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과 美 영화계가 中으로 달려가는 까닭은?①

[★리포트]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6.06.1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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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부터 중국에 인수된 레전더리픽쳐스의 '워크래프트:전쟁의 서막', 상하이 로케이션을 진행한 '007 스카이폴', 역시 중국 배우를 기용하고 중국에서 촬영한 '트랜스포머:사라진 시대' / 사진=스틸컷


게임원작 영화 '워크래프트:전쟁의 서막'이 중국에서 터졌다. 북미에서 첫 주말 2400만 달러(약 282억 원)를 벌어들인 게 고작인 이 1억6000만 불(약 1883억)짜리 블록버스터는 '폭망'의 우려를 딛고 한 주 만에 전세계에서 무려 3억 달러(약 3531억 원)를 벌어들였다. 중국에서만 닷새 만에 1억5600만 달러(약 1836억 원) 수입을 올렸다. 중국에서 개봉한 외국영화 중 최고의 개봉성적이다. '망작'이란 혹평, 북미에서의 참패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리 없이 속편이 제작될 것이란 전망도 이미 나왔다.

단순히 하나의 사건으로 치부하기에 이번 '워크래프트'의 중국발 흥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건 어쩌면 할리우드의 미래가 될지 모른다.


할리우드가 차이나 머니에 주목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는 중국의 영화시장은 할리우드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받아들여진다. 중국에서만 개봉 첫 주 1억 달러를 훌쩍 넘기는 흥행작들이 거푸 나오고 있다. 차이나머니 또한 이미 세계 영화계의 한 흐름이 됐다. 할리우드 개별 영화 부분 투자에 이어 전액 인수, 제작사 지분 인수, 제작사 인수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 한국 역시 중국과 함께 아시아 영화시장에서 활로를 모색 중이다.

◆중국 영화시장..내년엔 북미 넘어 세계 1위

'워크래프트'의 중국 흥행에서 보듯 13억 인구를 바탕으로 한 중국 영화시장의 파워는 특히 인상적이다. 성장세가 무서울 정도다.


2015년 중국의 극장 흥행 수입은 440억위안(약 7조8400억 원)을 기록했다. 2014년 대비 무려 48.7%가 늘어났다. 전세계 박스오피스가 같은 기간 1%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가파른 성장세인지 실감할 수 있다. 2014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북미시장은 7.4% 늘어난 총 110억 달러(약 13조 원)를 벌어들이며 역대 최대 기록을 세웠지만 중국의 성장세에는 비교가 안 된다. 스크린 수는 매년 약 30%씩 늘어나 2015년엔 3만2487개에 이르렀으며, 대도시를 넘어 변두리 중소도시까지 극장이 보급되고 있다.

2017년 중국이 북미를 뛰어넘어 세계 1위 영화시장이 될 것이라는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은 이제 카운트다운만 남은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향후 성장동력 또한 충분하다는 평가다. 아직 1인당 영화관람횟수가 1회가 안되는 데다, 2015년 8230달러 수준이었던 GDP가 예상대로 2010년 1만2000달러로 늘며 중산층 인구 또한 3억3000만명에서 2020년 5억9000만명으로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문화 소비의 증가와 함께 자연히 극장수입 또한 계속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관객 배려? 비위 맞추기?

자연히 세계 영화계는 중국 관객의 입맛에 맞는 영화를 고민하게 됐다.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특히 적극적이다. 중화권 스타 캐스팅은 1단계라 할 수 있다. 비록 단역일지라도 대형 블록버스터에 중국 스타들을 한둘씩 출연시키는 것이다. 판빙빙은 '아이언맨3',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 리빙빙과 슈퍼주니어 출신 한경은 '트랜스포머:사라진 시대'에 얼굴을 비췄다. 안젤라 베이비는 '히트맨:에이전트 47'에 이어 '인디펜던스데이:리써전스'에 나온다. '트랜스포머:사라진 시대', '007 스카이폴' 등 중국 로케이션을 진행하는 영화도 상당하다.

출연진과 배경뿐이랴. 중국의 파워는 영화의 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콧대 높은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지만 중국 자체를 우호적으로 묘사하거나, 중국에 부정적인 요소를 아예 삭제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래비티'에선 조난당한 여성 우주인이 중국 우주선을 타고 지구 귀환에 성공하며, '마션'에선 중국이 홀로 남겨진 미국 우주인 귀환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반면 '픽셀'의 경우 외계 공격으로 지구 랜드마크가 파괴되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대본에 있던 만리장성을 쏙 뺐다. 드림웍스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중국 관객을 고려해 판다를 주인공으로 삼은 애니메이션 '쿵푸팬더' 시리즈를 기획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 북미에선 전작만 못한 성적을 거둔 '쿵푸팬더3'은 중국판을 따로 손질, 캐릭터의 입모양을 중국어에 맞게 고치고 성룡의 배역까지 더 중요하게 바꾸는 정성을 들인 끝에 중국에서 미국을 훨씬 뛰어넘는 성적을 거두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차이나머니, 세계 영화계로

차이나 머니의 해외 진출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중국 투자회사인 DMG 엔터테인먼트가 마블-디즈니의 '아이언맨3'에, 중잉그룹이 '분노의 질주:더 세븐'에 투자하고, 알리바바는 '미션 임파서블:로그네이션' 중국 배급과 관련해 파라마운트와 손을 잡는 등 중국 자본은 그간 자국에서 인기 높은 히어로물, 액션 블록버스터 투자에 열을 올렸다. 중국이 돈을 대고 할리우드가 제작한 리안 감독의 '빌리 린스 롱 하프타임 위크', 장이머우 감독의 '만리장성' 등도 개봉을 앞뒀다.

