 방식에 칭찬과 비난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다. 박광현 감독에게 '조작된 도시'에 대해 물었다. 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차기작 '권법'을 오래 준비하다가 '조작된 도시'로 방향을 틀었는데.

▶'조각된 남자'라는 원작 시나리오가 있었다. 그 연출을 CJ E&M에서 제안했다. 처음에 조인성에게 제안을 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촉발된 계기가 됐다.


-제안을 받았다고 해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으면 안했을텐데. 어떤 점이 끌렸나.

▶안 좋은데 내가 속아서 했다면 불화가 생겼을 것이다. 처음에는 고사했었다. 그러다가 자꾸 생각이 나더라. 조작이라는 데서 끌린 게 아니라 힘이 없으면 조작된다는 데 끌렸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많지 않나. 그래서 누가 당해야 이야기에 매력이 있을까 생각했다. 전혀 결이 다르지만 '글래디에이터'가 떠올랐다. 장군이 억울하게 노예가 된 뒤 자신의 과거 역량으로 최강의 검투사가 되면서 복수를 하는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 사람이 영웅이었으면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른에 경제권을 빼앗겨서 힘을 잃었지 않나. 그런데 게임 속에서 영웅들은 또 다르다고 하더라. 게임은 내가 잘 모르던 세계지만, 게임의 영웅 한 마디에, 그리고 그의 팀에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서 착안했다. 게임과 현실의 캐릭터가 너무 다르고, 어른들은 외면하지만 게임 속 동료들은 돕는다는 점으로 이야기를 구성해나갔다.

-순제작비가 85억원, 총제작비가 100억원이다. 그런 영화 주인공을 당시로는 무명에 가까운 지창욱에게 맡겼는데.

▶사실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다. 처음에는 투자배급사에서 농담으로 받아들이더라. 영화쪽에선 검증이 안됐으니깐. '조작된 도시'를 준비하면서 이 영화는 기존의 이미지가 강한 배우면 안되겠구나란 생각을 했다. 이 이야기는 약간 떠 있다. 그런데 사실성을 맞추기 위해 공간과 인물을 리얼하게 가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다. 이야기가 약간 떠 있으니 인물과 공간, 그 자체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지창욱을 발견했다. 누구를 캐스팅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지창욱을 추천하더라. 팬들이 만든 '힐러' 영상 클립을 봤는데 눈빛이 딱 우리 영화더라 싶더라.

무모하다, 안된다는 말들이 많았다. 그런데 영화에 가장 잘 맞으면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큰 영화에 톱배우를 쓰면 투자는 받기 쉽겠지만 결국 캐릭터가 안 맞는 경우를 종종 본다. 투자 들어가기는 힘들어도 영화에 딱 맞는 배우가 좋은 배우라 믿는다. '웰컴 투 동막골' 때도 그랬다. 다행히 CJ E&M에 설명을 했는데 대표가 나를 믿어주더라.

-그럼에도 그 부담이 끝까지 있었을텐데.

▶최종 편집본이 나오기 전까지 여러 곳에서 배우에 대한 의심을 끊임없이 했다. 그럴 때마다 나 스스로 그 때 내 생각이 맞다고 믿었다. 결과적으로 그 첫 감정, 첫 판단이 옳았다. 오랜만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의무라고도 생각했다. 어차피 박광현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는데,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주자고 생각했다. '인디애나 존스' 같은 영화를 볼 때 얻는 쾌감.

-영웅서사다. 풀어내는 방식도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 같고.

▶그간 관객으로 영화를 보면 한국영화 뿐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들에도 열광했다. 그런데 영화 만들 때를 가만히 보면 꼭 한국영화적으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캐릭터는 관심 없다. 영웅서사, 특히 캐릭터를 새로 꾸몄다. 이야기가 떠 있으니 캐릭터를 관객이 따라가고 동화되도록 만들었다. 나를 많이 대입했다. 예컨대 '조작된 도시'에서 김상호 캐릭터는 내 안의 악마성을 분리해서 만들었다. 어리숙하고 여린 감성은 지창욱 캐릭터에 대입하고. 그러면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장점이지만 단점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더라. 막상 배우들에게 줬더니 반응이 없었다. 지금 출연한 배우들만 재밌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만들 생각이냐고 물었다. 김상호에게 "넌 사자야"라고 했다. 나빠서 사자가 아니고 생긴대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자유를 얻은 것 같더라. 현장에서도 정말 자기 위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런 식으로 인물들이 하나하나 만들어져갔다.

