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예섭 감독 "마조히즘, 잔혹하게 꾸미고 싶지 않았다"

영화 '모피를 입은 비너스' 송예섭 감독 인터뷰

안이슬 기자 / 입력 : 2012.07.14 14:35 / 조회 : 8964
  • 글자크기조절
image
ⓒ사진=이기범 기자


49살의 송예섭 감독은 영화에 대한 꿈을 품은 지 28년, 영화계에 발을 들인지 20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마조히즘과 욕망이 뒤섞인 영화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대중적 재미를 가진 작품은 아니다. 스스로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송예섭 감독은 첫 영화에서 만큼은 자신의 고집을 그대로 밀고 갔다.

서글서글한 외모에 조곤조곤 이어가는 말투, 마조히즘을 다룬 감독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부드러워 보이는 송예섭 감독을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마조히즘, 노예게임 등 소재가 세다.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 시나리오 4개가 7년 정도 걸쳐 거절당했다. 계속 거절당하는 중에 굉장히 힘든 날이 있었는데 담배를 피면서 걸으려고 한겨울에 여름옷을 입고 나갔다. 추워서 살갗이 아파지는데 그 순간 기분이 좋더라. 위로가 되는 기분이었다. 하루는 술을 엄청 먹고 집에 왔는데 누군가 와서 내 등을 찢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너무 힘들 때 오히려 몸을 혹사시키면 마음이 힘든 게 좀 잊어지는 게 있지 않나.

그 이후에 마조히즘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됐다. 문득 책들을 보는데 '모피를 입은 비너스'라는 책이 있더라. 거기서 영감을 얻어서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 싶었다.

-영화계에 발을 들인지 20년 만에 첫 영화다. 입봉 전에도 조연출이나 각본 등 영화 쪽 필모그래피가 적은 편인데?

▶92년도에 박철수 감독 밑에서 조연출로 영화 한편 하고 박철수 감독이 MBC에서 프로젝트 드라마를 만든 것이 있는데 그걸 하고 미국으로 대학원에 갔다.

영화로 부와 명예를 얻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없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은 많았는데 그렇게 기다리다가 거의 50이 다 되었다. 이 나이가 되니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100% 하는 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욕망과 마조히즘이라는 주제의 영화인데 표현의 잔혹성이나 선정성은 심하지 않은 것 같다.

▶내 생각에는 내 영화가 다큐멘터리도 아닌데 스너프 필름처럼 리얼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이미 자극적인 그런 영화는 존재하지 않나. 나로서는 약간 오버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노출이나 폭력신은 가급적 줄였다. 배우들도 아마 그런 걸 선뜻 하고 싶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image
ⓒ사진=이기범 기자


-소재가 강한 만큼 배우 캐스팅도 어려웠을 것 같은데?

▶캐스팅에만 11개월이 걸렸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한테 다 보냈는데 거절당했다. 그러면서 예산도 많이 줄었다.

그런 와중에 서정에게 시나리오를 줬는데 읽고 굉장히 끌려 해서 같이 하게 됐다. 남자 주인공 백현진은 원래 잘 알던 동생이다. 캐릭터도 잘 맞아서 캐스팅 했다. 문종원은 좋은 뮤지컬 배우가 있다는 걸 알고 문종원이 하는 뮤지컬을 보러 갔다가 내가 생각한 캐릭터랑 정말 잘 맞아서 캐스팅을 추진했다. 허회장 역을 한 백종학은 안지 오래된 친구다. 우정출연으로 개런티 하나도 못 받고 출연했다.

-영화감독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본인의 이야기가 투영된 부분도 있나?

▶민수의 대사 중 예술은 무슨 예술...창녀와 다를 바 없어요 라는 것이 있다. 창녀를 무시하는 건 아니고 내가 쭉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끔 그런 걸 느꼈다. 창녀라는 어휘가 여러 의미가 있지만 사실은 화도 내고 싶은데 항상 참아야 하는 존재이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시나리오를 거절당하고 참고 기다리면서 미칠 것 같을 때 나는 모든 걸 다 팔고 있구나. 자존심, 영혼을 짓밟히고 있구나 하는 의미에서 쓴 대사였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조연출에게 윽박지르거나 반지하에서 사는 그런 삶은 아니다(웃음).

-영화 속 민수(백현진 분)의 말투가 독특하다. 의도된 건가?

▶원래 말투도 독특한데 영화에서 말투는 의도된 것이다. 민수의 캐릭터가 평소에 얘기할 때는 평범하지만 마조히즘적인 부분은 일종의 극이라고 보면 된다. 연극적이 요소를 넣기 위해 일부러 과장된 말투를 사용했다.

image
ⓒ사진=이기범 기자


-영화 속 민수는 주원(서정 분)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많이 생략된 느낌이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신들이 있었다. 그런 것들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연기의 톤이 안 맞는 걸 드러내는 것이 전체를 위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프리프로덕션이 완벽하다면 처음 의도한 대로 그림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환경에 의해 달라지는 것도 영화가 잉태되는 탄생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영화가 상업영화와 비교해서 미흡할 수도 있지만 태생적으로 다른 종자이기 때문에 우리 영화 자체도 또 하나의 생명체라고 생각한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가 대중적인 소재의 영화는 아니었다. 좀 더 가벼운 영화를 찍을 생각은?

▶나는 대중적인 코드가 없는 것 같다. 영화를 하자고 처음 마음먹었을 때가 28년 전인데 그때부터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시나리오도 쓴 건 다 합쳐서 7개뿐이다.

쓰면서 고민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재주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상업적으로 재미를 주는 능력이 없다. 현재로서는 자신이 없다는 게 맞는 말이다.

관련기사
  • 트위터
  • 페이스북
  • 라인
  • 웨이보
  • 프린트
  • 이메일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google play app store