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의 대부' 피에르 리시엥 "한국, BIFF 자랑스러워해야 한다"(인터뷰)

부산=전형화 기자 / 입력 : 2015.10.08 11:09 / 조회 : 2562
  • 글자크기조절
image
피에르 리시엥/사진=김창현 기자


얼굴과 이름이 명함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피에르 리시엥(78)도 그렇다. 칸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 공식 직함은 아니다. 그럼에도 피에르 리시엥이란 이름 만으로 전 세계 어느 영화제라도 프리패스다. 그는 세계 영화인들에게 '칸의 대부' '영화의 아버지'라 불린다.


40여년 동안 그가 꼽은 영화들이 칸영화제를 거쳐 전 세계 영화인들에게 소개됐다. 피에르 리시엥은 한국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공로도 혁혁하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전'을 칸영화제에 소개한 것도, 칸에서 첫 상을 탄 한국영화인 '취화선'을 알린 것도 그였다. 이창동과 홍상수를 칸영화제에 알린 사람도 피에르 리시엥이다.

피에르 리시엥은 신상옥 감독의 영화 세 편을 칸영화제 클래식에서 틀면서 직접 세계 영화인에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 피에르 리시엥의 삶은 '피에르 리시엥: 맨 오브 시네마'라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피에르 리시엥이 다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1996년 1회부터 부산영화제를 찾은 피에르 리시엥은 이곳에서 살핀 한국영화들을 칸영화제에 소개해왔다. 20주년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앞으로 20년을 더 순항하기 위한 방법을, 그에게 물었다.

-그동안 한국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많은 도움을 줬는데.


▶부산국제영화제를 1회부터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좋은 한국영화들을 칸에 소개했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전' '취화선', 그리고 홍상수와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을 칸에 알렸다. 칸 클래식에 신상옥 감독 영화 세 편을 상영하도록 연결하기도 했다. 이런 한국 감독들의 영화들을 세계 영화계에 알리게 된 걸 기쁘게 생각한다.

칸영화제 뿐 아니라 다른 영화제에도 한국영화들을 소개한다. 예컨대 미국의 텔로라이드 영화제에서 상영된 모든 한국영화들은 내가 다 선택한 것이다.

-부산영화제가 올해로 20회를 맞았다. 1회부터 지켜본 사람으로 20회를 맞은 지금 부산영화제에 대한 소감은.

▶일단 칸영화제 이야기부터 하자. 칸은 1939년 시작됐다가 2차 세계대전 때문에 중단됐다. 그러다가 1946년부터 실질적으로 시작됐다. 프랑스 뿐 아니라 유럽 영화들에 대한 열정이 파괴된 유럽의 재건에 큰 힘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게 문화의 힘이고, 영화의 힘이다.

1996년, 부산영화제가 막 시작했을 때 해외에서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인식은 별로 없었다. 전쟁이 있었고, 분단이 됐다는 정도. 일본과 중국 사이에 있는 나라라는 정도였다. 50~60년대 신상옥, 유현목, 김기영 같은 훌륭한 영화감독이 있었지만 그런 사실을 해외에선 아무도 몰랐다. 1990년대 초반 '서편제' 정도가 약간 알려졌을 뿐이다.

그러다가 부산영화제가 시작되면서 나 같은 사람들이 찾아와 좋은 영화, 좋은 감독, 좋은 사람들과 우정을 다지게 됐다. 부산영화제의 기여 덕에 칸에 한국영화를 알릴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부산영화제에 큰 감동을 받은 건 젊은 관객들의 관심과 열정이다. 또 자원 봉사자들의 노력이었다. 칸에선 극장 문을 여는 사람들도 돈을 주고 고용한다.

이런 사람들의 노력으로 첫해부터 부산영화제와 사랑에 빠졌다. 김동호, 이용관, 김지석 등 부산영화제 사람들의 확실한 비전 덕분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

-부산영화제 예산 규모는 130억원 정도다. 칸 영화제와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영화제가 성장하는 데는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 칸은 예산을 어떻게 충당하나.

▶문화부와 국립영화센터, 지역, 칸 시 등에서 지원을 받는다. 스폰서도 있고. 알겠지만 칸영화제는 티켓을 팔지 않는다. 그러니 사실상 모든 예산이 공공 기금이라고 보면 된다. 칸은 영화제를 앞두고 많은 사람을 고용한다. 그만큼 많은 예산이 필수다. 운전수만 해도 80~100명 가량을 고용하고, 경호원에, 극장 문을 열어주는 사람까지 고용한다. 프로그래머들을 돕는 사람들도 각 섹션마다 영화제를 앞두고 따로 고용한다. 그런 식으로 일자리를 창출한다. 돈이 없는 한 할 수 없는 일이다.