-액션이 아날로그 방식이다. 길고 펼쳐서 보여준다. 요즘 영화들은 액션 장면을 CG로 처리해서 짧게 끊어서 보여주는 방식을 쓰는데.

▶CG느낌이 가급적 안 났으면 했다. CG로 구현하는 게 제작비는 경제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살과 살이 부딪혀서 가는 게 힘이 난다. 80~90년대 영화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아날로그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다.

-준비하던 '권법'도 그렇고 '조작된 도시'도 그렇고. 가상의 공간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데. '조작된 도시'는 감옥도 그렇고, 현실인 것 같지만 다른 세계인데.

▶감독이 어떤 표현을 하기 위해선 자기를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현실이 아닌 자신만의 세계를 드러내는 것 같다. '조작된 도시' 속 공간들은 상상의 공간이지만 상징의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감옥 같은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도 안 가봤지만 다 가본 것처럼 친숙하다. 여러 영상물로 친숙해서 그런다. 그리하여 어차피 상상의 공간이라면 공포를 시각화하자고 생각했다. 군대에 끌려갈 때 처음 느끼는 낯설고 무서운 공포감이랄까. 그냥 교도소가 아니라 산을 파서 완전히 고립시키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체험의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새로운 게임을 하나 한다는 느낌을 받도록. 새로운 모험으로 들어가는 이야기. 불행한 여행에서 환희의 결과가 나는 이야기.

-'조작된 도시'류의 소재는 많다. 한 곳에 오래 갇혀서 무술을 익힌 다음 나와서 복수하는 이야기. 그래서 낯익다. 그런데 이야기를 푸는 방식이 낯설어서 새롭게 느껴지는데. 한편으로는 종래의 익숙한 영화들 속에선 감옥에서 지창욱이 무술고수가 되기 위해 수련하는 장면들이 더 많았을 법 한데. 그런 장면들이 별로 없다보니 지창욱의 고수 변신이 느닷없는데.

▶이미 '올드보이'나 '신의 한수'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있었다. 아니면 '아저씨'처럼 특수요원이었다거나. 그런 설정들을 피할 수 없었다. 원래 처음 받은 시나리오에는 공무원을 준비하던 사람이 감옥에서 단련해서 나온다는 설정이었다. 너무 뻔했다.

영웅은 원래 그렇다. '스타워즈'에서 루크를 봐도 배우기는 하지만 원래 그런 재능을 갖고 있지 않나. 지창욱이 전직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라는 설정을 준 것으로 일단 싸울 수 있는 아이다라는 걸 알려줬다. 중요한 건 각성이지 단련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스케이트를 탄다고 김연아가 되는 건 아니잖나.

그래서 엄마의 죽음을 지창욱이 각성하는 계기로 활용했다. 왜 동물원에서 아이가 우리에 빠질 때 엄마가 초인적인 힘으로 구해낸다는 이야기가 있잖나. 그 이야기가 진짜냐 아니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 마음이 중요한 거지. 그걸 보여주는 게 영화의 마법이라고 생각한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 팝콘이 터지는 장면도 그런 경우다.

모험이 시작하기 전에 서론이 너무 긴 것 같아 편집한 것도 있지만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각성,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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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현 감독과 지창욱/사진제공=조작된 도시 제공 스틸


-지창욱이 어둠 속에서 싸우는 장면은 '데어데블' 같기도 한데. 그렇게 싸울 수 있다는 게 감옥에서 수련으로 어느 정도 설명은 됐어야 하지 않나.

▶'데어데블'은 못봤다. 새로운 차원으로 바뀐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각성해서 싸울 수 있다는 걸. 그래서 감옥에서 죽은 엄마를 보고 각성할 때 음악과 어둠에서 싸울 때 음악이 같다. 원래 '007'에 참여했던 할리우드 스태프가 참여하기로 했는데 너무 비쌌다. 최대한 싸게 해준다고 했는데 '조작된 도시' 전체 CG비용의 3분의 1이더라. 어둠 속에서 소리로 싸운다는 걸 시각화하는 작업이었다. 먹범짐 같은 시각화를 하고 싶었다. 텍스터가 잘 해줬다.

