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 "'베를린' 촬영 중 악마가 됐다"(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3.01.25 16:28 / 조회 : 15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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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구혜정 기자


자리에 앉자마자 "'베를린'이 호평을 받고 있다"고 인사했다. 류승완 감독은 "전문가평과 일반인 분위기가 차이가 있어서 개봉하면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정말 궁금하다"고 조심스러워했다.


"첩보액션영화에 익숙한 남성관객과 익숙하지 않은 여성관객에 아무래도 온도차이가 있을 것도 같다"고 했다. 류승완 감독은 "모니터 시사회를 해보니 요즘 관객들이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를 모르는 사람이 많더라"고 말했다.

30일 개봉하는 '베를린'이 류승완 감독 최고작이란 평이 쏟아지고 있지만 류승완 감독은 아직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베를린'은 베를린을 배경으로 남북한 첩보원이 벌이는 첩보액션영화. 이야기와 액션이 함께 춤을 추듯 영화를 이끌어간다. 그럼에도 류승완 감독은 "이번 영화 안되면 앞으로 영화하기 힘들지 모른다"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100억원이 들어간 영화. 하정우와 류승범, 전지현,한석규가 출연한 영화. 그럼에도 흥행이 안되면 자칫 감독 탓이라고 돌을 맞기 쉬운 상황인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베를린'은 그런 염려를 붙들어도 될 만큼 강렬하다. 한국 첩보액션영화가 여기까지 왔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만 하다. 류승완 감독은 전쟁 같은 촬영장을 진두지휘하며 '베를린'을 완성했다. 그는 자신감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


그와 나눈 긴 이야기를 옮긴다.

-'베를린'에는 70년대 첩보물의 정서와 2000년대 '본'시리즈 같은 액션이 같이 담겨있다. 그러다보니 관객 연령대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의도한 건 아니다.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추운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같은 냉전시대 첩보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그런 영향은 있을 것 같다. 내 영화치고는 유머가 없기도 하고. 남북한 이야기와 이스라엘 모사드, 미국 CIA, 아랍연맹이라는 테러리스트로 이어지는 국제정세를 이해하면 좀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익숙함과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 차이도 있을 것 같고. 하지만 '베를린' 속 각 그룹들의 이야기는 이 영화에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다. 다양한 시점들이 녹아들었기에 액션도 다양한 시점으로 이어져서 기존 류승완표 액션과 차이가 생기고, 또 남북한 이야기만 하려면 굳이 베를린에서 찍을 이유도 없지 않나.

▶원래 모사드에 대해 자막을 넣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니 007이 근무하는 영국 첩보부 MI6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라. 나로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출발은 어떻게 시작했나.

▶출발은 스파이라는 인물들의 직업이었다. 냉전 이후 스파이는 주로 경제스파이로 활동하더라. 그래서 조사를 하면서 가지치기를 하다보니 제3국에서 스파이활동을 하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 그 때는 도시도 정해지지 않았다. 또 그 때 내가 '몽테크리스토퍼 백작'에 한참 꽂혀있었다. 억울한 누명을 쓴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이 스파이라면 어떨까 싶었다.

그러다가 냉전 시대를 그린 소설들에서 주로 다룬 도시 베를린이 점점 마음에 들어왔다. 동백림 사건도 있고, 윤이상 송두율 같은 분들도 있고,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북에서 탈출한 것도 베를린영화제였다. '부당거래'로 베를린영화제에 가서 북한 대사관을 지켜봤다. 세계에서 북한대사관이 가장 큰 곳이 베를린이라더라. 바로 이곳에서 이야기가 벌어져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전지현이 합류하면서 부부의 멜로가 좀 더 깊어졌는데.

원래 대본을 굉장히 많이 고친다. 평균 20~30고 정도 쓴다. 전지현이 합류하면서 역할을 강화했다. 전지현은 최고의 CF스타고, CF스타는 자본주의의 꽃 아닌가. 자본주의의 꽃인 배우를 공산주의의 어둠으로 표현해야 하니깐. 개인 관계를 강화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사건과 배경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기엔 판이 워낙 크니깐. 인물의 관계를 아내를 의심한 남편과 남편을 의심한 여자로 가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론도 기차 안에서 싸움에서 현재 버전으로 달라지기도 했고. 결과적으로 아주 좋아졌는데.

▶결말도 꽤 여러 버전이 있었다. 이러면 '본' 같아서 바꾸고 저렇게 바꾸면 투자사에서 걱정하고. 그러다가 농가에서 벌어지는 액션으로 정리했다. 현재 버전은 사실 정두홍 감독이 제일 반대했었다. 그러다가 이 영화가 끝나면 누구에 대한 잔상이 제일 남을까 생각했다. 한 남자의 후회가 짙지 않을까 싶었다. 탈북하신 분들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니 사람이 신념으로 사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는 것이더라.

-류승완 감독 영화 중 발차기 액션이 거의 없는 첫 영화인 것 같기도 한데.

▶정두홍 무술감독이랑 우리가 하던 방식과 다르게 해보자고 결정했다. '아저씨'를 보고 정두홍 감독이 "큰일 났다"고 할 만큼 요즘 한국영화 액션이 너무 좋지 않나. 우리가 했던 방식과 다르고 관객들의 눈높이도 충족시키려 했다. 그러다보니 찾은 게 격술이었다. 또 그동안은 예컨대 사람이 테이블로 떨어지면 테이블이 부서지지 몸이 부서지는 듯한 리액션은 거의 없었다. 이번에는 몸이 부서지는 듯한 느낌을 주자고 했다.

