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SBS 파일럿 '상속자' 논란? "수저게임' 차용했지만 언급 無"vsSBS 측 "사실과 달라"

임주현 기자 / 입력 : 2016.07.2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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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SBS


월간잉여 발행인 겸 편집인 최서윤이 SBS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인생게임 - 상속자'(이하 '상속자')가 자신이 기획, 개발한 보드게임 수저게임을 일부 차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밝히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최서윤은 27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SBS의 '상속자'는 '수저게임'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5월 말 '상속자'의 기획, 제작에 참여한 PD로부터 전화가 왔고 6월 2일 신촌의 카페에서 만남이 이뤄졌다. 그 자리에서 PD는 '수저게임'의 룰과 리뷰를 읽으며 프로그램 기획에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고백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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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자' 측(왼쪽)과 최서윤 대화 내용/사진=최서윤 페이스북


최서윤은 '상속자' 측이 수저게임이 모티브가 됐다고 밝힐 것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최서윤은 '상속자'의 1부에 해당 내용을 밝히지 않자 재차 프로그램에 요구했지만 2부에서도 관련 사실을 기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상속자' 측과 카카오톡 대화 내용도 덧붙였다.

그는 "SBS의 공식적인 사과와 정정 보도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SBS 측은 이날 스타뉴스에 "최서윤 씨의 주장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 또 2부 자막에 게임 협조로 수저게임과 최서윤이라는 이름을 자막에 넣었다"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17일과 24일 방송된 '상속자'는 한국 사회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가상의 공간에서 일반인 출연자들이 주어진 계급에 따라 미션을 수행하고 그에 상응하는 가상의 화폐를 벌어 우승자를 가리는 야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이하 최서윤이 올린 전문.

어제 친구가 기사 링크를 보내줬다. SBS 파일럿 프로그램 '인생게임: 상속자'(이하 '상속자')에 대한 기사다. 이밖에도 프로그램을 보거나 관련 기사를 보고 연락한 사람들이 왕왕 있었다. 내가 기획 · 개발한 보드게임 수저게임 때문이다.

SBS의 '상속자'는 '수저게임'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5월 말 '상속자'의 기획 · 제작에 참여한 PD로부터 전화가 왔고(위 링크 기사에 등장한 인물은 아니다) 6월 2일 신촌의 카페에서 만남이 이뤄졌다. 그 자리에서 PD는 '수저게임'의 룰과 리뷰를 읽으며 프로그램 기획에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고백했다.

'수저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뒤집힌 카드를 뽑는다. 부자 부모 뱃속에서 태어난 것도 노력이 아닌 우연의 결과인 것처럼, 게임에서도 이런 우연적인 행위에 따라 '금수저'와 '흙수저'가 나뉜다. 그렇게 롤플레이는 시작된다. 금수저는 집 세 채와 유동칩(화폐) 10개로 시작한다. 흙수저는 칩만 10개 있다. 집이 없는 흙수저는 턴이 바뀔 때마다 임대료를 낸다. 이대로 두면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이는 점점 벌어진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의 '법안 발의'와 투표, '랜덤카드'를 통해 시스템은 수정될 수 있다. '상속자'는 이와 같은 '수저게임'의 구조를 상당 부분 차용했다.

하지만 PD는 내게 방송의 세부적인 룰은 '수저게임'과 다를 것이고, 이런 경우 로열티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방송국 관행이라고 이야기했다. 대신 프로그램의 말미에 '수저게임'을 모티브로 프로그램을 만들었음을 밝히고 "도움을 준 최서윤 씨께 감사를 표합니다"라는 멘트를 넣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플레이어들의 의지와 협력으로 세상이 나아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하며 제시한 조건을 수락했다.

그리고 7월 17일 '상속자' 1부가 방영됐다. 약속된 멘트는 없었다. 캡처된 카톡 대화와 같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PD에게 질문했다. PD는 2부에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24일 방영된 '상속자' 2부의 말미에도 약속된 멘트는 등장하지 않았다.

'이름을 적는 일'의 중요성은 월간잉여를 발행하면서도 왕왕 느꼈던 것이다. 금전적 보상을 할 수 없을수록 특히 중요하다. 수저게임 체험단 모집 때도, 참가자의 아이디어가 게임에 적용되지 않더라도 이름을 적겠다 약속했다. 약속대로 수저게임 키트에는 1회 체험단의 이름이 적혀있다. 하지만 내가 관여한 다른 숱한 콘텐츠에, 인지하지 못한 채 누락된 이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한꺼번에 많은 연락을 주고받거나 많은 정보를 입력하는 작업을 하는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의 일들이 마음에 걸린다.

스스로도 실수할 수 있는 존재라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해 너그러우려 노력한다. 그러나 같은 일이 두 번이나 반복된 것은, "머리 숙여 사과"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일주일만에 다시금 약속한 일을 지키지 않은 것은 그저 '실수'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주 최소한의 요구만 했는데 그것마저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도 무성의하게 느껴지고, 내 인격 자체가 모독당한 느낌이다.

방송국의 '관행'이라는 것에도 문제의식을 느낀다. '수저게임'에 흥미를 보이는 시민단체와 교육단체로부터 여러 제안을 받아왔다. 워크숍 진행이나 공동 콘텐츠 개발을 제안하며 그들은 인건비 지급을 약속했다. 방송사는 이들 단체보다 훨씬 더 많은 예산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방송국에서 콘텐츠 갈취가 '관행'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글을 쓰기 위해 처음 키보드 앞에 앉았을 때, 불공정한 방송국의 콘텐츠 제작 관행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거창한 마음을 먹었다. 아마 안 될 거야... 거대한 방송국은 나 같은 개인의 찍소리쯤 가뿐히 무시할 것이다.

오기가 생긴다. 친구는 기획비와 피해 보상을 청구하라고 공분했다(예술가인 그의 콘텐츠 역시 방송국에 의해 이용됐는데, 이 과정도 불공정했다고 한다). 좋은 마음으로 승낙한 것이 '통수'로 돌아오자 보상심리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무산되더라도, 적어도 '상속자'를 본 사람들이 프로그램의 근간이 된 아이디어가 '수저게임'의 것이었음은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SBS의 공식적인 사과와 정정 보도를 원한다.

얼마 전 '오늘의 교육' 32호에 글을 한 편 기고했다.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뭘 해봤자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무력감을 표출하는, 나보다 어린 청년들을 만날 때가 왕왕 있었다. 그런 이들을 설득하려다보면 몇 살 차이도 안 나는데 그들로부터 내가 꼰대 취급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를 논리로 설득하려는 게 '노잼'이고 꼰대 같다면 '예스(YES)잼'의 방식으로 시스템을 바꾸는 경험을 자연스레 체득하게끔 하는 것은 어떨까? 우리에게는 '승리의 경험'이 부재하다. 무기력은 학습된다. (중략) 얼굴을 맞대고 함께 '재미있는' 활동을 하는 것, 그렇게 사회구조를 학습하고 신념을 체득해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 그를 위한 도구로 보드게임을 떠올렸다. 보드게임은 온라인게임과는 달리 플레이어들이 실제로 만나 얘기를 주고받으며 진행하는 놀이다. 직접 자기 언어로 소화시킨 주장을 입 밖에 내고, 여럿이 함께 상황을 조율하고 협의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며, 게임의 룰을 통해 연대의 감각을 체득한다면 한국사회가 좀 더 '민주화(본래 뜻으로 읽어주시길)'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때는 이렇게 '승리의 경험'이 절실한 일이 내게 생길 줄은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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