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1985', 대선에 영향주고 싶다의 참뜻은?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2.11.14 11:02 / 조회 : 7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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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은 이제야 고백하자면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기자들의 화제작이 아니었다. 정지영 감독이 13년만에 만든 신작이란 말은 오히려 기대치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기자회견장을 찾은 기자들도 그리 많지 않았고, 영화를 보고 온 기자들은 더욱 적었다.


'부러진 화살'이 뒤늦게 부산에서 화제를 모은 건 젊은 영화감독들 덕이다. 영화제를 찾은 독립영화,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부러진 화살'을 보고 간담회에서 술자리에서 끊임없이 입소문을 냈다. 그렇게 기대치가 커진 '부러진 화살'은 올해 설 극장가를 관통하며 흥행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이슈몰이를 했다.

한 보수일간지에서 사회부 담당기자들이 일반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보려다 제작사에서 거부했다는 비화가 기자들 사이에 술자리 안줏감으로 떠돌았다.

정지영 감독의 존재감은 그렇게 되살아났다. 올해 67세인 정지영 감독은 군사정권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을 때도 빨치산을 그린 '남부군'과 베트남 전쟁을 담은 '하얀전쟁'을 만들었다.

그러나 정지영 감독은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한국영화 르네상스에 편승하지 못하고 영화사의 뒤안길에서 사라지는 듯 했다. 정지영 감독은 1998년 '까' 이후 13년 동안 끊임없이 영화를 준비했다. 50대 중반부터 60대 중반까지, 믿기지 않는 열정이다.


그런 정지영 감독이 '부러진 화살'이 극장에서 내리자마자 '남영동 1985'를 준비한다고 했을 때 가능할까 싶었다. '남영동 1985'는 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5년 9월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22일 동안 고문당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투자부터 제작, 배급까지 첩첩산중일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고문이 주요 장면인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찍을 지 의문이 들었다. 고문 장면 촬영은 그야말로 노하우가 없는 전인미답의 길 아닌가.

'남영동 1985'는 기적적으로 완성됐다. 시나리오가 한달만에 나왔고, '부러진 화살' 배우와 스태프가 곧장 참여했다. 일정이 조금만 달랐어도 불가능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남영동 1985'는 영화제를 달군 최고 화제작이었다. 기자들은 앞 다퉈 영화를 찾아보고, 정지영 감독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지영 감독은 거침이 없었다. "'남영동 1985'가 대선에 영향을 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개봉하는 영화에, 이런 내용의 영화를 만든 감독이, 정치에 영향을 줬으면 좋겠다고 일갈한 것이다. 정지영 감독은 부산영화제를 찾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와 영화인들이 만나는 자리에도 참석했다. 문재인 후보 바로 옆자리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였다. 문재인 후보를 쫓아다니는 정치부 기자와 카메라를 앞에 둔 자리기도 했다.

'남영동 1985'에 정치를 덧칠하기 쉬운 행보였다.

과연 '남영동 1985'는 정치적인 영화일까? 정지영 감독을 만나 "이 영화는 프로파간다냐"고 물었다. 선전선동이 목적이냐고 물은 것이다.

정지영 감독은 "내가 이 영화가 대선에 영향을 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내용도 그러니 그런 선입견이 드는 게 자연스럽기도 하다"면서도 "프로파간다는 어떤 이데올로기를 강요하지만 이 영화는 보편적인 희망을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다시 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보길 바라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지만 영화 만듦새와 포장이 한쪽은 외면하고, 한쪽은 열광하지 않겠냐고. 정지영 감독은 "그러니깐 이 영화를 보수든 진보든 보고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며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그 사람의 몫"이라고 말했다.

다시 물었다. 사람들이 '남영동 1985'를 보는 것과 올해 대선 투표하는 것과 둘 중에 하나만 해야 한다면 뭘 하라고 싶냐고. 정지영 감독은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로소 그가 대선에 영향을 주고 싶다는 말에 담긴 뜻이 납득이 갔다. 누구를 찍으라고 영향을 주겠다는 게 아니라 누구를 찍든 과거를 잊지 말자는 뜻이었다. '남영동 1985'는 정치색을 걷어내고 봐야 온전히 보인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영화계도 정치바람을 타고 있다. '부러진 화살'이 22일 개봉하고,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암살하려 한다는 영화 '26년'이 29일 개봉한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그 일주일 뒤인 12월6일에는 '네모난 원'이 개봉한다. 80년대 운동권이 북한에 넘어가서 부부간첩으로 다시 남한에 침투하자 옛 친구와 안기부가 맞서 싸운다는 이야기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마뜩찮게 본 익명의 독지가가 후원해서 만든 영화다.

내년에는 용산사태를 다룬 '소수의견', 고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를 담은 '변호인', 삼성 반도체 피해자 가족을 그린 '또 하나의 가족'이 준비 중이다. 이창동 감독은 쌍용 자동차 사태를 다룬 영화를 준비하다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기 위해 다시 고민 중이다.

이 영화들이 온전히 햇빛을 보게 될지, 대선과 함께 '남영동 1985' 흥행 성적이 잣대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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