-오정세가 악역으로 등장하는데. 훌륭한 연기를 했지만 한편으론 악이 더 강했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한데. 그래야 복수의 쾌감이 커지지 않나 싶고.

▶처음 '조각된 남자'로 출발할 때 재미는 있지만 버려야 할 것들 중 하나가 복수의 이야기였다. 악이 사악하다는 것들. 복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뒷맛이 좋지 않다. 의기소침한 요즘 젊은이들에게 편이 되고 싶었다. 나 졸업할 때는 가난했지만 그래도 취업률이 130%였다. 가난해도 희망으로 버텼다. 요즘은 그런 게 없지 않나. 그래서 악당의 편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젊은이들에게 악당의 이야기보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편집의 리듬감이 요즘 영화들과 다르다. 액션의 리듬감도 다르고. 클로즈업도 상대적으로 적고.

▶'웰컴 투 동막골'을 할 때도 클로즈업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난 그런가 보다. 강요하고 싶지 않다. 액션영화를 하자고 찍은 게 아닌데 하다보니 액션이 많은 영화를 찍었다. 카체이싱 장면도 '분노의 질주'를 찍는 게 아니니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옥의 밑바닥에서 나 혼자 인 줄 알았는데 손을 잡아준 다른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 레시피로 요리했다. 정말 중요한 감성만 오리지널로 가져오자고 생각했다.

클로즈업의 강요는 멋있기는 한 데 불편하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그런 강요가 교육 효과도 있다. 자주 클로즈업을 관객이 보면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말하고 싶었다.

-밥 먹는 장면. 왜 그리 길게 가는지 의도는 명확하지만 그래도 길지 않나.

▶이 모든 게 밥 먹자고 하는 일이잖나. 먹는 즐거움, 같이 먹는 즐거움, 그런 걸 담고 싶었다.

-천상병 시인의 시로 시작하고 그 시로 마무리하는데. 내레이션이 메시지를 전하는 데 직접적일 수도 있는데.

▶너무 직접적인가란 생각에 그 결정을 맨 마지막에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원래 그 시를 좋아했다. 난 예술영화를 하는 게 아니다. 이 시를 처음에 소개하면 마지막에는 그 사람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가치의 이야기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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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현 감독/사진=김휘선 기자


-액션의 설계는 어떻게 했나. 각 액션들이 크게 보면 서로 연결되는데.

▶게임 세계로 이끈다고 생각했다. 가상이자 과장의 액션이다. 맨 처음 게임 속 액션 시퀀스를, 그대로 맨 마지막에 현실로 재연했다. 그래서 두 액션 시퀀스의 음악이 같다. 프롤로그에서 지창욱이 뛰어내리는 장면을, 마지막에는 자동차가 뛰어내리는 걸로 바꾸는 식이다. 그렇게 대척점을 줬다.

-마티즈도 그렇고, 드론도 그렇고 각각의 도구들이 적합하면서 각각의 상징으로 쓰이는데.

▶맞다. 도구이자 상징이다. 협찬을 할 테니 비싼 차를 쓰자는 소리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게 요즘 젊은이들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나 하나는 별 의미가 없는데 뭉치면 몇 배로 힘이 된다.

-지창욱은 액션을 정말 잘 소화했는데.

▶원래 잘 하는 배우다. 영화계가 편식이 심하다. '기황후' 클립도 봤는데 너무 좋더라. 발견이라고 하기엔 마인드나 감각이 이미 너무 좋은 배우다.

-심은경은 어땠나.

▶처음부터 그 역할은 할머니 같은 젊은 사람이었으면 했다. 만능같은 해커지만 대인기피증이 있는 사람. 심은경과 너무 똑 같았다. 그렇게 배우와 캐릭터가 매칭 됐을 때 쾌감을 느낀다.

-오정세 캐스팅은 사실 쉽지 않았는데.

▶투자사에서 반대했었다. 본인이 와서 이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 역할에 대한 준비에 소름끼치게 감동했다. 정말 여러 가지 준비를 했다. 약간의 장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초반에는 꼽추 설정도 해오더라. 너무 드러나는 것 같아 얼굴의 점만 그렸다. 사실 가만히 보면 오정세가 약간 구부정하게 나온다.

-'권법'은 어떻게 되나.

▶언젠가 하긴 하겠지만 당장은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12년 만에 돌아왔는데 한 치 앞도 모르겠는 게 요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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