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4특집]봉준호라는 믿음, '설국열차'라는 모험①

[★리포트]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3.07.0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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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 사진='설국열차' 포스터


올 여름 한국영화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영화들이 관객과 만난다. 기존 스릴러물과 차별화를 꿈꾸는 '감시자들'과 CG로 고릴라를 완성해낸 '미스터고', 430억원이라는 역대 최고 물량이 투입된 '설국열차', 치명적인 바이러스 유포로 분당을 봉쇄하는 설정인 '감기'. 스타뉴스는 올 여름 한국영화 빅4를 차례로 집중조명 한다.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로 대중과 평단을 모두 사로잡으며 한국은 물론 세계 영화계에서 주목받은 감독 봉준호. 그의 신작 '설국열차'가 드디어 베일을 벗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알려진 하나하나가 빅뉴스였다. 430억원이라는 한국 영화 역대 최고의 제작비를 들였고, 크리스 에반스,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제이미 벨, 옥타비아 스펜서, 이완 브렘너 같은 쟁쟁한 할리우드 스타들과 송강호라는 신뢰의 배우가 함께했다. 이미 북미와 유럽, 일본, 러시아, 남미 등 세계 곳곳에 판매돼 그 제작비의 절반을 회수했으며, 와인스타인컴퍼니가 배급을 맡아 한국영화 최초로 북미에서 와이드릴리즈 개봉을 앞뒀다. 오는 8월 1일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개봉하는 '설국열차'가 어떤 반응을 얻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는 올 여름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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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국열차' 스틸컷


그러나 영화를 둘러싼 시끌벅적한 뉴스거리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설국열차' 자체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영화는 프랑스 작가 장 마르크 로세트의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영화화 소식과 함께 그나마 남은 번역판이 절판된 원작만화는 영화 개봉을 즈음해 올 여름 새로 발간된다. 하지만 만화 '설국열차'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영화 '설국열차'의 일부에 불과하다.―지구에 빙하기가 닥친 미래, 살아남은 인류를 싣고 지구의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달리는 유일의 생존구역 설국열차―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원작의 틀만을 빌려 온 새로운 이야기다.


'설국열차'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다. 인종과 언어를 초월한 인간들이 다양한 직종과 계급을 이루며 살아간다. "엔진은 신성하다"를 기도문처럼 읊조리며 살아가는 열차 안의 인간들은 영구동력으로 움직이는 엔진 없이는 모두가 살아남을 수 없음을 실감하며 하루하루를 산다. 생존을 가능케 하는 엔진은 농경사회의 인류가 믿었던 태양신이나 다름없는, 아니 그를 능가하는 존재다. 그러나 왜 하필 열차일까. 맨 앞의 엔진칸부터 맨 끝의 꼬리칸까지 모두 1001량의 기차 한 대에 모든 사람이 일렬로 모여 사는 '설국열차'는 가장 고귀한 이와 가장 비천한 이가 일렬로 줄지어 사는 수직의 세계다.

영화는 묻는다. 체제에 굴복해 노예처럼 살 것이냐, 그 체제를 부수고 새롭게 일어설 것이냐. '설국열차'는 노예이기를 거부한 이들의 이야기다. 세계를 뒤엎으려는 자는 당연히 가장 끄트머리의 인간들이다. 꼬리칸에서 시작된 반동이 신성한 엔진이 있는 앞을 향해 나아간다. 부수려는 사람과 유지하려는 사람이 격렬하게 맞붙는다. 자연스럽게 '혁명'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제작사 오퍼스픽쳐스 이태헌 대표는 스태프를 구성하고 배우를 캐스팅할 당시 스파르타쿠스에 빗대 '설국열차'를 설명하곤 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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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국열차' 탑승권을 든 봉준호 감독


원작에 흥미를 느낀 봉준호 감독이 영화화를 결심한 것은 2005년이었다. 판권을 사들이는데 1년이 넘게 걸렸고, 2009년 '설국열차 주식회사'가 만들어졌다. '괴물', '마더' 프로젝트를 마친 봉준호 감독이 2010년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화를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인종과 언어가 뒤섞인 작품으로 덩치가 커졌다. 캐스팅 등을 거친 크랭크인은 2012년 4월 16일. 그해 7월 14일까지 72회 차에 걸쳐 촬영해 약 1년의 후반기간을 거쳤다.

