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순 감독 "'연평해전' 좌우보다 중요한 건 상식"(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5.06.04 16:49 / 조회 : 6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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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 감독/사진=이동훈 기자


'연평해전'이란 영화를 만들 때부터 논쟁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김학순 감독은 이 이야기를 기획부터 세상에 내놓을 때까지 7년여를 끈질기게 잡고 있었다. 그는 '연평해전'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그 때 거기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유족의 슬픔이었다"고 몇 번씩이나 강조했다.

'연평해전'은 2002년 한일 월드컵 3,4위전이 벌어지던 그날, 서해 NLL에서 벌어진 제2 연평해전을 그린 영화다. 월드컵에 대한 환호의 목소리가 워낙 컸기에 잊어버릴 뻔한 사건을, 반드시 기억해야한다며 만든 영화다.

하지만 기획부터 제작까지 숱한 말들이 쏟아졌다. 10일 개봉을 앞두고 이념 논쟁으로 비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과연 김학순 감독은 영화와 영화를 둘러싼 숱한 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들었다. 긴 이야기를 가감없이 옮긴다.

-연평해전에 왜 관심을 갖게 됐나.

▶원래 한국전쟁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한국전쟁 관련 영화를 준비했었고. 그러다가 2007년에 누군가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왜 영화인들은 '연평해전' 같은 사건에 관심을 갖지 않을까란 소리를 들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단순히 연평해전이 아니라 한쪽은 축제 분위기인데 한쪽에선 죽어갔다는 그런 아이러니에 꽂혔다. 2008년 '연평해전' 관련 책이 나와서 봤는데 자식을 잃고, 남편을 잃은 유가족의 통곡이 들리는 것 같더라. 그래서 영화로 만들기 위해 판권을 샀다.

-원래 아이러니에 관심이 많았나.

▶그렇다. 대학원 논문도 아이러니에 관한 것이었다.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음악에 관한 내용이었다. 포화가 들리는 데 음악은 정반대로 잔잔하거나 평화로운, 그런 아이러니에 관한 분석이었다.

-투자사가 바뀌고, 크라우드 펀딩을 하는 등 제작비 조달에 애를 먹었다. 해상 전투를 담은 영화를 만들려면 기획부터 상당한 금액이 필요하다고 계산을 했었을텐데. 그게 가능하리라 생각했나.

▶오히려 나한테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다. 독립영화를 만들었기에 돈 없이 영화를 만드는 노하우를 알고 있다. 만들려는 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꼭 형식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다큐멘터리로, 좀 더 돈이 모이면 영화+다큐멘터리로, 더 돈이 모이면 상업영화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2009년부터 본격적인 취재에 나섰다. 그 때 연평해전에서 순국한 황도현 중사 형의 결혼식이 있었다. 가보니 유가족이 모두 오셔서 만났다. 그 때부터 계속 취재를 하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다보니 2010년 천안함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계속 취재를 하게 됐다.

대략 처음에는 15억원에서 20억원 정도만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이렇게 큰 규모(65억원)으로 만들어질진 몰랐다.

-2010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3D영화 제작 지원으로 10억원을 받았는데. 처음부터 '연평해전'을 3D로 기획했었나. 6월1일 진행된 기자시사회에선 3D가 아니라 2D로 상영됐는데.

▶처음부터 3D로 기획한 건 아니다. 제작비를 마련해야 했으니 일단 신청을 하면서 3D를 기획했다. 그 때도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3D로 만들어야 하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나 역시 3D가 맞을까 고민도 했었다. 그러면서 관객을 그 당시 전투현장에 있는 것처럼 보여주고 싶단 생각을 했다. 가장 중점을 둔 건 3D보다는 감정의 전달이었다. 3D가 감정을 전하는 데 방해를 주지 않을지 걱정을 하면서 만들었다. 기자시사회 때는 3D 작업이 아직 미진했었다. 오늘(4일) 최종 점검을 한다.

-연평해전이란 소재를 선택했을 때부터 정치적인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을 했을텐데.

▶사실 정치적인 건 진짜 관심이 전혀 없었다. 아이러니에 관심이 있었을 뿐. 남북한이 대치하기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전쟁 영화를 계속 만들려고 했던 것이고. 만들면서 왜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려고 하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질문들에도 관심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 최인호의 '광장'이다. 어느 쪽에 쏠리는 게 싫다. 이쪽 진영이면 저쪽 진영이 옳더라도 싫고, 저쪽 진영이면 이쪽 진영이 옳더라도 싫어한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상식이다. 옳은 건 옳은 것이고, 사실인 건 사실인 것이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양쪽 진영에서 나온 책을 다 읽었다. 그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있는 건 사실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해석은 자유다. 다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람이다. 나라다. 유족의 아픔이다. 이것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미국 같은 나라는 사병이 전쟁에서 죽어도 장성이 직접 운구를 하지 않나. 그렇게 나라를 위한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영화가 국가주의를 강조한다는 지적도 받는데.

