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경 의상감독이 밝힌 '아가씨' 옷들에 감춰진 비밀(인터뷰)②

[韓영화 장인 릴레이 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06.29 09:12 / 조회 : 1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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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스틸


'아가씨'에서 의상은 또 다른 주인공이다. 김민희가 입은 아름다운 드레스와 기모노, 김태리의 한복 같은 메이드 복장, 하정우의 수트, 조진웅의 유카타 등등은 캐릭터를 그대로 상징한다.


조상경 의상감독의 손끝에서 이 옷들이 창조됐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괴물' '범죄의 재구성' '암살' '베테랑' '상의원' '후궁' 등 수많은 영화들 의상을 책임져온 그녀는, '아가씨'에서 아름다운 옷으로 관객을 매혹 시켰다.

조상경 의상감독이 밝힌 '아가씨' 의상에 대해 풀어놓는다.

-'올드보이' 이후 '친절한 금자씨' '박쥐' 등 박찬욱 감독과 계속 작업했는데.

▶그래서 원래 '아가씨'를 안 하려 도망 다녔다. '박쥐' 끝나고 류성희 미술감독과 박찬욱 감독님 영화세계를 위해서라도 우리가 흩어져야 한다고 했었다. 관객으로 다른 영화를 보고 싶기도 했다. '아가씨' 제안을 받았을 때, 일본 디자이너가 더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더 미니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기모노도 한국인이 만드는 것보다 일본인이 만드는 게 더 맞다고 생각했다. 스케줄이 많다고 거절하고 한 두 달 도망 다니다가 다시 연락을 받았다. 할수 없지, 라고 생각하면서 도망 다닌 만큼 더 철저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어화' '암살' 등 일제시대를 다룬 영화 작업을 했으니 '아가씨'도 익숙하지 않았나.

▶전혀. 감독님에게 일제시대를 다룬 영화들이 얼마나 많이 만들어지는 줄 아냐며 이미 1920년대, 1930년대는 다 있다고 했다. 그래서 김민희 의상을 1910년대 복식으로 한 것이기도 하다. 김민희가 1910년대쯤 방에 들어와 그 속에서 시간이 멈춰져 있었기에 1910년대 의상이라고 한 건 나중에 의미를 갖다 붙인 것이다. 영화 속에서 김민희가 코르셋을 입어야 했으니, 그래서도 1910년대여야 하긴 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는 이미 코르셋이 사라지다시피 했으니깐. 하정우는 밖에서 온 사람이니 1930년대 의상이다. 나중에 김민희와 김태리가 탈출하고 난 뒤에 입는 옷은 1930년대 의상이다. 하정우 옷을 훔쳐 입은 것이니깐.

-콘셉트는 어떻게 정했나.

▶오디션을 볼 때 기모노를 입히고 봤다. 난 '아가씨'가 되게 코미디라고 생각했다. 원작인 '핑거스미스'가 빅토리아 시대의 허세와 위선이 담겨 있지 않나. 그래서 까만 드레스에 개구 진 표정, 의뭉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렸었다. 1부와 2부 의상도 바꿔야 될 것 같고. 처음에는 고딕에 목까지 꽉 막힌 의상을 염두에 뒀다. 그런 위선이 벗겨지는 순간을 담아내고 싶었고.

그런데 김민희가 캐스팅이 되고 난 뒤 옷을 그렇게 입혀보니깐 너무 안 어울리더라. 배우가 안 어울리면 말짱 꽝이 아닌가. 저녁에 다시 모여 회의를 했다. 콘셉트가 있으면 뭐해 배우가 안 어울리는데, 라고 했다. 전부 김민희에 맞췄다. 촬영하면서 내내 옷을 맞춰서 전날에나 보내주곤 했다.

-기모노를 일본 디자이너가 만들어야 한다고 했었던 만큼, 공을 더욱 들였을텐데.

▶일본 기모노 선생님에게 입는 법, 벗는 법, 문양의 의미, 원단 고르는 법, 언제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등등을 배웠다. 김민희가 입는 기모노는 이모인 문소리가 입는 기모노이기도 하다. 의미가 풍부하고, 사연이 생긴다. 후리소데인데, 이건 미혼이 입는 옷이다. 문소리는 유부녀지만 낭독회에선 그 옷을 입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기모노에 있는 문양도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서양난인데, 그 당시에는 없던 문양이다. 다이쇼 시대 원단 등을 구하려 다녔었다. 어느 날, 쇼윈도우에 그 원단이 걸려 있는 걸 봤는데 조명이 은은하게 비추면서 너무 아름답더라. 비싸기도 해서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결국 출국 전에, 주문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기모노는 '게이샤의 추억' 같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것이다. 사실 일본인이 만든 게 아니라 미국 디자이너가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기모노를 언제 어떻게 어떤 식으로 각 캐릭터들이 입을지 고민했다. 예컨대 조진웅은 가짜 귀족이라서 더 챙겨입을지, 아니면 덜 챙겨입을지, 등등을 염두에 뒀다.