-프랑스도 좌, 우 정부가 바뀌어왔다. 정부 성향에 따라 영화제 운영이나 영화 선택에 간여한 적이 있나.

▶내가 아는 한 없다. 칸영화제는 좌든 우든 프랑스란 나라에 기여 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사회주의자지만 우파 정부 때 임명됐다. 좌우 상관없이 칸영화제가 프랑스 이미지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또 프랑스 정부가 영화 선정에 개입하거나 압력을 행사한 적은 전혀 없다. 영화 선정이 잘못됐다면 그건 오로지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 등 영화제 사람들이 책임질 일이다.

-한국영화가 최근 3년 동안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지 못했다. 한국에선 이런 현상을 한국영화, 특히 예술영화의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예전 이창동 감독이 '시'로 칸에서 시나리오상을 받았을 때 "점점 이런 영화들이 사라져간다"고 말하기도 했었고.

▶와인으로 설명하겠다. 작황이 좋았던 해가 있고, 나빴던 해가 있다. 어떨 때는 부르고뉴 와인이 좋을 때가 있고, 어떨 때는 보르도 와인이 좋을 때가 있다. 다른 나라도 3~4년 동안 좋은 영화들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일단 이런 현상은 우선 감독의 책임이다. 이창동의 새 영화는 나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지원하는 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 '시' 같은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의 용기가 필요하다.

image
피에르 리시엥/사진=김창현 기자


-최근 중국에서 국제영화제를 잇따라 만들면서 부산국제영화제가 위기를 느끼고 있는데.

▶현재 중국에는 어떤 제대로 된 영화제도 없다. 레드카펫을 위한 빅스타만 원할 뿐이다. 물론 어떤 영화제라도 레드카펫은 중요하긴 하지만.

부산영화제의 덕목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아시아의 감독과 영화를 소개해왔다는 점이다. 그런 덕목으로 부산영화제는 한국에 국한하지 않고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가 됐다. 예컨대 프랑스와 독일이 합작한 예술 전문채널 아르떼에서 이번 아시안필름 마켓 중 인도네시아 감독 영화에 상을 줬다. 이 영화를 믿을 수 있는 건 부산영화제를 통해서 소개됐기 때문이다.

부산영화제가 이런 비전에 계속 충실하다면 앞으로 수년 동안 여전히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남을 것이다.

-부산영화제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란 뜻인가.

▶그렇다. 아시아에선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이라는 칭호를 붙이기 좋아한다. 국민배우, 국민엄마 등등. 한국인들은 부산국제영화제를 '국민영화제'라고 생각해도 될 만하다.

96년에 파리에 한국 레스토랑이 30개도 되지 않았다. 지금은 100개가 넘는다. 부산영화제는 한국의 국력과 같이 성장했다. 그리고 한국의 명예와 예술을 세계에 알리는데 혁혁하게 기여했다. 부산영화제를 거쳐 칸영화제에 알려진 한국영화를 통해 한국이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했다. 영화에 대한 관심이 한국의 음식, 전통, 역사로 이어졌다. 이런 건 결국 경제적인 기여나 마찬가지다.

-세상 무슨 일이든 성공을 거두면 그 과실을 탐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사람들은 세대 교체란 명목을 내세우는 법이기도 한데. 칸영화제는 그런 위기를 어떻게 넘겼나.

▶'르시드'란 책에 '가치는 해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가치는 얼마나 시간이 담겨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젊은 피가 자연스럽게 수혈되는 건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젊다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건 없다.

간혹 출세에 중점을 두는 사람이 있다. 영화를 영화로, 예술을 예술로 보지 않고 다른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다. 자기 욕심으로 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사람을 충원하는 건 중요하지만 누가 들어오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 부분을 지키려 노력했다.

-올라가기는 어렵지만 떨어지기는 한순간이다. 칸영화제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베니스영화제는 로마와 갈등으로 단번에 추락했다. 20회를 맞은 부산영화제가 더 성장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제도와 기관, 그리고 사람들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보다 영화를 알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기계공이 자동차를 수리하지 못하고, 정육점 주인이 고기를 썰지 못 하면 안 되듯 영화제라면 영화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부산의 비전을 계속 지켜가면서 그런 노력들이 계속된다면 부산영화제는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