▶그렇게 비판해도 할 수 없다. 영화를 만들면서 머리가 아플 때마다 상식적으로 이게 맞나를 늘 생각했다. 좌우는 중요하지 않았다.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싫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영화를 만들었지만, 영화를 만드는 환경은 어느 한쪽의 지원과 후원이 상당했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에서 크라우드 펀딩 등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줬었고.

▶맞다. 후원의 대부분은 한쪽 진영에서 왔다. 고마웠다.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줬으니. 그러면서도 이렇게 하는 것이 제대로 하는 것인지 늘 고민했다. 그렇기에 더욱 상식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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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 감독/사진=이동훈 기자


-영화를 바라볼 땐 영화 내적인 이야기와 영화 외적인 이야기를 같이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연평해전'은 내적인 이야기보단 외적인 이야기가 훨씬 많은데.

▶당연히 아쉬움이 있다.

-'연평해전'은 평온한 일상에 갑작스럽게 사건이 벌어지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리기에 재난 블록버스터의 외피를 띠고 있다. 그러다보니 클리쉐(진부한 표현이란 용어)가 많기도 한데.

▶그런 부분이 분명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어떤 게 더 효과적이냐는 점이었다. 진부하더라도 그 방식이 관객에게 감정을 더 잘 전달한다면 그런 방식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30분의 해상 전투장면이 하이라이트인데. 실제 교전시간인 30분과 비슷하게 담았다고 했다. 액션의 서사라기보단 각 병사들의 사연이 길게 이어지면서 흐름을 끊는데. 상업영화로 만들려면 더 짧게 액션에 맞춰야 했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원래 실제 교전시간과 비슷하게 맞추려고 그렇게 만든 건 아니었다. 치열한 전투 장면은 8분 정도다. 하다 보니 실제 교전 시간과 비슷하게 됐다. 액션의 서사가 필요했지만 가급적 그 때 있었던 일들을 다 담고 싶었다. 리얼리즘이란 외적인 리얼리티가 있고, 내적인 리얼리티가 있다. 외적인 리얼리티를 위해서 CG팀에 당시 포탑에 어디에는 몇 미리가 박혔고, 어디에는 몇 미리가 박혔다는 것까지 하나하나 담으라고 했다. 내적인 리얼리티를 위해선 그 때 총탄이 오가는 현장에서 병사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를 담으려 했다. 결국 이 영화는 그들을 기리기 위해서 만든 것이니깐.

-좁은 배에서 전투장면을 찍는데 풀샷과 부감을 주로 사용했다. 그러다보니 숭고함은 느껴지지만 액션의 리듬이 늘어지는데.

▶영화적으로 상충되더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기억하려는 의도가 더 크니깐. 예를 들어 장례식장 장면에 실제 당시 유족이 오열하는 자료 화면을 썼다. 원래 배우들에게 연기를 시키려 했지만 도저히 저 장면은 연기로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료 화면을 썼다. 스태프들이 화면 비율이 다르니깐 자료 화면을 영화 비율과 맞추지 말자고도 했다. 그러면 화질이 뭉개진다고. 그래도 맞추라고 했다. 화질이 뭉개지는 것보다 그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에필로그가 긴데. 충분히 감동적인데도 너무 길게 잇다보니 쥐어짜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스태프에게도 그런 소리를 들었다. 울어라 울어라 쥐어짠다, 이 정도면 충분히 울었는데 더 길게 하니 눈물이 다 말라버린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좀 더 울면 어때, 눈물이 마르면 어때,라고 생각했다. 영화적으로 손해를 보고, 신파라는 소리를 들어도 개의치 않았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을 최대한 전하고 싶었다.

-아메리칸 뉴시네마에 쓰인 음악들의 아이러니로 논문을 냈지만 '연평해전'에선 음악이 오히려 감정을 극대화하도록 쓰였는데.

▶상업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10~15억원으로 만들었다면 그렇게 음악을 사용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의 돈으로 영화를 만들면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그렇게 음악을 사용했다. 한편으론 장례식 장면에 북 리듬을 차용한 것처럼 희생을 기억하자는 의미도 있었다.

