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 잊혀진 무당의 재조명..반쪽이지만 아름답다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4.02.1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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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은 산자와 죽은 자의 화해다. 산자가 죽은 자를 위해, 산자가 산자를 위해. 치성을 올리는 게 굿이다. 무당은 산자를 대신해 죽은 자를 달래고, 죽은 자를 대신해 산자를 위로한다. 무당은 그래서 시퍼렇게 날이 선 작두를 탄다. 산자와 죽은 자, 어디로 치우쳐도 안되기에 칼 날 위에서 위태롭게 춤을 춘다. 무당은 산자와 죽은 자를 달래지만 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서있어서 외롭고, 그래서 굿은 아슬아슬하고 아름답다.

박찬경 감독의 '만신'은 반쪽이다. '만신'은 나라만신이라는 불리는 김금화 만신의 삶을 통해 산자와의 화해는 다루지만 죽은 자와 화해는 그리지 않는다. 박찬경 감독의 선택이기도 하다.


'만신'은 무형문화재 보유자인 큰 무당 김금화 만신의 자서전 '비단꽃 넘세'를 바탕으로 김금화 만신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 속에서 굿과 무당을 재조명한 작품. 박찬욱 감독의 동생이자 미술가로 잘 알려진 박찬경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김새론과 류현경, 문소리가 각각 김금화 만신의 유년시절과 청년시절, 중년시절을 재연하는 세미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올해 83세인 김금화 만신의 삶은 한국 현대사에서 무당이, 굿이 겪어야했던 숱한 아픔과 고통, 화해의 연대기다. 일제 강점기 황해도 바닷가에서 외롭게 자라며 신병을 앓았던 김금화 만신은 17살에 내림굿을 받았다. 손녀에게는 무당의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할머니에게 내림굿을 받았다.

일제 치하에서도 무속은 미신이라며 멸시를 받았다. 그래도 마을사람들은 아프거나 힘들거나 지칠 때 김금화 만신을 찾았다. 한국전쟁 통에는 북쪽이나 남쪽이나 무당이라며 김금화 만신에게 총을 겨눴다. 공산주의자도 죽을병에 걸렸다며 무당을 찾았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총구였다.


새마을운동은 무당에게 더 어려운 시기였다. 잘살아보세 운동은 무속을 미신으로 치부하며 몰아세웠고, 김금화 만신은 무구만 챙긴 채 산으로 산으로 도망 다녀야했다. 남편도 있었다. 무당과 결혼한 남자랑 사업하면 망한다는 속설 탓에 힘든 시기를 보내다가 떠나보내야 했다.

80년 전두환 정권 집권은 무당에게는 새로운 기회였다. 전두환 정권은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통문화라는 이름으로 무속을 부활시켰다. 혼란스러운 시기, 김금화 만신은 대중 앞에 섰고, 방송을 탔고,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이제 김금화 만신은 통일을 위한 굿을 하다 김일성 혼에 빙의 당한 뒤 큰일 나는 게 아니냐며 걱정도 하고, 천안함-연평해전에서 산화한 혼들을 위로하기도 하고, 풍어제에 나서기도 한다. 떠났던 남편은 암에 걸린 채 돌아왔고, 김금화 만신은 오록이 다시 품었다.

박찬경 감독은 한 때 한국의 공동체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무속을 전통문화로 재조명하려 했다. 그는 천경자 화백이 굿보러가자고 해서 갔더니 영화를 보게 됐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과거 굿은 볼거리와 축제로서 한국 공동체에 자리했다고 조명한다.

또 뭇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는 무당의 삶이 다른 사람의 삶을 연기하며 웃고 울게 만드는 배우의 삶과 닮았다고 했다. 그는 "'만신'이 무속에 대한 영화적인 헌사"라고 말했다. 김금화 만신의 삶을 재현한 배우들을 영화 속에서 한자리에 모이게 하고, 마을 사람들의 쇠붙이를 모아 무구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무당을 다시 제자리로 돌리려 했다. 그는 그렇게 무당을 한때 있었던 자리로 되돌리려 했다.

'만신'을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섞어서 만든 건 그래서 박 감독이 풀려는 이야기에 주효했다. 결국 박찬경 감독은 산사람을 달래는 무당을 다시 산사람들 품으로 돌리려 했다.

박찬경 감독은 산사람과 화해는 드라마로 풀었으되 죽은 자와 화해는 이미지들을 연결해 그리려했다. 익히 무당이라면 떠오를 이미지들을 점묘하듯이 스크린에 찍어냈다. 미술가다운 방식이다. 하지만 이 이미지들은 큰 그림이 되지 못했고, 드라마와 부딪어 산산조각 났다. 이미지와 드라마가 충돌해 더 큰 그림이 되지 못했다. 익히 본 듯한 이미지를 변형시키지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만신'은 반쪽짜리다. 산자와의 이야기는 풍성하되 죽은 자와 이야기는 제자리를 멤 돌 뿐이다. 그건 박찬경 감독이 무속을, 무당을, 믿음과 제의로 보기보단 잊혀져가고 잃어버린 전통문화로 바라본 까닭이 크다.

김새론과 류현경, 문소리 등 김금화 만신을 연기한 세 배우는 감독의 의도를 적확하게 따랐다. 특히 류현경은 신들린 듯 한 연기란 걸 신내림 장면으로 잘 표현했다. 설명이 아닌 연기로 배우의 삶과 무당의 삶을 연결할 수 있었던 건 세 배우의 공이 크다.

'만신'은 3월6일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반쪽이지만 아름답다. 누군가는 보다가 잠들고, 누군가는 보다가 눈이 번쩍 뜨일 것 같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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