2012년 CJ E&M이 사상최고 제작비 430억 전액을 부담하긴 했지만, 다국적 배우가 총출동하는 미래 배경의 SF영화로는 빠듯한 액수였다. SF하면 1억~2억 달러가 우습게 드는 할리우드에서 430억은 저예산 영화나 다름없다. 여기에 해외 배우를 캐스팅하고 체코의 세트장에서 촬영을 하며 영화를 만드는 건 제작자인 박찬욱 감독과 이태헌 대표, 연출자인 봉준호 감독 모두에게 처음 하는 도전이었다. 엔진칸을 향해 가는 꼬리칸 사람들의 투쟁처럼, '도전'과 '모험'은 그렇게 '설국열차'의 키워드이자 콘셉트가 됐다.

봉준호 감독에 대한 믿음은 그 도전을 가능케 한 주요한 원동력이었다. 이태헌 대표는 "외국 배우들에게도 한국의 영화, 특히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굉장히 인상 깊었던 것이 중요했다"고 털어놨다.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는 할리우드 영화인들에게도 강렬하게 남은 작품이었고, 한국영화의 최선두에 있는 봉준호와 박찬욱은 해외 배우들에게도 믿고 일해보고 싶은 감독이었다.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등 떡 벌어지는 배우들이 그렇게 봉준호를 믿고, 그의 영화를 믿고 속속 '설국열차'라는 모험과 도전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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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에반스 / 사진='설국열차' 스틸컷


꼬리칸의 지도자 커티스 역을 맡아 송강호와 함께 극을 이끄는 크리스 에반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선 '어벤져스'의 캡틴 아메리카라고 해야 더 잘 알아듣는 이름이지만, 할리우드에선 한창 주가가 상승중인 핫한 미남배우다. '설국열차' 촬영을 마친 그의 인터뷰를 보면 감독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아이스맨'이란 다른 영화 개봉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다.

크리스 에반스는 "봉 감독은 머리 속에서 편집이 끝나 있다"며 "천재 중의 천재(borderline genius)"라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마치 집을 지으면서 '못 한 봉지가 필요해'가 아니라 '못 53개가 필요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 신뢰감이란, '이 사람은 하늘에서 우릴 내려다보며 일을 하고 있구나' 할 정도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가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안다고 믿고 그의 비전에 완전히 몸을 맡기면 된다. 왜냐면 그는 그걸 해내고 마니까."

공개된 '설국열차'의 티저 예고편과 메이킹 영상, 열차 곳곳에 대한 세부 정보가 담긴 홈페이지는 그 만듦새와 이미지를 엿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창구다. 형형색색의 밝은 앞쪽 칸과 음침한 꼬리칸이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폭 3.5m의 길고 좁은 세트에서 열차의 분위기를 한껏 살리며 촬영한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체코까지 가서 찍은 건 그 곳에서 100m 넘는 긴 열차의 세트를 찍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CG는 의외로 적어 채 600컷이 안 된다. 또 하나의 의외가 있으니 바로 필름 촬영이다. 35mm 필름을 사용해 아날로그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렸다. 체코의 세트장에서는 '이 영화가 필름으로 찍는 마지막 영화가 될 것'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티저 영상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그러나 진짜배기 엑기스는 아직 공개를 안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러닝타임 125분에 15세 이상 관람가라 하니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작품으로 기대해도 좋겠다. 무엇보다 믿고 보는 봉준호 아닌가. 훌쩍 다가온 개봉은 오는 8월 1일. 지난 수 년을 기다렸는데 이 한 달을 못 기다리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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