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 이준익 감독 "윤동주의 시, 그의 부끄러움을 찾아서"(인터뷰①)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6.02.03 09:26 / 조회 : 4374
  • 글자크기조절
image
영화 '동주' 이준익 감독 / 사진=이기범 기자


영화관에 앉아 선명히 들려오는 시구에 귀를 기울인 것이 과연 얼마 만인가. 이준익 감독의 신작 '동주'를 보며 몇 번이나 생각했다. 감독은 이름조차 우리말로 쓰지 못하던 시절, 고운 한글로 아름답게 그리고 아프게 쓴 시들을 남기고 떠난 시인 윤동주(강하늘 분)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중국 용정에서 함께 태어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함께 생을 마감한 윤동주의 고종사촌인 독립운동가 송몽규(박정민 분)가 함께 등장한다. 영화는 민족을 위해 거침없이 투신했던 동갑내기를 곁에서 지켜보는 윤동주의 모습을 통해 그의 시에 담긴 '부끄러움의 미학'이 어떻게 출발했는가를 되짚는다. 그리고 그의 삶 곳곳에 그의 시를 얹어 윤동주의 시와 삶, 그리고 비극의 시대를 함께 꿴다.

영화를 제작하던 시절, 1995년부터 준비한 의열단 이야기 '아나키스트'를 2000년 선보였으며 한때 가미카제 특공대 속 조선인 비행사의 이야기를 영화화하려 했던 이준익 감독은 수년째 마음속에 품어오던 주인공 윤동주를 흑백의 스크린에 되살려냈다. 5억 원 남짓한 빠듯한 예산으로 이처럼 일제 치하를 그려낼 수 있는 것은 제작자 출신 감독의 야무진 솜씨. 톱스타 캐스팅도, 광고도 먼저 거절했다는 이준익 감독은 '동주'라는 영화가 관객에게 다가가는 과정도 영화와 어울릴 수 있기를 바랐다고 털어놨다.

-인터뷰에 앞서 윤동주 평전을 훑어봤다. 연표와 다른 점도 있지만 가능한 맞추면서 시를 배치했더라.

▶가능한 사실에 입각하고 싶었지만 정확하게 맞출 순 없다. 극 중 등장하는 송몽규의 연설 장면은 12살 때 이야기인데 19살 신춘문예 당선과 같은 날에 맞춰져 있다. 이듬해 1936년 나온 백석 시인의 시집 '사슴'을 건네준다는 설정 역시 안 맞지만 한 날이다. 영화적인 설정으로 봐 달라. 전기영화를 만들려 한 건 아니었으니까.

-마침 요즘 새로 나온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시' 초판본이 베스트셀러 1위다.

▶나르시시즘에 빠져 감상적으로 썼다면 70년 이상 그 시가 살아남지 않았을 거다. 그가 살았던 현실에 직면하고 시대를 아파했던 증거이기 때문에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이덕일 작가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란 책에 보면 '시대를 아파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200년 전 정약용 이야기다. 그리고 130년이 흘러서 윤동주가 그 시를 쓴 것이다. 그리고 71년이 지나서 베스트셀러 1위가 됐다. 한글을 말살시킨 일제의 조선어 금지정책의 와중에 죽는 날까지 한글로 시를 쓴 게 윤동주다. 세종대왕이 살아있었다면 윤동주에게 표창장을 줬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 괜히 울컥한다. 그 사람의 영혼이 내 가슴을 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image
사진=영화 '동주' 포스터


-영화 곳곳에 윤동주의 시가 배치돼 독특한 느낌이다.

▶시의 배치를 드라마, 삶의 굴곡과 맞춰보려 했다. 연희전문학교에 가는 기차에서 나오는 '새로운 길'이나 창씨개명 후 나오는 '참회록', 막바지의 '자화상' 등 윤동주에 대해 많이 아는 분들이 볼수록 재밌을 거다.

