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머리 "힙합, 상상에 날개를 달아줘요"(인터뷰)

[K팝 마에스트로 릴레이 인터뷰]

박영웅 기자 / 입력 : 2012.11.16 11:53 / 조회 : 17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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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머리 <사진제공=아메바컬쳐>


무대 위에선 늘 종이가면을 쓰고 있다. 왜 얼굴을 가리냐고? 다소 쑥스럽단 핑계는 둘째 치고 묵묵히 뒤에서 프로듀서의 역할을 다하고 싶기 때문이다. 종이상자 속 이야기, 정작 그의 목소린 없다. 타인의 목소리를 대신해 자신의 얘기를 하고 상자 속 '세상'은 곧 그의 '무대'가 된다. 상자에 갇혀있던 음악, 그곳에서 뛰어놀던 상상 속 음표가 그만의 캔버스에 그려지고 있다. 나는 뮤직 프로듀서다!

그가 종이가면을 잠시 내려놨다. 그리고 소중히 품어온 뮤직박스를 열었다. (인터뷰는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형식을 빌려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 난 누굴까? 스스로 던지는 <물음표>

프라이머리(본명 최동훈)는 어느덧 힙합음악을 한 지 10년이 됐다. '입장정리' '물음표' '씨스루'가 수록된 'Primary And The Messengers LP'의 성공 훨씬 전부터 말이다. 한국 힙합이 태동하던 1990년대부터 그의 음악적 실험은 계속돼 왔다. 장르에 대한 구분도 없다.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성찰, 당시 사회와 직접적으로 맞닿으며 부대끼던 음악이 결국 세상에 퍼졌다. 그리고 2012년 여전히 그를 중심으로 한 음악적 지형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달라진 건 그의 음악을 들어줄 대중이 몇 배로 늘었단 사실. 세상과 맞닿은 프라이머리표 음악이 상상에 날개를 단 셈이다.

◆ Early Life '록 키드의 일탈'

프라이머리는 음악을 좋아했다. 우연히 중3때 손에 넣은 기타를 익히고, 음악 시간 실기 시험 점수를 잘 받고자 클래식 기타를 꺼내 들었단다. 그땐 단지 점수를 잘 받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귀에 꽂힌 건 다름 아닌 록음악. 당시 메탈리카에 흠뻑 빠진 록 키드는 음악 잡지를 정독하며 소극적으로 꿈을 품었고, 레코드 가게에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결국 부모님 몰래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했고, 꿈은 요동쳤다.

"악기를 배우면서 시작된 관심이 밴드로 옮겨졌고, 여러 악기를 다루게 됐어요. 노래 보다 프로듀싱이 좋은 지금의 취향도 그때부터 시작됐을지 모르죠. 기타 베이스 키보드 인도악기 등 제3세계 음악까지 골고루 빠져들었던 시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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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머리 <사진제공=아메바컬쳐>


고등학교 재학 시절 몰래 하던 음악을 아버지께 들켰다. 그때 아버지의 제안은 이랬다. "대학교는 진학한 다음에 하고 싶은 걸해도 늦지 않다." 그래서 경희대 영문과를 갔고, 음악에 대한 열정에 결국 포스트모던음악학과로 전과하기로 결심했던 그다.

이유가 무엇이든 프라이머리는 스스로 변화의 길을 걷고자 했다. 지금의 변화무쌍한 음악의 근간이 됐던 시절. 프라이머리 스코어, 프라이머리 스쿨 등을 통해 해소된 그의 다양한 음악적 갈등이 '메신저'들을 통해 군더더기 없이 제련된 음악으로 태어나기까지, 이 음악소년은 학창시절 재즈에서 힙합까지 자연스레 빠져들었다.

◆ Career Beginnings '인터넷 세대의 외침'

지금의 힙합 동료들은 인터넷을 통해 만남이 이뤄졌다. 힙합 동호회에서 만난 키비, 중학교 시절 친구인 진보, 초·중학교 동창 플래닛 쉬버 등이 그렇다. 이후 음악에 대한 욕구는 커졌고, 2003년 야심차게 회사를 차렸다. 지금의 한국힙합 기초의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빅딜'이란 레이블을 통해서다. 랍티미스트, 마일드비츠, 라임어택, 데드피 등 힙합신의 화려한 이름들이 당시 동료들이다. 하지만 현실과 적응하지 못한 음악은 길게 가지 못했고, 그만의 놀이터가 아니었다.