기모노 선생님에게서 옷이 아니라 태도가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개인적으론, 김민희와 하정우가 결혼할 때 입었던 기모노가 가장 마음에 든다. 다이쇼 시대에 결혼식 복장으로 블랙을 염두에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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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스틸


-김태리가 입은 하녀 의상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메이드 복장이 아니다. 한복을 적용했는데.

▶일단 설정을 가졌다. 하녀복의 레퍼런스로 양장, 한복, 기모노 등등을 생각해봤다. 어떤 이미지가 첫 등장에 좋을지, 고려했다. 김민희가 드레스로 등장하는데 김태리는 통치받는 조선인 인 만큼, 한복 늬앙스를 살린 일본식으로 가자고 생각했다. 먹색에 가까운 검은색 저고리를 생각했다.

-조진웅은.

▶연미복을 입고 유카타도 입지만 어쩔 수 없는 한국식, 조선식 느낌이 나도록 했다. 가짜를 추구하지만 왜 영화 속에서 야식으로 평양냉면을 먹지 않나. 자세히 보면 깃을 메는 방식이 한복식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감추려야 감출 수 없는 게 의상에서 드러나도록 했다. 그런 식으로 유머를 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간혹 보면 영화에 위트를 주는 걸 두려워 한다. 정장을 갖춰야 하고. 그런 점에서 박찬욱 감독님과는 코드가 맞는 것 같다.

-하정우는 어떻게 접근했나.

▶일단 허리 사이즈를 줄이라고 했다. '암살'에서 같이 해봤기에 그런 부분을 미리 알 수 있었다. 하정우가 대단한 게 37인치에서 32인치로 줄여왔더라. 하정우 슈트는 기본적으로 1930년대를 기본으로 했다. 밖에서 온 사람이니깐. 그래서 김민희와 김태리가 탈출할 때는 1930년대 의상을 입는다. 하정우 옷이기도 하고.

정장을 입을 때도, 턱시도에는 원래 블랙타이가 아니라 화이트 타이를 해야 한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시가렛 재킷을 입는다는 표현이 있었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님에게 이게 턱시도를 의미하는 것인지 물었다. 당시에 시가렛 재킷은 실내복이지 예복이 아니었으니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정보를 최대한 주는 것이다. 선택은 감독의 몫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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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스틸


-베드신 의상도 무척 중요했을텐데.

▶봉만대 감독과도 해봤으니 에로영화가 얼마나 힘든 지 안다. 액션은 빠르게 지나가지만 에로는 정서가 다 의상으로 들어온다. 옷을 입히고 벗기고, 그런 정서를 도와주는 의상이 훨씬 어렵다. 김민희 방 세트를 보고 의상을 다 바꾸기도 했다. 미술과 맞춰야 하니깐. 박찬욱 감독님에게 베드신에서 뭘 보여줄것인지 물었다. 어떤 체위로 할 것인지, 어디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물리적으로 어떻게 가능할지. 스킨톤도 맞춰야 했고. 그랬더니 1부에선 이 만큼 보여주고, 2부에선 이 만큼 보여줄 건데, 그걸 다 같이 찍을 거라고 하더라. 엔딩은 점프컷이니 의상은 필요없고.

-빛과 렌즈의 조화도 중요할텐데. '아가씨'는 아나모픽 렌즈를 써서 더 많은 정보가 담기기도 하고.

▶물론이다. 빛은 아주 중요하다. 연극을 하면서 많이 배웠다. 촬영감독들과도 많이 대화한다. 어떤 배우는 어떤 각도가 더 좋은지도 이야기한다. 렌즈를 어떤 걸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조명이 어떠냐에 따라, 화면에 비추는 색감과 질감이 다르다. 다 테스트를 해본다. '아가씨'에선 녹색을 많이 썼다. 김민희 의상이 녹색이 많다.

박찬욱 감독님이 '박쥐' 때 김옥빈 옷을 녹색으로 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 때는 녹색이 화면에 제대로 구현이 안됐다. 그래서 못 쓰겠다고 했다. 계속 테스트를 해보면서 색에 대한 데이터가 쌓였다. '군도' 때 강동원에 녹색 옷을 입히면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감을 잡았다. '아가씨'에선 그래서 녹색을 쓸 수 있었다.

-현재 작업하고 있는 작품은.

▶'마스터' '신과 함께' '군함도' 택시 운전사' '리얼' '부메랑'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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