-그 중 '자화상'이 인상적이었다. 당연히 '그 사나이'를 윤동주라 생각하고 읽어 온 시인데 송몽주가 연상되게 배치했더라.

▶윤동주의 '자화상이'라는 시를 클라이맥스에 배치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 대사로 늘 나오듯이 송몽규는 이유와 목적이 있는 인물이다. 시구처럼 우물을 쳐다보는 신도 소록도에서 찍었는데 아쉽게 빠졌다. '자화상'이란 본디 내가 나를 대상으로 한다. 자신을 타자화시키면서 자신의 내면을 고백하는 것이다. 영화는 송몽규와 윤동주란 두 인간의 탄생 과정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좇아갔다. 인간은 혼자 존재할 수가 없듯 윤동주는 송몽규를 통해 증명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평전에서도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윤동주 하면 위인 같은 느낌마저 드는 민족시인으로 일컬어진다. 그런 인물의 열등감을 공들여 묘사했다.

▶그 역시 열등감을 느끼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열등감을 느끼는 3번의 순간이 있다. 10대인 동갑내기 송몽규가 신춘문예에 당선될 때, 연전에서 몽규가 우등상을 받을 때, 몽규가 교토 제국대학에 붙고 윤동주는 낙방할 때. 실제로 윤동주는 '대기만성'이란 말을 되뇌기도 했을 정도다. 비교 없는 열등감이란 없다. 그 비교 대상이 바로 몽규다. '자화상'에 나오는 '그 사나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극복하려는 대상인 송몽규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실제는 다를 수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시를 그 자리에 넣었다. '자화상'의 그 사나이가 윤동주일 거란 예상을 벗어났지만 기대는 저버리지 않았다. 그 순간 멍 해지는, 관객과 만든 사람의 진공상태가 온다. 그런 순간을 만들기 위해 영화를 하는 것이다.

image
영화 '동주' 이준익 감독 / 사진=이기범 기자


-'동주'는 송몽규의 영화이기도 하다. 송몽규는 윤동주로 시작돼 발견한 인물인가.

▶그렇다. 윤동주 하나만으로는 드라마가 형성이 안 된다. 석 달 차이로 태어나 같이 죽은 윤동주와 송몽규, 그런 운명이 또 어디 있겠나. 또한 그에 대한 윤동주의 열등감이 부끄러움의 미학이라 평가받는 그의 시로 남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해석하려 했다. 동시에 송몽규라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작은 무덤 하나로 남아 잊힌 인물 또한 조명하고 싶었다. 아마 영화를 보신 분들은 송몽규를 다시 검색하면서 '아 이런 사람이 있었어' 이러실 것이다.

-예산과 극의 분위기를 고려해 흑백으로 촬영했다. 절묘한 선택이란 생각이 든다. 컬러로 된 현장에서 흑백 영상을 연출하는 기분도 남달랐을 것 같다.

▶모니터를 흑백으로 전환해 지켜보며 촬영했다. 실제 보는 것과 모니터가 너무 다르다. 심지어 실제로는 여러 색이 뒤섞여 엉망진창이어도 화면이 너무나 정갈했다. 시간이 멈춰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동주'란 영화가 흑백이 된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매력적인 게 바로 이 부분이다. 70년 전 이야기가 흑백 사진처럼 멈춰있는 듯하다. 지금의 컬러 영화를 2026년에 보면 촌스럽겠지만, 흑백의 '동주'는 3016년에 봐도 같을 것이다. 하얀 종이에 검은 글자로 쓰인 윤동주의 시, 그 시대가 그대로 박제된 것이다. '동주'는 시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이기도 하다. 내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특별하다. 각별하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image
사진='동주' 스틸컷
관련기사
  • 트위터
  • 페이스북
  • 라인
  • 웨이보
  • 프린트
  • 이메일
김현록|roky@mtstarnews.com 트위터

스타뉴스 영화대중문화 유닛 김현록 팀장입니다.

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