그렇게 새로운 음악을 모색하고 있던 차에 해방구를 만났다. 2005년 당시 그는 한국 힙합의 바이블로 통하는 가리온의 '무투' 비트를 만들어 이름 석 자를 힙합신에 각인시켰다. 이후 다이나믹듀오, 슈프림팀 등 최정상급 힙합 가수들 노래를 만들었다. 지금은 힙합계에서 소문난 '히트 메이커'로 통하는 그다.

"돈 한 푼도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해보자고 할 정도로 의욕만 앞섰던 시절이 있었죠. 언더 신에선 반응이 좋았지만 음악을 대하는 생각의 차이가 어느 정도 있었나 봐요. 돈이 없으니 음반 내기가 힘들던 시절, 한국을 떠날 생각도 했죠."

◆ 2006~2010 : Primary Skool & Primary Score

힙합신에서 프라이머리는 매우 독특하고 의미 있는 존재다. 프라이머리란 이름을 통해 낳은 여러 프로젝트는 다양한 소리를 완성했고, 그의 지금 작품들은 1990년대 언더그라운드 경험의 산물이란 걸 증언하는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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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머리 <사진제공=아메바컬쳐>


2006년부터 시작된 첫 프로젝트는 그를 주축으로 한 밴드 '프라이머리 스쿨'. 음악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실험적인 시도를 그린 활동이었다. 단지 힙합 비트메이커로 알려졌던 그의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알린 신호탄. MPC와 미디컨트롤러를 다루며 무대를 지휘하고 연주에 동참한 밴드의 일원이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느낌표 보단, 물음표에 가깝다. 드럼 비트가 울려대고, 편안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멜로디 위로 래퍼들의 공감어린 랩이 얹어진다. 그 아무리 천성이 차분한 사람이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힙합음악이다.

"모든 사운드를 어쿠스틱 음악으로 구현했고, 랩이 곁들여진 최초의 힙합 밴드였죠. 당시에도 돈이 없어서 활동엔 크게 제약이 있었지만 큰 의미가 있는 활동이었죠."

◆ 2011~Present : Primary And The Messengers

프라이머리는 2년간 시리즈 앨범을 통해 다양한 뮤지션들과의 콜라보 작업을 조율했고, 가수 중심이 아닌 프로듀서로서 역량을 강조해 새 영역을 구축했다. 다이나믹 듀오 멤버 개코와 최자를 분리해 피처링 작업을 펼쳤고,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보컬이나 래퍼를 끊임없이 발굴, 프로듀서로서 최적의 역량을 보여준 셈이다.

장르도 주제도 다양하다. 속이 훤히 비치는 의상인 '씨스루'란 곡에선 '너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는 센스가 넘나들고, 애매한 남녀간의 관계를 재치 있게 '입장정리' 했다. 이센스가 참여한 '독'에서 에미넴의 울분이 느껴지는 것도 마찬가지. 우둔했던 청춘에 고하는 위로의 K.O펀치였다. 그렇게 여러 곡이 하나의 줄기처럼 이어졌다.

그의 음악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CD 첫 장에는 '요지경' '만나' 등 지난해부터 발표한 싱글, CD 둘째 장에는 새로 선보인 '물음표' '독' '3호선 매봉역' 등 총 20곡을 실었다. 가리온, 다이나믹듀오, 슈프림팀 등 힙합 뮤지션 25명이 참여한 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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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머리 <사진제공=아메바컬쳐>


