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희일 감독 "'퀴어영화' 살려고 하는 것"(인터뷰)

'백야' '지난여름, 갑자기' '남쪽으로 간다' 이송희일 감독 인터뷰

안이슬 기자 / 입력 : 2012.11.19 09:59 / 조회 : 6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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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봉진 기자


공자의 나라에서 동성애를 말한다는 것, 21세기가 된 지금도 여전히 녹록치 않은 일이다. 이런 나라에서 게이임을 당당히 밝히고 퀴어 영화를 찍고 있는 감독들이 있다. 이송희일 감독도 그 중 한 명이다.

'후회하지 않아'로 퀴어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던 이송희일 감독이 6년 만에 새로운 게이 로맨스를 내놓았다. 그것도 세편이나. 장편 영화 '백야'와 중편 '남쪽으로 간다' '지난여름 갑자기'를 내놓은 이송희일 감독을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베를린 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초청 축하한다. 굉장히 빠르게 결정이 난 것 같은데.

▶사실 공식 초청은 지난 10월에 이미 받았다. 영화 개봉에 맞춰서 기사를 내보내도 되겠냐고 베를린 영화제 측에 요청했더니 허락을 했다.

-영화 잘 봤다. 주위에서 이번 연작을 보고 뭐라고들 하나?

▶'후회하지 않아' 보다는 쉬웠나보다. 접근하기 쉽다고들 한다. 다른 얘기는 '후회하지 않아'에서 더 확장 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본격 장편영화는 아니지만 그런 면에서는 가능성을 본 것 같다는 칭찬도 있다.

-'후회하지 않아'보다 유머러스해지고 가벼워졌다는 데에 동의한다. 애초에 그럴 의도가 있었나?

▶관객 반응을 보면 '후회하지 않아'때도 마담 캐릭터 때문에 박장대소하긴 했다. 그때는 웃기려고 작정하고 넣은 캐릭터였는데 이번 영화는 오히려 그런 요소가 없다. 대사나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다.(웃음) 슬픈데 웃긴 걸 좋아한다. 슬픈 상황에서 나타나는 역설적인 순간들이 좋다.

-'지난여름 갑자기'에서 "나는 네 담임이고 너는 학생이야" 부분에서 다들 웃더라.

▶배우들하고 엄청 싸웠다. 배우들은 그 장면에서 '빵' 터지면 안된다면서 '뭐야?'라고 했는데 한국에서만 패러디가 많이 되서 웃긴 것이지 외국에서 보면 굉장히 직설적인 대사다. 웃으면 또 어떤가. 만날 심각할 수는 없잖나.

-'남쪽으로 간다'의 엔딩 장면에서 홀로 춤추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탄생한 장면인가?

▶시간이 없어서 30분 만에 찍은 장면이다. 엔딩에 나오는 노래는 구남과여라이징스텔라의 '남쪽으로 간다'를 몇 번 들어보니 그 곡만 뽕짝인데 묘하게 느낌이 좋더라. 뽕짝도 이렇게 부르니까 좋구나 싶었다. 듣다보니 그 이미지가 생각났다. 어떤 사람들은 '마더'에서 영감을 얻었냐고 묻는다. 전 세계에 춤을 추는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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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봉진 기자


-한 작품에 두 명씩, 주연 배우만 총 여섯 명이다. 캐스팅에 어려움은 없었나?

▶오디션을 본 배우들은 200명이 넘는다. 그 중에 신인이면서 미래 가능성이 보이는 친구들을 찾느라 오래 걸렸다. 요즘 신인배우들이나 무명배우들은 다들 이런 영화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도 캐스팅이 힘들었던 부분은 본인은 하고 싶어 하는 데 부모님이 반대하는 것이다. 이이경을 만났을 때도 상처를 받을 대로 받았던 상태였다. 그래서 아예 미팅 할 때 부모님 설득이 가능한지 대놓고 물어봤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름이 있는 배우들은 퀴어영화는 안한다. 충무로에서 만들어지는 '쌍화점'이나 '왕의 남자'하고는 또 다르니까. 신인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 외에는 오히려 마마보이가 더 양산된 것 같다.

-'백야'의 이이경은 연출부로도 엔딩 크레딧에 올라갔던데.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하더라. 사실 6회 차 중 2회 차는 못나왔다. 4회 차는 열심히 했는데, 우리끼리 장난으로 '이제야 스태프의 현실을 알고 도망갔구나' 했다. 사실 사정이 있었다. 아프기도 했고.

-'백야'는 게이 폭행 문제를 다루는데 이런 소재를 사용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나?

▶원래 '백야'는 내 사적인 이야기였는데 평이 하고 단조롭다고 생각해서 시나리오를 고치고 있었다. 작년 11월쯤이었는데 그때 게이 폭행 사건이 터졌다. 나도 깜작 놀랐다. 종로가 발칵 뒤집혔다. 자질구레한 사건은 많았지만 이런 지능범죄는 처음이었다.

또 하나 영향을 줬던 건 게이 청년이 캐나다에 망명 신청을 했는데 그게 받아들여져서 국가 이미지를 훼손했다고 난리가 났었던 사건이다. 인권단체에서 조사를 해보니 이미 20명 이상이 망명 신청을 해서 대기중 이더라. 세상이 좋아진 줄 알았는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원규(원태희 분)처럼 도망가고 싶은 나라구나 생각했다.

-사실 퀴어영화가 한 장르가 되어버린 것이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여러 가지 장르 영화에 게이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 아닌가?

▶살려고 하는 것이다. '쌍화점'이나 '왕의 남자'는 퀴어영화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런데 전면적으로 게이를 다루는 영화는 한국 영화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국 무명배우나 신인을 기용하게 될 테고 그냥 내놓으면 기존 퀴어를 좋아했던 사람들에게까지 정보가 전해지지 않는다. 가장 좋은 것은 '퀴어영화'라는 말이 없어지는 것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퀴어영화가 계속 만들어져야하는데 그러지를 못하니까.

-퀴어영화는 대부분 청소년관람불가다. 꼭 정사신이 있어야 하나?

▶퀴어영화를 하면서 두 가지 질문을 많이 받는 것 같다. 하나는 왜 이렇게 예쁜 애들만 나오느냐는 것이다. 원빈이나 김태희가 나오는 영화는 그런 질문을 받지 않잖나? 멜로영화가 대중에게 더 다가가려면 예쁜 사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감정이입이 되니까.

두 번째는 수위 문제인데 나는 오히려 일부러 감추려고 했다. '백야' 같은 경우도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공중화장실이라는 장소 때문에 놀랄 뿐이다. 그냥 딱 이들이 정사를 하고 있다는 정도다.

몇 몇 배우들은 시나리오를 보고 기겁을 한다. 이이경도 정사신 촬영 전에는 얼어 있다가 다 찍고는 "끝이에요?"하면서 싱거워 했다.

-다음 작품도 퀴어영화를 준비 중인가?

▶'야간비행'이라는 장편영화를 쓰고 있다. 사실 올해 연작 세 편을 찍어서 5월에 개봉하려 이 영화를 들어가려고 했는데 길어져버렸다. '야간비행'은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다. 원래는 섹슈얼리티가 중요한 내용이었는데 세 편을 찍고 준비하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더라. 그래서 학교 폭력이 섹슈얼리티를 만났을 때 어떻게 될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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