-'베를린'에선 액션이 드라마를 이끌고, 액션 자체가 드라마가 되기도 한다. 액션이 길어도 길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고. 각 액션마다 다른 시점이 들어간 것도 크게 달라진 점 같은데.

▶난 기존 영화들에서 액션을 링 위에서 싸우는 것처럼 만들었다. 어디서 싸우든 둘이 맞붙는 듯하게. 이번 영화는 액션 속에 다른 시점들이 존재한다. 호텔 액션을 예로 들면 하정우가 아랍연맹과 싸우는데 그 뒤로 한석규가 찾아오며 쫓고 쫓기게 된다. 전지현 방에서 싸울 때도 다른 시점이 들어오고. 그러면서 액션을 이어가는 방식이 풍부하게 된 것 같다.

-유리천장이 부서지는 액션 같은 경우 액션 시퀀스를 마무리 짓는 방식이 익숙하면서도 또 다르던데. 특히 이번 영화는 공간을 활용해 감정으로 이어지도록 만들고.

▶베를린에 갔을 때 그 액션 시퀀스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다가 실제로 유리천장이 있는 건물을 봤다. 그 건물을 보면서 아, 저기서 나와서 저렇게 싸우고, 저렇게 이어지고, 이런 식으로 마무리하면 되겠구나란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하정우가 매달리는 장면은 내가 좋아하는 버스터 키튼 영화 장면도 떠올랐고.

베를린에서 찍어야 하는 이유가 아무래도 다른 공간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었으니깐. 현지인들이 사는 공간을 많이 담으려 했다.

-'부당거래'부터 드라마와 인물의 시점이 상당히 풍부해졌는데. 마치 '부당거래'가 '베를린'을 위한 것이었던 것 같은데.

▶전작에서 했던 경험이 영향을 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염두에 두고 일을 하진 않는 것 같다. 나도 시간이 흘러 경험이 쌓이는 것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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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구혜정 기자


-'베를린'은 예산도 예정보다 많이 줄었고. 촬영일정도 굉장히 한정됐다. 배우들도 녹록하지 않고, 외국 스태프까지. 그런 상황에서 이런 영화를 만든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던데.

▶악마가 되면 된다. 아마 나를 증오하는 사람이 최소한 87명 정도 될 것 같다. 외국 스태프들은 우리보고 미쳤다고 하더라. 우울증이 심하게 왔었다. 내내 잠을 설쳤다. 일정이 어긋나서 예산이 기하급수처럼 느는 걸 봤었으니깐. 처음에는 현지 스태프가 이러면 안된다,저러면 안된다고 하는 일들도 많았다. 그쪽 기준에는 스태프가 달리면 안된다는 규정도 있다고 하고. 그러다가 우리 한재덕PD가 왜 우리가 돈을 내는데 저쪽 눈치를 봐야 하냐고 하더라. 그 뒤 우리 페이스에 맞추라고 했다.

정신없이 찍었다. "캇 오케이, 다음 장소로 이동" 이랬더니 "감독님, 리허설이었습니다"라고 한 적도 있었다. 우리 스태프가 지하철에 발이 빠졌는데 얼굴이 하얗게 변하면서도 카메라 들고 뛰는 모습을 보더니 현지 스태프가 그 뒤론 아무 말 안하고 우리 페이스를 맞추더라. 나중에 "너희 정말 대단한데 그래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

-하정우가 먹는 장면, 이른바 '하정우 먹씬'이 없는 걸 아쉬워하는 팬들도 있던데.

▶원래 먹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다 편집했다. 너무 맛있게 먹으니 꼴보기가 싫더라. 입맛이 없어져야 하는 인물인데 너무 맛있게 먹는다. 집에서 아침 먹는 장면 찍을 때도 너무 맛있게 먹어서 맛없게 좀 먹으라고 했더니 하정우가 이것도 정말 깨작깨작 먹는 것이라고 하더라.

-하정우와 전지현이 붕대 감는 장면은 더 나갈 수도 있었지만 절제한 게 더 짠한 느낌을 주던데.

▶거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인 것 같다. 박찬욱 감독님은 거기서 좀 더 했어야지라고 하시기도 했지만. 사실 그 장면 찍을 때 하정우가 상반신 나온다고 펌프업을 했었다. 그러고 붕대를 감으니 꼭 황진이 같아서 다시 찍었다.

-전지현은 류승완 감독과 끝까지 어색했다고 하던데.

▶일부러 그랬다. 전지현이 감정선을 유지시키도록 하기 위해 스태프들에게도 거리감을 두라고 했다. 하정우가 전지현과 잘 어울리지 않았으면 전지현도 우울증이 왔을 것 같다. 악마였다니깐.

-2편 계획은 없나. 누구나 엔딩을 보면 2편을 생각할텐데.

▶아직은 없다. 내 가슴 속에서 이야기가 솟구쳐 오르기 전에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차기작 계획은.

▶원래 후반작업을 하면서 차기작을 계획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다. 관심 있는 이야기는 있긴 하다. 43년에서 52년까지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관심이 있다.

-해외 진출 계획은 없나.

▶과거 미국에서 제안을 받고 진행한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이번에 외국에서 경험을 해보니 언어가 완벽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선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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