"놀면서 재미있게 만든 음악에 공감대가 형성됐죠. 이번에는 주로 공감대를 살 수 있는 캐주얼한 메시지로 가자고 생각했어요. 줄곧 작업해 온 다이나믹듀오에겐 신선함을, 이센스에겐 진정성을, 박재범과 엠블랙 지오에겐 놀라운 잠재력을 발견했죠. 그중 가장 뿌듯한 건 '씨스루'가 큰 사랑을 받았단 점이에요. 이 곡은 우울했던 제 생일날 작업실에서 혼자 작업한 노랜데, 결국 생일 선물이 됐네요."(웃음)

사회에 던지는 의미심장한 얘기도, 억지로 멋져 보이기 위한 영문구도 필요 없다. 그가 힙합 신에서 큰 사랑을 받은 주제는 일상. 두툼한 힙합 리듬에 욕설을 일부러 넣으려 하지 않아도 대중의 표적은 오로지 '공감'을 관통했다. 그만큼 한껏 힘을 빼고 편하게 일상을 노래한 곡들이 대중의 관심을 샀다.

'순환'을 키워드로 삼았다. 뮤지션들과의 유기적인 관계와 소통, 새로운 조합으로 하여금 음악적 순환의 절차를 갖게 한다는 것.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리사이클(Recycle)이란 의미를 되짚어보며 여러 음악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프라이머리의 생각에 힘을 실어준 이는 50대 중반의 고령임에도 불구, 60대에 그래미상을 수상했던 재즈계 '드럼의 신' 아트 블레키였다. 연주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창자 혹은 퍼포머들과 호흡한 그로부터 영감을 얻은 프로젝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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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머리 <사진제공=아메바컬쳐>


◆ Awards

2006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힙합 싱글을 수상한 가리온의 '무투'를 프로듀싱했다. '무투'는 최고의 라임과 최고의 래핑이라 평가받는 곡으로, 힙합신의 바이블로 불리며 지금의 가리온과 프라이머리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된 노래다.

◆ Musical Style

지금도 변화의 길을 즐기고 있다. 재즈와 힙합의 마차를 갈아타며 대중의 예상을 빈번히 뛰어넘을 준비도 마쳤다. 재즈적인 화성이건, 힙합의 흥겨움이건 장르적인 구분은 중요치 않다. 가장 인상적인 건 그만의 섬세한 감각과 유쾌한 감수성, 힙합의 음악적 재치를 꿰어낸 기분 좋은 실험이란 것. 즉, 음악이 주는 감흥이다.

그의 이름 앞에 프로듀서란 타이틀이 붙는 이유다. 작곡, 편곡 등 별개의 분야를 총괄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감독자의 역할을 하는 것. 빠르게 돌아가는 유행 패턴을 익히는 건 중요하지만, 자신의 음악에서 트렌드를 좇는 것은 흥미 없단다.

"시간을 거스르는 음악을 만드는 게 목표에요. 유행을 안타는 음악 말이죠. 프로듀서, 단순히 곡을 쓰는 사람이 아닌 메시지를 전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트렌드를 빠르게 읽는 눈 보단 시대를 타지 않는, 웰메이드 곡을 만들고 싶다는 프라이머리. 그가 새로운 흐름 위에 또 하나의 가요계 질서를 잡고 있다. 이제 겨우 10년이 갓 넘은 그의 음악, 도전정신으로 충만한 프라이머리가 미래의 프로듀서상에 대한 그 답을 명쾌하게 주고 있지 않은가.

◆ Discography

2005 > 가리온 : 무투

2006 > 프라이머리 스쿨 : Step Under The Metro

2007 > 프라이머리 스코어 : First Step

2008 > 프라이머리 & 요조 : 37.2 C Pink

2008 > 프라이머리 & 마일드비츠 : Back Again

2008 > 프라이머리 스코어 : 리드머 리믹스

2009 > 피'스쿨 : Daily Apartment

2011 > 프라이머리 : Primary And The Messengers 1

2011 > 프라이머리 : Brownbreath 'Spread The Message'

2012 > 프라이머리 : 자니

2012 > 프라이머리 : Primary And The Messengers Part 2

2012 > 프라이머리 : Primary And The Messengers Part 3

2012 > 프라이머리 : Primary And The Messengers Part 4

2012 > 프라이머리 : Primary And The Messengers 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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