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박찬호 은퇴식과 ML 올스타전의 추억

칼립켄 주니어 은퇴앞둔 2001년 마지막 올스타전 홈런의 비밀은...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4.07.19 09:00 / 조회 : 5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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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박찬호가 2001 내셔널리그 올스타 훈련용 유니폼을 입고 라커룸에서 나오고 있는 모습이다. 올스타전에서는 소속 팀 유니폼을 입지만 전 날 연습 때는 각각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 유니폼을 착용한다. 박찬호가 올스타 유니폼을 입은 사진은 몇 장 밖에 없다. 그가 갑자기 라커룸에서 나와 곧 바로 외야로 걸어가버렸기 때문이다. 한국의 사진 기자들이 올스타 취재 출입증을 받기 어려웠더 시기이다. 올스타전에는 미 전역은 물론 여러 국가에서 200명이 넘은 취재진이 몰리기 때문이다.


안타깝다. 한 매체가 박찬호(41)의 메이저리그 올스타(All Star) 선발 시기를 ‘2001년 텍사스 시절’이라고 기사에 쓰자 줄줄이 그대로 베껴 써 계속 오보가 이어졌다.


2001년은 박찬호의 내셔널리그 LA 다저스 마지막 해였다. 당시 그는 28세로 마운드에서 파워를 자랑했다. 그리고 시즌 후 처음으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아메리칸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간 6500만 달러(약 650억원)의 블록버스터 급 계약을 맺고 부(富)와 명예(名譽)를 동시에 거머쥐며 마침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다.

글쓴이는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2001시즌을 그에게 큰 영광을 줬지만 한편으로는 그 후의 좌절을 초래한 해로 기억한다. 박찬호의 2001시즌 연봉은 990만 달러였다. 1달러를 1000원 환산으로 단순 계산해도 99억 원에 이르는 몸값이었다. 그런데 FA를 목전에 둔 시즌이었다.

박찬호는 2000시즌 226이닝을 던지며 18승10패, 평균 자책점 3.27로 메이저리그 정상급 에이스로 발돋움했고 여세를 몰아 2001시즌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하면서 자신의 한 시즌 최다인 234이닝을 투구했다. 36경기 출장, 선발 등판 35게임에서 15승11패, 평균 자책점 3.50을 기록했다.

글쓴이는 당시 박찬호를 동행 취재하면서 허리 등 통증 때문에 힘겨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는 FA를 앞두고 있어 부상자 명단(DL)에 오르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면서 가까스로 시즌을 마쳤다.


만약 박찬호가 2001시즌 처음으로 통증을 느끼고 이후 정상적인 투구가 어렵다는 판단을 했을 때, FA에 대한 걱정을 떨치고 충분히 쉬면서 치료한 뒤 마운드에 복귀했다면 그 후 그의 메이저리그 인생은 어떻게 변했을까?

사실 2002시즌 텍사스 시절부터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경력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심각한 장출혈과 몇 차례 방출의 수모를 당하고 극적으로 재기에 성공한 뒤 아시아 출신 투수 메이저리그 최다승인 124승을 기록하고 빅리그 생활을 마쳤다.

박찬호는 자신이 처음으로 내셔널리그 올스타 투수에 선정된 2001시즌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지금은 명예의 전당에 헌액돼 있는 칼 립켄 주니어를 MVP로 만들어주었다.

1983년부터 2001시즌까지 19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올스타에 선정된 ‘철인(鐵人)’ 칼 립켄 주니어는 2001시즌 후 은퇴하겠다는 공식 발표를 이미 해 그에게는 마지막 올스타전이었다. 그는 1981시즌 아메리칸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해 단 한차례도 팀을 옮기지 않고 볼티모어에서 은퇴했다.

박찬호는 LA 다저스 소속으로 2001년 7월10일 시애틀 세이프코 필드에서 처음으로 올스타 무대를 밟았다.

전반기를 8승5패, 평균 자책점 2.80의 성적으로 마쳐 올스타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는데 올시즌 LA 다저스 류현진은 10승을 기록하고도 올스타에 뽑히지 못해 대조를 이룬다. 선정 시점에서의 류현진 승수는 9승이었다. LA 다저스 투수진에서는 클레이튼 커쇼와 잭 그레인키, 두 명이 선발 돼 류현진은 ‘지명도(?)’에서 밀린 모양새가 됐다.

2001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선발 투수는 아메리칸리그가 로저 클레멘스였고 내셔널리그는 랜디 존슨이 나섰다. 당시 빅리그 최고의 우완과 좌완이었는데 랜디 존슨은 커트 실링이 부상을 당해 대신 나선 것이다. 예상대로 두 투수는 무실점으로 2이닝 투구를 마쳤다.

박찬호는 내셔널리그 올스타 두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빠른 순서였는데 그만큼 박찬호의 가치가 높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박찬호의 첫 타자가 바로 칼 립켄 주니어였다.

그가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대단한 장면이 연출됐다. 구장을 가득 메운 4만7364명의 팬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다. 박찬호는 팬들을 즐겁게 바라본 뒤 초구에 시속 146km(91마일) 초구를 던졌는데 그 공이 제대로 맞아 좌측 펜스를 넘는 솔로 홈런이 됐고 MVP 수상으로 이어졌다.

메이저리그 취재 기자들은 미국인들의 우상인 칼 립켄 주니어가 마지막 올스타전에서 MVP로 선정되자 흥분했다. 박찬호에게 몰려 들어 인터뷰를 하면서 ‘일부러 홈런을 맞아준 것은 아닌가”’를 물었는데 박찬호는 굳이 부인하지 않고 웃음으로 대답했다. 박찬호에게는 그런 멋과 여유가 있었다.

박찬호는 3회 한 이닝 동안 4타자를 상대했다. 첫 타자 칼 립켄 주니어는 좌월 솔로홈런을 기록하고 현재 명예의 전당에 헌액돼 있다. 다음 타자는 포수 이반 로드리게스로 2루수 땅볼로 처리했다. 역시 2루수 땅볼로 처리한 일본인 타자 이치로는 아직도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현역을 지키고 있다.

마지막 타자였던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당시 텍사스 소속이었다가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는데 불법 약물 사용으로 올시즌 162경기, 한 시즌 전체 출장 정지를 당하는 치욕을 당했다.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의 포수로 꼽히는 이반 로드리게스는 2012년 4월 은퇴를 하고 현재는 구단 경영 수업 중이다.

당시 내셔널리그 올스타팀 3번 타자였던 배리 본즈는 그 해 2001년 10월5일 LA 다저스의 박찬호로부터 시즌 71호, 72호 홈런을 연타석으로 뽑아내고 다음 날 데니스 스프링거로부터 73호 홈런을 터뜨려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작성했다. 그러나 그는 금지약물 스테로이드 복용이 탄로나 ‘야구 사기꾼’으로 전락해 있다.

박찬호는 2011시즌 일본프로야구를 거쳐 고향 팀 한화에서 한 시즌을 뛴 뒤 2012시즌을 끝으로 마운드에 공을 남겨 놓고 내려왔다.

그리고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열린 18일 광주 KIA 챔피언스필드에서 공식 은퇴식을 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박찬호에게 2001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단 한 차례 올스타에 선정됐을 때 칼 립켄 주니어가 마지막 올스타전에 출전했고 16일 열린 2014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는 뉴욕 양키스에서만 20년을 뛴 유격수 데릭 지터가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칼 립켄 주니어와 데릭 지터는 미국에서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리더(leader)들이다. 단순하게 야구 스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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