최근엔 중국경기가 둔화되며 뭉칫돈이 더욱 영화로 쏠리고 있다. 일회성 프로젝트에서 벗어나 점점 규모를 키우고 중국이 세계영화계의 플레이어로 성장하는 단계다. 망고그룹이 라이온스게이트와 3억7500만 달러 투자계약을 맺고, 차이나캐피털이 워너브러더스와 플래그십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기로 하는 등 속속 합작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특히 2012년 미국 AMC, 2015년 호주 호이츠그룹을 인수해 세계 1위 극장체인이 된 완다그룹은 지난 1월 '고질라' '쥬라기월드' '다크나이트' '인터스텔라' 등을 만든 할리우드의 잘나가는 영화제작사 레전더리픽쳐스를 인수하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알려진 인수액만 무려 35억 달러. 할리우드로 간 중국자본 중 최대 규모다. 중국에서 대박 난 '워크래프트:전쟁의 서막' 제작사가 바로 이 레전더리픽쳐스다.

한국 또한 중국과의 합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미 여러 감독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영화를 만들었고, 배우들의 진출 역시 이어지고 있다. 주요 배급사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한중합작으로 '미스터 고'를 선보인 경험이 있는 쇼박스는 지난해 화이브러더스와 독점 파트너십 계약을 맺고 쇼박스차이나를 설립했다. 3년간 6편 이상의 합작영화를 제작한다는 계획이다. NEW 또한 중국 최대 드라마제작사 화책미디어와 합작법인 화처허신을 출범하고 '마녀'를 비롯해 '뷰티 인사이드'와 '더폰' 리메이크를 제작한다. CJ도 나섰다. CJ E&M은 최근 '베테랑'과 '장수상회' 리메이크, 윤제균 감독이 연출하는 '쿵푸로봇' 등 한중합작영화 라인업을 공식 발표했다.

◆"중국, 할리우드의 현금지급기 아냐"

그러나 중국의 영향력, 파워가 커가는 것이 마냥 흐뭇하게 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할리우드의 실패를 만회하게 하는 시장"이라고 분석하면서도 "중국이 단순히 할리우드의 현금지급기는 아니다"고 꼬집었다.

중국 정부는 강력한 자국영화 지원책을 실시하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할리우드영화나 한국영화에 대한 차별이 상당하다. 가장 많은 관객이 몰리는 구정과 여름 시즌에는 외국영화 개봉이 아예 불가능하다. 중국영화 제작사가 극장 수입의 40% 이상을 가져가는 반면 해외 제작사는 통상 25%밖에 못 가져간다. 미국에선 개봉 수입의 50%를 챙기는 할리우드 제작사 입장에선 셈법 자체를 달리해야 한다. 쿼터도 있어서 한 해 개봉할 수 있는 해외 영화는 34편에 묶여 있다. 할리우드도 한국도 중국과의 합작을 계속 모색하는 이유다. 이 와중에 중국시장에선 중국영화 점유율이 점점 상승하고 있다. 2012년 중국의 해외영화 수입 쿼터가 기존 20편에서 34편으로 대폭 늘어났음에도 당시 48%였던 중국영화 점유율이 지난해 61.6%로 오히려 늘었다.

세계 영화계가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 창작의 자유를 제대로 못 누리다 보면 영화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에서 개봉하는 영화들은 공산당의 검열을 피해갈 수 없다. 초현실적인 설정이나 섹스, 폭력, 범죄 등등이 모두 검열 대상이 될 수 있다. 심지어 기준도 모호하다. 반중국적 정서는 물론 금기다. 덕분에 대본을 바꾸고 장면을 들어내는 일이 왕왕 벌어진다. 중국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한 '007 스카이폴'의 경우 제임스 본드가 중국 경비병을 죽이는 장면이 외국인이 중국인을 죽인다는 이유로 검열에 걸려 결국 삭제됐다.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 또한 중국 개봉을 위해서 결말을 바꿔야 했다.

우리영화 또한 중국의 비위를 맞추느라 다양성이 저해될 수 있는 우려에 노출돼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영화들이 쏟아지는 한국영화계로선 더더욱 큰 위험이다. 합작을 거치며 노하우만 중국에 뺏기고 손가락을 빨게 될 우려도 있다. 이 모든 위험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고 도전을 멈출 수도 없다. "중국이 한국영화, 나아가 세계 영화의 미래가 될 것이란 사실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한 영화배급사 고위 관계자의 말은 퍽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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