-목적과 의도가 너무 뚜렷하다보니 의도가 영화보다 앞선다는 생각이 드는데.

▶내용이 먼저냐, 형식이 먼저냐인데. 의도가 영화를 앞서면 어떤가. 그런 의도가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인데.

-장례식장 장면에 고 김대중 대통령이 월드컵 결승전을 관람하려 일본으로 출국했다는 뉴스가 나오는 걸 보고 정치적인 논란이 예상된다는 소리들을 한다. 그건 사실이고 충분히 지적할 이야기며, 감독도 정치적인 의도는 없었다고 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당시 군 상층부에서 북한군의 발포 징후를 사전에 알았는데도 현장에 전하지 않았다는 게 초반에는 설명을 하다가 후반에는 사라져 버린 게 아쉽던데. 해군에서 많은 지원을 받았기에 더 조심스러웠나란 생각도 들고.

▶국방부에서 사전시사도 했지만 크게 영향을 받진 않았다. 원래 군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 기밀인 부분도 있으니깐. 하지만 현실적으로 필요했다.

당시 상층부에서 벌어진 일들을 영화 속에서도 알 수 있는 사람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그 때 당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한 논쟁이 아직도 소송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영화 속에서 결론을 내리고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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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 감독/사진=이동훈 기자


-연평해전으로 상업영화를 만든다면 유족의 아픔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당시 전투를 스펙터클화 한다는 비판도 받을 수 있는데. 5.18 민주항쟁을 다룬 '화려한 휴가'도 그런 비판을 받기도 했고.

▶그렇지 않다. 고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를 영화 속에서 농아로 설정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죄송하다고 했더니 "괜찮다. 나 말 잘하는 거 남들이 다 안다. 그런 걱정하지 말고 영화만 잘 만들어라"고 하셨다. 유족들은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해서 많은 사람들이 보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길 바라신다.

'연평해전'은 상업영화지만 돈이 목적이 아니다. 많이 기억되는 게 목적이다. 나는 그래서 흥행에 대해 이야기하면 불순물이 끼어드는 것 같다.

-'연평해전'으로 돈을 번다면 유족들을 위해 쓸 계획이 있나.

▶그렇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도움을 준 분들은 당연히 돈을 벌면 그 몫들이 돌아갈 것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수익이 발생한다면 유족들과 생존병사들의 트라우마를 풀어주는 비영리재단을 만들고 싶다. 투자배급사와도 이미 이야기를 나눴다.

-차기작으로 여러 가지 기획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감독의 뜻과는 달리 '연평해전' 이후 차기작으로 천안함 사건을 영화화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 역시 '연평해전'을 둘러싼 어떤 의도이기도 한데.

▶나도 그 보도를 보고 내가 그렇게 이야기 안했는데 왜 그렇게 나왔을까란 생각은 했다. 그렇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원래 보도를 100% 신뢰하지 않는다. 분명 천안함을 언젠가 영화화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취재를 하면서 46명이 묻혔을 때 카메라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울었다. 나도 해군 출신이기도 하고. 하지만 여러 가지 기획을 하고 있다. 한국 역사의 아이러니를 영화로 옮기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고, 그 중에 하나가 천안함이다. 천안함은 영화를 만들기에는 더 시간과 취재가 필요하다. 위안부 관련 영화는 연평해전보다 훨씬 전부터 기획했던 일이다.

-올초 김의석 영진위원장 후임으로 응모를 했고 면접까지 봤다. '연평해전'을 만드는 감독이 박근혜 정부에서 영진위원장으로 응모를 했기에 더욱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도 있는데.

▶그런 시선도 전혀 상관없다. 난 영진위원장에 대한 생각이 분명 있다. 영화를 보다 예술로 인정받도록 노력하고 싶고, 스태프들이 먹고 살 만큼 제대로 임금을 받게 하고 싶다. 또 대기업 수직계열화가 한국영화계의 문제 인 만큼 그 문제도 해결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좌우가 아니라 상식이 기준이다.

-'연평해전'을 만들려 제작사 로제타 시네마를 만들었다.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한 계기가 된 로제타 스톤에서 따온 것 같은데.

▶그렇다. 원래 제작사가 있긴 했었다. 그런데 2010년 영진위에 지원을 하려면 법인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만들었다. 로제타스톤이 분명 있지만 무엇인지 몰랐던 사실을 세상에 알린 것처럼 세상에 숨겨져 있는 진실들을 찾아내 알리고 싶다는 뜻으로 로제타 시네마로 이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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